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덕 감독의 '필리버스터'와 평등한 일대일의 대한민국
영화 '일대일'은 고 '노무현' 대통령의 49 재와 요한 계시록을 통해 용의자와 우리 자신을 심판하게 한다. 그리고 우리는 영화 '일대일'을 통해 우리 자신이 '오민주'의 살인의 공범자임을 고백하고 자백하였다. 우리의 외부 통제자인 '변오구'와 내부 통제자인 '그림자 7'은 또 다른 우리의 모습인 '오현'에 의해 사라졌다. 세로 방향으로 보면, 중개자가 없는 나와 신은 일대일 관계이고, 가로 방향으로 보면 나와 당신은 일대일의 평등 관계이고, 좀 더 넓은 대한민국에서 보면 남한과 북한은 일대일, 세계와 한국인은 일대일 관계이다.
합법적 "의사 진행 방해(議事進行妨害)[1] 또는 필리버스터(filibuster)는 의회 운영 절차의 한 형태로서, 입법부나 여타 입법 기관에서 구성원 한 사람이 어떤 안건에 대하여 장시간 발언하여 토론을 포기하고 진행되는 표결을 지연하거나 완전히 막고자 하는 행위이다
2016년 2월 23일 정의화 국회의장이 테러방지법을 대한민국 제340회 국회(임시회) 본회의에 직권상정하자 야당은 표결을 막고자 47년 만에 테러방지법 반대 필리버스터를 시작하였다 (출처: https://ko.wikipedia.org/wiki/의사_진행_방해)"
개인 개인의 인권을 향한 김기덕 감독의 '필리버스터'는 2015년부터 시작되었다.
영화 <일대일>에서 추론할 수 있는 인물은 고 노무현 대통령이고 두 가지 사건은 '어나니머스'의 사건과 비슷한 '유우성 간첩 조작 사건'과 '사복 경찰의 세월호 유가족 미행'이라 추론된다. 얼핏 보아 '어나니머스'의 북한 웹사이트의 테러 사건은 안보를 중요시하는 우리들에게 호응을 얻을 수 있다.
익명을 의미하는 '어나니머스'는 "나름의 명분을 내세우고 있기는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사이버 테러를 일삼고 법치질서를 부정하는 불법 조직이다. 한때 미국의 이민자 정책에 반대한다는 이유로 미 중앙정보국(CIA)과 미 의회 홈페이지를 공격했으며 정부와 협력하는 민간 기업의 홈페이지도 무차별적으로 공격했다.
어나니머스는 11일 북한의 공식 사이트를 해킹했다며 “우리는 제3차 세계대전을 보고 싶다”고 주장했다. 이어 “우리는 민주주의가 엉터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라고 아래 신문은 전하고 있다.
하지만, '어나니머스'의 모습은 나름 명분 있지만 테러를 일삼고 법치질서를 부정하는 불법 조직인 '그림자 7' 명과 '오현'과도 닮았다. 그림자 7명의 용의자 7명의 심판과 '오현'의 그림자 7명과 용의자 5명의 불법적 미행은 비민주적이고 무차별적으로 공격하는 모습을 보인다. 김기덕 감독의 '일대일'을 영어로 소개할 때는 7명 그림자를 '테러리스트 그룹'(a terrorist group)으로 규정하고 있다. 즉, 과정이 무시된 무차별적인 심판은 '민주주의'의 핵심인 '인권'을 말살하는 행위이며 이는 그 어떤 현란한 이념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그리하여, 김기덕 감독은 그림자 7명이 용의자 7명을 심판할 때는 '민주주의'를 억압한 "공수부대, 조직폭력배, 경찰특공대, 미군 특수부대, 보안사, 국정원"의 의상을 선택한 것이 아닐까 추론한다.
