도둑 맞은 상

왜 날 보고 히쭉히쭉 웃었나요?

by Thriving

고등학교 때 일이다. 미술부였던 나는 미술 선생님의 추천으로 매년 열리는 전국 그리기 대회에 참석했다. 중학교 때부터 미술 선생님의 개인 지도를 받아 유화를 그려왔던 터라 이번 대회도 참석하기로 했다. 그 당시에는 미술로 대학 진학을 하려고 할 때, 전국 대회의 상은 미대 입학 여부에 어느 정도 영향력을 미쳤다.


아침 일찍 버스를 타고 전국 미술 대회가 열리는 곳으로 도착하였다. 전국 대회인지라 곳곳에서 온 버스로 도로는 막혀 있었다. 전국 예술고 학생들이 대절한 버스를 대회장까지 타고 와 뿜어져 줄지어 하차를 하였다. 디자인에 무척이나 신경 쓴 예술고 교복을 구경하는 것조차 즐거웠다.


같은 학교에서 같은 분야인 유화 정물 대회에 참석하는 선배가 한 명 있어 그 선배와 대회 입구 지점에서 만나 출석체크를 하였다. 학생 책상에 앉아 있는 심사위원은 학교명과 대회 참자가에게 번호를 매긴 10호 크기의 캔버스를 나눠 주며 출석 체크를 하였다. 웬일인지 별로 일면식이 없는 선배는 친절을 베풀며 굳이 출석체크를 본인이 내 것과 같이 하며 심사위원단이 주는 캔버스를 직접 받아서 나에게 건네주었고 나는 내 번호를 확인하지 않고 대회장으로 들어갔다.


대회장은 어떤 건물의 운동장보다 커다란 잔디밭이었는데 조경을 무척 신경 쓴 곳이었다. 대회 종목 별로 둘러앉아서 그림을 그리는데, 유화 정물 파트인 나와 선배는 당연히 같은 조였다.


대회가 시작되고 주어진 시간은 6시간.

선배는 처음부터 그림 그리기에 관심이 없던 것처럼 수다만 떨었고, 별로 그림을 그리고 싶어 하지 않았다.

내가 유화의 터치를 가다듬으며 중앙 하단에 그렸던 야채 무의 잎의 터치감을 살리고 있을 때, 선배에게서 들려오는 한 마디,


"의주야, 그만하면 됐어. 그만해."


거의 중앙 부분에 위치한 채소 무의 잎의 터치감을 살린 후, 나는 완성된 그림을 제출하기로 했다. 그때까지도 선배는 아무것도 그리지 않은 캔버스를 갖고 있었다.


캔버스를 나눠 줄 때와는 달리, 캔버스의 숫자와 참석자의 이름을 대조하지 않고, 무심히 벽 쪽에 기대어 놓으라는 심사위원 말에 따랐다. 그들의 이러한 지시는 봉준호 감독의 영화 [괴물]에 나오는 병균에 감염된 듯 꽁꽁 봉인한 민간인을 허름한 강당 같은 곳으로 데려온 후 집단적으로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은 채 열악한 환경에 모아 놓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들의 지시에 따라 다른 참석자의 그림과 마르지 않은 내 캔버스를 벽에 기대어 놓았다. 선배 역시 아무것도 그리지 않은 빈 캔버스를 구석에 찔러 놓았다.


그날 오후 난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음반 가계에 들러 음악을 실컷 듣고, 서점에도 들러 책 구경을 한 후 파르페 전문점에 들러 과일과 생크림으로 멋 부린 파르페와 빵을 먹으며 사온 책을 훑어보며 오후를 만끽했다. 창 밖으로 떨어지는 꽃잎들이 햇살에 비추어서 실반지처럼 가느다란 빛으로 흩날리는 오후였다.


그 후로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어느 날 월요일 아침 조회가 열리고 전교생이 운동장에 모여 각각 학년별로 일렬종대로 서있었다.

교장 선생님 훈화가 끝나자 상장 수여식이 있다고 했다.


선배 이름이 전교생 앞에서 호명되자,

학년이 달라 다른 줄에 서 있던 그/그녀는 굳이 다른 학년인 내 앞줄을 가로질러 뛰어가다 날 뒤돌아 보며 히쭉히쭉 웃었던 그 모습이 꽤 께름칙해서 아직도 그 기억이 생생하다.


그 사건으로 인해 대회만 나가면 어떤 랭크 건 상관없이 상을 받던 나는 all 상장 타이틀을 잃어버렸다. 사실 난 별생각이 없었다. 선배처럼 미술 대회 나가서 받은 상으로 미대에 지원하려고 했던 것은 처음부터 아니었으니까. 단지 대회 나가는 날은 빡빡한 고등학교 출석에서 제외된 다는 사실과 대회가 끝난 후의 오후 몇 시간이 주는 여유를 만끽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했었다. 선배는 몇 달 후 전국대회에서 받은 미술상 덕에 미대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선배와 잠시나마 인간관계를 맺는 사람 중 또 다른 희생자가 그 후로 나타나지 않았길 바라며 이 글을 마친다.



이전 07화속박에서 자유로워지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