용의자 '오현'의 캐릭터 역시 '어나니머스'와 국정원의 '유우성 간첩 조작 사건'과 닮아있다. 대한민국의 외부에서 보면, '어나니머스'는 북한의 웹사이트만 공격하지 않는다. 남한의 청와대도 해킹한다. 대한민국 내부에서 보면, '오현'은 한 조직에 속해 있어, 평소에는 조직원의 명령에 따라 '오민주'의 살해에 가담하고, 같이 일 한 조직원들이 위험에 처한 상황 (그림자 7명에게 납치, 고문, 자백)에서는 동료들의 '또 다른 불법 시찰과 감찰자'로 변신하고, 직속상관에게 그림자 7명의 테러를 향한 계획과 선동을 하며, 자신의 조직 안의 수장인 '변오구'를 살해하고, 그림자의 리더인 '그림자 7'을 미군 군복을 입고 살해한다. 영화 일대일 안의'오현'의 캐릭터는 익명으로 자행되는 '어나니머스'의 행동과 비슷하고, 자국의 국민의 인권을 보호해야 할 국정원이 오히려 자국 국민인 '유우성'을 간첩으로 조작하는 행동과 비슷하다. '유우성'씨를 간첩으로 조작한 행동대장 직원들은 4명으로 알려지고 있다.
용의자 7명에 속하는 말단 사원 '오현'의 첩보 활동 역시 '민주주의'의 절차를 중요시하지 않고, 오현 스스로의 권한을 남용한다. '오현'의 권력 남용으로 취득한 그림자 7명의 정보를 본 그의 상사로 보이는 '오지하'나 '오정택'도 '오현'을 통제 하지도 통제할 수 도 없다. '민주주의'적 관점에서 권력 남용이며 '오현'의 이러한 비민주적으로 취득한 정보는 결국 그 조직의 수장인 '변오구'를 죽음으로 이르게 했다. 영화 속의 '오현' 역시 세월호 유가족을 미행하다 들킨 경찰들처럼 '사복'차림으로 그림자 7명을 잠복 미행하고 자신의 상사들 역시 미행하는 자이다. 아래의 기사들은 세월호 유가족을 불법으로 미행하다 들통났다는 내용이다.
김기덕 감독은 남과 북을 하나의 한국으로 그리고 이러한 남한과 북한의 개인을 인권을 가진 동등한 인간 대 인간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미사여구를 가미한 7명의 그림자와 7명의 용의자의 '백색테러'도 테러인 것이고 7명의 용의자가 말한 조직에서 '시키는 데로 하는 일', '조직에 대한 충성', '방법에 문제가 있긴 하지만, 결과적으로 좋은 뜻이 있는 일', '신념을 갖고 한 일', '모두 다 잘 살자고 한 일', 도 결국은 '누구를 위해서 무엇을 위해서 하는지 모르고 하는 일'이 되는 것이 되고 결국은 한 조직의 수장인 '변오구'를 살해하는 조직원을 키우는 것과 같다.
'대한민국'이라는 국가 밖에서 '대한민국'을 본다면 같은 국가에 속한 그림자 7명과 용의자의 7명의 꼬리의 꼬리를 무는 '뫼비우스' 같은 싸움은 시리아 정부군과 반정부군의 양상과 닮았단다. 시리아 정부군은 이란, 러시아, 중국이 지원하고, 시리아 반정부군은 이스라엘과 미국이 지원하는데, 이는 북한은 러시아와 중국 그리고 남한은 이스라엘과 미국이 지원하는 것과 평행을 이룬단다. 2011년 시작된 시리아의 내전이래 시리아 반군 세력은 온건파인 자유 시리아군(FSA)과 이슬람 전선(Islamic Front) 그리고 과격 무장그룹인 ISIL, 알 누스라(Al-Nusra Front), 알 카에다가 있단다. 김기덕 감독은 '일대일'에서 그림자 7의 눈을 통해 일련의 테러와 테러에 관련된 기사를 보여 준다.
"2011년 3월 시작된 시리아 내전은 알 바그다디에게 기회였다. 그는 이라크에서 단련된 무장 전사들을 시리아로 보내 알카에다의 시리아 지부 격인 ‘알 누스라 전선’을 조직했다. 알 누스라 전선은 시리아 반군을 도와 혁혁한 공을 세우며 시리아 정부군을 압도했다. 반군과 연합해 반시리아 정부 전선을 이루었던 이 둘의 관계는 2013년 4월부터 삐그덕거리기 시작했다. 애초 이들의 목적이 달랐기 때문이다. 시리아 반군은 알아사드 독재 정부를 몰아내고 ‘민주 정부 건설’을 구상한 반면 알 바그다디가 이끄는 단체인 알 누스라는 ‘이슬람 국가 건설’을 목적으로 했다. 민주 국가와 이슬람 국가는 분명 다른 것으로 이 때문에 반군과 척을 지게 된 것이다. 또한 알 누스라 전선 안에서도 문제가 생겼다.(출처: 아래 신동아 기사:http://shindonga.donga.com/3/all/13/113194/3)"
"4년째로 접어든 시리아 내전으로 지금껏 15만 명이 사망했고, 270만 명의 난민이 발생했다. 2013년 8월 아사드(Bashar al-Assad) 정권은 민간인에게 화학무기를 사용하여 1,400여 명이 숨졌으며, 올해 4월에도 다마스쿠스 서북부 지역에서 정부군이 화학무기를 또다시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엔 시리아 인권보고서에 따르면 내전이 장기화됨에 따라 정부군뿐만 아니라 반군 역시 인권유린과 전쟁범죄를 저지르고 있다. 그러나 올해 초 열린 2차 제네바 평화 회담에서도 아사드 정권과 반군은 합의점을 찾지 못했고 국제사회 역시 양분되어 있다. 러시아와 이란이 아사드 정권을 꾸준히 지원해온 반면 미국, EU,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 터키가 주축이 된 반 아사드 국제연대의 반군 지원은 체계적이지 못하다. 게다가 사우디아라비아와 카타르가 무기와 자금을 지원하는 세력 중에는 급진 지하디스트 단체인 이라크 시리아 이슬람 국가(ISIS)와 알 누스라 전선(al-Nusra Front)도 포함되어있어 반군 내 심각한 분열을 일으키고 있다. 무엇보다 시리아의 세습 독재 체제가 생각보다 버티기에 능하여 내전이 언제 어떤 모습으로 끝날지 정확히 알 수가 없는 상황이다 (출처: 장지향, 2014; 아래 기사 http://asaninst.org/contents/박근혜-정부의-중동정책을-위한-제언-경제-이익보다/)"
"오바마 대통령은 10일 대국민 연설에서 ‘이슬람 국가’(IS)를 ‘이라크·레반트 이슬람 국가’(ISIL)라고 불렀다. 하지만 <뉴욕 타임스> 등 미국 언론들은 ‘이라크·시리아 이슬람 국가’(ISIS)라고 표기한다. 지난 6월 시리아 동북부와 이라크 북서부를 장악한 이 이슬람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단체는 ‘칼리프 국가’ 수립을 선포하며 스스로를 ‘이슬람 국가(IS)’라고 칭했는데, 이를 인정할 수 없다는 뜻이 담겼다 (출처 아래 한겨레 신문 기사:http://www.hani.co.kr/arti/international/international_general/654839.html)"
김기덕 감독의 '일대일'에서 그림자 7이 본 기사는 실존하는 기사들이다. ISIL 즉 이라크 시리아 이슬람 국가(ISIS)와 알 누스라 전선(al-Nusra Front)의 반군 내 심각한 분열을 보여주고 이러한 '내분의 테러 레벨은 세계가 시리아 극단주의 위협에 각성하는 것을 보여준다'라는 기사를 연속적으로 보여준다.
김기덕 감독의 영화 '뫼비우스'에서 소년의 아빠가 본 기사들은 만들어낸 기사였지만, 그림자 7이 검색한 기사들은 모두 실존하는 기사들이다.
그림자 7명과 용의자 7명의 서로에 대한 비민주적인 감시 감찰이 연극 무대 같은 영화 속 무대에 벌어지는 모습은 영화 '일대일' 안에서 그림자 7이 본 기사 '스테판 로렌스'는 영국의 '제도적 인종차별'을 받은 대표적인 인물 중에 한 명이다. 1993년 4월 22일 영국 흑인계 스테판 로렌스는 친구와 함께 집으로 향하기 위해 버스를 기다리다가 5명의 백인 청년들에게 아무 이유 없이 공격을 당해 죽는다. 백인 갱단이 여러 차례 스테판 로렌스를 칼로 찔러 죽였다는 목격자들의 진술에도 불구하고 백인들은 무죄로 풀려났던 사건이 있다.
"사건이 세인의 관심에서 잊힐 무렵인 1999년 2월 윌리엄 맥퍼슨 경은 ‘The Stephen Lawrence Inquiry’라는 제목으로 위 스테판 로렌스 살인 사건에 관한 보고서(‘맥퍼슨 리포트’로 널리 알려져 있다)를 출간해 위 살인 사건의 수사와 재판 과정에 나타난 여러 문제점을 지적하였다.
맥퍼슨 경은 위 보고서에서 영국 경찰에 뿌리 깊게 남아 있는 인종차별(institutional racism)의 철폐와 법 제도의 개선(legal changes)을 주장하였는데, 그중 무죄 평결이 내려진 사건에 대해 이중기소를 금하는 이중 위험 금지 원칙은 재검토돼야 하고, 새로운 증거 발견과 같은 예외적인 경우에는 다시 재판받을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은 치열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출처 이재석, 2006 https://www.lawtimes.co.kr/Legal-News/Legal-News-View?Serial=20422&kind=BA09&key=)."
'일대일'에서 그림자 7이 본 또 다른 기사에서 대테러 지휘부 고위 관계자인 리처드 왈튼(Richard William Walton)은 피해자인 흑인 '스테판 로렌스'의 가족을 테러의 위험을 빌미 삼아 감찰해 온 리처드 왈튼의 행동 패턴은 '유우성 간첩 조작 사건'과 '세월호 피해자 미행사건'과 닮았다. 북한의 정치 체제 안에서 피해자인 '유우성'을 테러의 위험을 빌미 삼아 오히려 가해자로 둔갑시킨 국정원의 '간첩 조작 사건'과 '세월호 유가족 미행 사건'을 한 경찰의 민간 사찰과 비슷한 패턴을 보여준다. 리처드 왈튼의 행동은 분명한 공권력 남용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복직되었고 그의 사건의 테러 몰이는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복직한 "대테러 지휘부 고위 관계자인 리처드 왈튼은 "우리는 이번 사건을 테러 위협으로 간주한다"며 "국민들은 침착한 상태를 유지하는 동시에 경계를 늦추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대테러 지휘부 고위 관계자인 리처드 왈튼은 '스테판 로렌스'의 민간 사찰에 의해 잠시 좌천되었으나 나중에 다시 복직되었다.
'스테판 로렌스'스 사건으로 개인은 피해자 단체를 만들어 수십 년간 진실 투쟁을 하여 정의와 평등한 권리를 찾는 기회가 되었다. '유우성 간첩 사건'과 '세월호 피해자 가족 감찰 사건'의 투쟁과 '스테판 로렌스' 사건의 평등한 권익과 정의를 찾는 운동은 계속되고 있다.
"결국 사회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을 못하면 피해자를 비롯한 당사자 모두가 나서서 권익을 찾고 정의를 지켜나갈 수밖에 없다는 진리를 영국인은 진작 알고 행하고 있다. 영국의 안전 수준이나 사회정의가 다른 나라보다 조금 낫다면 그건 영국인들이 부단하게 투쟁해서 얻어진 것이지 그냥 주어진 것이 아니라는 점이 우리가 얻어야 할 교훈이다 (출처: 주간조선 뉴스 - 권석하, 2014 http://weekly.chosun.com/client/news/viw.asp?ctcd=C02&nNewsNumb=002305100010)"
내국민들끼리 비민주적이고 비인권적인 행위들의 내전이 벌어지는 동안 한국 외부에서는 미국과 북한의 그리고 북한과 중국의 새로운 연결고리가 형성되는 중요한 시기였다. 왜 영화 '일대일'에서 '오현'은 한 조직의 구성원임에도 불구하고 '미군'의 옷을 입고 '그림자 7'을 살해하였는가?
박태견 기자의 <보수 "중국에겐 뺨 맞고 미국에겐 뒤통수 맞아">라는 아래의 기사는 위의 기사들과 과거의 남북의 정치적 관계를 정리해 주는 듯하다.
인간대 인간, 즉 평등적 인간관계가 아닌, 상하적 인간관계는 인권 말살을 가능하게 한다.
'그림자 7'의 눈을 통해 보여준 김기덕 감독이 제시한 또 다른 기사는 패트리샤 듀란트 여사가 남편에 의해 살해된 내용이다. 가상의 적을 상정한 60살의 제임스 해밀턴은 패트리샤 듀란트, 즉 자신의 부인을 살인한다. 살인의 이유는 자신의 집에 악마가 침입하고 그들을 자신을 죽이려 하고 있었다 믿었 기 때문이다. 개인으로 하여금 심리적인 적을 상정하게 하는 것은, 각 개인의 가학적 행동을 부축이는 것과 같다는 것을 김기덕 감독은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남한의 내분은 내전과 같다. 종북몰이, 지연, 학연, 그리고 남녀노소의 차별은 시리아의 내전과 비슷하다.
테러를 빌미로 인권탄압과 증오 감정을 퍼트리는 자를 기억하고 끝까지 투쟁하는 것 만이 '그림자'로서 살지 않고 평등한 나로 사는 길인지 모르겠다.
왜 5월 9일에 사건은 벌어지는가?
5월은 대한민국 역사에서 '오민주'와 관련이 많은 달이다.
• 1980년 5월 9일 글라이스틴이 전두환과 만나서 미국은 남한이 “만약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면 법과 질서를 지키기 위해 경찰과 군대를 강화하는 긴급 대책”에 반대하지 않는다고 발언함.
• 1980년 5월 9일 미 국무부와 국방정보국의 전문: 미국은 전두환에게 군대를 학생시위에 동원할 수 있도록 하는 적절한 승인을 해주었음을 명시함.
• 5.18 민주화운동 기념일 1997년 5월 9일 기념일로 제정.
• 순국선열(殉國先烈)의 날 1997년 5월 9일에 국가기념일로 제정.
"일본의 조선 침략과 식민지 지배에 맞서 국권 회복을 위해 항거하고 헌신한 독립운동 유공자들 가운데 일신(一身)과 목숨을 잃은 순국선열(殉國先烈)의 숭고한 독립정신과 희생정신을 후세에 길이 전하고, 이들의 얼과 위훈을 기리기 위해 제정한 법정기념일. 매년 11월 17일이며 ‘각종 기념일등에 관한 규정’에 따라 1997년 5월 9일에 국가기념일로 제정되었다."
• 1991년 5월 9일, 국민대회.
•1990년 1월 22일 민주정의당 총재인 노태우(盧泰愚) 대통령, 김영삼(金泳三) 통일민주당 총재, 김종필(金鍾泌) 신민주공화당 총재는 청와대에서 3당 통합을 선언했다. 같은 해 5월 9일 세 당을 통합한 민주자유당(민자당)은 첫 전당대회를 열고 총재에 노태우 대통령, 대표 최고위원에 김영삼을 선출했다. 이날 오후 서울 도심에서는 민자당에 반대하는 대학생들의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다.
• 5월 9, 2014
청와대 비서관, '채동욱 뒷조사' 직접 개입 드러나
요한 계시록 5장은 하나님 보좌 앞에서 심판이 이루어진다. 요한 계시록 5장 9절은 4 생물과 24 제사장들이 새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다. 새 노래는 어린양이 두루마리의 인봉을 떼기에 합당한 이유를 말하고 있다.
"(계 5:9) 그들이 새 노래를 불러 이르되 두루마리를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일찍이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에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이는 예수(영화에서는 '오민주'와 '그림자 7')께서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사 대속 제물이 되어 새 언약의 중개자가 되는 구절이다.
소녀 '오민주'
'오민주'는 '오, 민주주의', '오월의 민주주의'나 고 '노무현' 대통령을 상징한다 할 수 있다.
소녀 '오민주'가 살해될 때, 3명의 용의자는 먼저 입, 눈, 그리고 귀와 코를 테이프로 막아 질식사를 시킨다. 입을 막는 행위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발언권과 표현을 억제하는 것이오, 눈을 막는 행위는 보이거나 보았어도 '맹인'처럼 살아야 하는 민주주의의 억압이오 (Bettin, 2014), 귀와 코를 막는 것은 들리거나 들었어도 듣지 않은 것이오, 그리하여 결국 '민주주의'와 '인권'은 질식사를 맞게 되는 것이다.
김기덕 감독이 작의에서 말하고 있듯이 우리 각자의 살해된 '오민주'가 있다면, 그림자 7도 우리 각자의 살해된 '오민주'의 그림자라 할 수 있다. 영화 종반부에 '오현'은 '그림자 7'의 오른쪽 어깨를 못이 박힌 봉으로 가격해 살해한다. 아래는 조선일보의 기사로 노 전 대통령 오른쪽 어깨에 멍이 심하다는 송기인 신부의 증언과 일치한다.
• 송기인 신부가 말한 고 노무현 대통령의 자살은 죽음으로써 많은 이를 살린 노무현
왜 그림자인가?
영화 '일대일'에서 나오는 7명의 그림자는 우리 자신의 일상생활에서의 모습이고, 그림자 7(마동석)은 고 노무현 대통령의 그림자가 될 수도 있겠다. 용의자의 심판을 하기에는 개인 간의 결집력의 결여로 개인의 권력이 상실된 살아있되 살아있지 않은 그림자 같은 우리들이다. 그림자 7명은 일상생활에서 평등한 존재로 살지 못하고 돈과 권력에 의해 핍밥 받고 억압받은 인물들이다. 그리하여 그림자의 흰면은 7명의 용의자의 심판자이고 그림자의 검정면은 권력을 갈망하는 피해자임과 동시에 권력을 흉내 내는 잠재적 용의자들이며 공범자들이다.
마틴 루터 킹(1929~1968)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역사는 이렇게 기록할 것이다. 사회적 전환기의 최대 비극은 악한 사람들의 거친 아우성이 아니라, 선한 사람들의 소름끼치는 침묵이었다."
그림자의 차량 번호는 42우 6311과
차량의 'National Geography' 스티커
요한 계시록을 보면 숫자 '42'는 악마들이 창궐하는 환란의 시대이다 (계 11:1 - 2). 이 시기의 악마들의 권력은 전지전능하여 그 누구도 당해낼 자가 없다 (계 13:4 - 5). 하지만, 전지전능한 야수의 권력은 42 개월만에 끝난다. 아래의 링크에서 42는 6과 7로 이루어졌기에 인간과 하나님의 관계를 나타낸다 한다. 즉, 하나님과 인간이 동등하게 일대일이지만 현실에서 그림자 7명은 돈과 권력에 의해 억압과 핍박을 받는다. 숫자 6311은 '여기'를 의미한다. 그리하여, 국가의 지도는 여기가 악마들이 창궐하는 환란의 시대를 상징할 수 있겠다.
7명의 그림자가 일상생활에서 만난 사람의 총 수는 24
'일대일'에서 그림자의 일상생활에서 같이 나오는 인물의 총 합은 24명이다. 요한 계시록에서 24는 제사장직을 뜻하는 숫자로써, 그림자 7명이 염라대왕의 역할을 하는 인물들임을 다시 한 번 강조한다. 오현이 반복되는 6을 빼면 18인데, 이는 구속과 얽매임을 상징하고, 그림자 7의 중복을 빼면, 17이며 이는 승리를 상징하는 숫자이다. 즉, 그림자 7명은 요한 계시록에 나오는 제사장과 같이 용의자 7명을 심판하는 염라대왕 같은 존재이지만, 그 이면에는 현실 세계와 자본주의의 성과 돈에 얽매여 있는 인물들이며, 어찌 되었건 승리를 염원하는 존재들이다.
그림자 1 + 그림자 1 레스토랑 주인 + 남자 = 오현 + 오현 여자친구 (4명)
그림자 2 + 그림자 2 카센터 사장=오현+ 다방 외양 + 사기꾼 (4명)
그림자 3 + 그림자 3 형= 오현 + 그림자 3의 형수 (3명)
그림자 4 + 그림자 4의 남자친구 = 오현(2명)
그림자 5 + 복권 주인 + 사체업자 1 = 오현 + 사체업자 2 + 그림자 7 (5명)
그림자 6 + 그림자 6 노모 + 건설업자 + 그림자 6의 사기꾼 친구 = 오현 (4명)
그림자 7 + 그림자 7의 해병대 스님 = 오현 (2명)
위 그림자의 일상생활을 가로로 보면 그림자 4를 중심으로 11명 대 11명으로 7명의 그림자 안에서도 심판 (요한 계시록의 심판을 상징하는 숫자 = 11)이 이루어짐을 나타낸다. 김기덕 감독이 "이(그림자)들 중 당신은 누구인가?"라고 물었다. 단지 용의자 7명뿐만 아니라, 그림자처럼 존재 해왔던 우리 자신 조차 '오민주'의 살해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우리 자신조차도 심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심판의 대상이다.
용의자 7명과 그림자 7명
용의자 7명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한 단계씩 밟아 올라가는 권력 체계를 상징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권력의 하부 단계이며 개인의 입장에서는 피해자인 용의자 '오현'의 자리에 있다. 윗 단계로 올라가기 위해 '한 방'을 기다리는 잠재적 상위 단계의 용의자이며, 일상생활에서 권력을 행사하는 가해자인 용의자이다. 용의자 7명과 그림자 7명은 일대일 구도로 보이지만, 그림자 7명은 용의자 7명의 권력을 복제, 재 생산의 '한 방'을 기다리는 잠재적 용의자이며 용의자 7명의 활약을 묵인하는 또 다른 공범자이다.
용의자 7명의 숫자 7과 그림자 7명의 숫자 7을 더하면 14이다. 요한 계시록에서 14는 구원과 해방을 상징한다. 용의자와 그림자 모두는 구원과 해방을 받아야 하는 존재들이지만, 서로가 서로에게 복수를 하는 대상들이다. 77은 복수를 상징한다.
그림자 7명과 용의자 7명의 만남은
고 노무현 대통령의 49재와 민주주의 부활의 의례
영화를 구조적으로 보면, 7명의 그림자가 용의자 7명을 만났으니 7*7 = 49이고, 이는 요한 계시록에 나오는 숫자의 의미로는 '하나님의 진노'의 상징이자 고 노무현 대통령의 영가 천도를 위한 불교의 '49재'를 상징한다 할 수 있다.
"사십구재(49재, 四十九齋), 사십구일 재(49 일재, 四十九日齋) 혹은 칠칠재(7 · 7재, 七七齋)는 사람이 죽은 지 49일째에 지내는 의례이다. 지은 죄에 따라 매 7일 째마다 한 번 씩 심판을 받게 된다. 불교에서 사후(死後) 의례로서는 가장 중요시하는 의례이다한다. 불교에서는 존재 상태를 4가지로 구분하는데, 그것은 ① 생유(生有) ② 사유(死有) ③ 본유(本有: 生에서 死까지 생애) ④ 중유(中有: 이생에 죽어서 다음 生까지를 말함)라 한다. 이들 중 네 번째의 중유(中有)의 상태의 정상적인 기간이 49일이다. [1] 즉 사람이 죽은 뒤에는 일반적인 경우 49일이면 중유(中有)가 끝나고 다음 생(生)이 결정된다. [1] 그러므로 다음 생이 결정되기 전인 48일째에 정성을 다하여 영혼의 명복을 비는 것이 49일 재이다"( 출처: 호스피스 09월 강의-총합본.pdf - 국립암센터 교육훈련).
죽어서 모든 이가 7*7=49일 안에는 업보를 받지 않고 49일이 지나면 업에 따라 과보를 받으니, 만일 죄를 지은자가 이 과보를 받으면 헤어날 길이 없어 49재의 의례로 망자나 살아 있는 사람들도 죄를 사하는 기간이라 할 수 도 있다. 영화 '일대일'에서 그림자 7명의 7번의 심판은 고 노무현 대통령의 49재와 우리 자신의 죄를 사하는 49재로 보인다.
4번 방과 7번의 심판의 상징성
그림자 7번의 심판은 세 번 4번 방에서 이루어진다. 숫자 4는 '온 누리'라는 뜻과 함께 요한 계시록의 '네 생물'을 떠올리게 한다. 네 생물의 모양은 하나님의 성정과 같다한다. 첫 번째 생물인 사자는 강한 힘을 나타내고, 두 번째 송아지는 꾸준한 인내력을 표상하고, 세 번째 사람은 이해력의 상징이오, 네 번째 독수리는 하나님의 구원의 신속함을 나타낸다한다. 하지만 4번 방은 '연극 무대'처럼 꾸며져 있고, 4번 방에 들어오기 위해 그림자 7을 포함한 7명의 그림자들은 연극 무대에 오르기 전에 분장실에서 옷을 갈아 입고 '심판자'나 '그림자' 역할을 하는 소꿉놀이를 하는 그림자들이다. 그리하여, 4번 방에서 일어나야 할 온누리에 미치는 심판은 실상 이루어지지 않는다. 강한 힘을 나타내는 사자의 모습은 그림자 7의 일상생활에서 입는 점퍼 위에 상품으로써 존재할 뿐이다.
조잡한 시설을 갖춘 4번 방, 분장실, 연극무대 같은 4번 방, 소꿉놀이 같은 역할 극에 빠진 우리들, 일상생활에서 입는 퓨마 브랜드의 점퍼 등등은 '웃픈' 영화 속 현실은 우리 자신의 현실을 반영한다. 이러한 영화 속 조작을 통해 나타난 우리의 '웃픈' 현실과 우리의 존재성은 김기덕 감독의 일상에서 취미로 만드는 기계(에스프레소 머신)를 만드는 치밀함이 이 영화 속에서 복제되어있고 이는 '일대일' 영화의 또 다른 매력이다.
4번 방과 그림자 7의 심판
요한 계시록에서 4는 사방에 두루 미친다라는 뜻으로 빠짐이 없다는 의미이고 (네 생명을 상징할 수도 있고), 숫자 7은 완전함이란 의미를 지닌다. 그리하여, 4번 방에서 이루어지는 그림자 7번의 심판은, 이 심판은 사방에 미칠 것이며 이는 완전하게 나타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이는 4번 방에서 이루어지는 그림자 7번의 심판은 4*7 = 28이다. 요한 계시록에서 28은 영생을 의미한다. 4번 방에서 일어나는 그림자 7번의 용의자들의 심판은 '민주주의'의 영생을 향한 심판이라 할 수 있다. 4번 방의 숫자 4와 과 그림자 7번의 7을 을 더하면 11이고 위에서 언급했듯이 11은 심판을 뜻한다.
4번 방에서 3번의 심판
'오현', '오정태, ' 그리고 '진호성'은 4번 방에서 각 각 한 번씩 3번 심판을 받는다. 요한 계시록에서 4*3 = 12이고 12는 신의 능력, 다스림, 권위를 상징한다.
7명의 용의자와 7번 심판 시 만나는 그림자들의 총 수
7명의 용의자는 각 각 1번씩 7번의 심판을 받는다. 7명의 용의자가 심판받을 시 만나는 그림자들의 수의 합은 35이다. 35는 신의 은총을 상징하고 7명의 용의자의 수를 뺀 28은 영생을 상징한다.
오현 + 그림자 1 + 그림자 3 + 그림자 4 + 그림자 7 (그림자 4 명+ 1 = 5)
정이세 + 그림자 1 + 그림자 3 + 그림자 5 + 그림자 4 + 그림자 7 (그림자 5명 + 1 = 6)
오지하 + 그림자 3 + 그림자 6 + 그림자 4 + 그림자 7 (그림자 4명 + 1 =5)
오정택(서정택) + 그림자 1 + 그림자 2 + 그림자 4 + 그림자 7 (그림자 4명 + 1 =5)
진호성+ 그림자 5 + 그림자 6 + 그림자 4 + 그림자 7 (그림자 4명 + 1 =5)
황구일(최 무칠) + 그림자 1 + 그림자 2 + 그림자 7(그림자 3명 + 1 =4)
변오구 + 그림자 5 + 그림자 6 + 그림자 7 + 그림자 1 (그림자 4명 + 1 =5)
용의자 7명 과 용의자들과 같이 등장하는
일상생활에서의 용의자 인물의 수의 총 합은 14
용의자 7명 과 용의자들의 일상생활에서 같이 등장하는 인물의 수의 총 합은 14이다. 요한 계시록에서 14는 '구원, 해방'을 의미한다. 영화 속에서 이들은 '오민주'를 살해한 직/간접적인 인물 7명과 관련된 7명이다. '
1. 오현 + 지혜 + 그림자 1 (3명)
2. 정이세 + 정이세 아내 + 종업원(3명)
3. 오지하 + 오지하 친구 + 오지하 아내(3명)
4. 오정택 (1명)
5. 진호성(1명)
6. 황구일(1명)
7. 변오구 + 수행비서 (2명)
정이세가 심판받은 방 벽에 쓰여있는 숫자 13과 9. '13'은 '죄, 반역, 타락'을 9는 성령의 열매를 상징한다.
왜 영화 '일대일'은 5월 22일에 개봉되었는가?
5월 23일은 고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 날이다. '추모제'가 시작되기 이전, 7명의 용의자와 7명의 그림자의 심판이 그 전에 끝나야 한다. 김기덕 감독은 "고 노무현 대통령께 드리는 고백이자 자백인 영화다"이라 말했다. 우리의 고백과 자백도 14명의 심판을 통해 5월 23일 이전에 마쳐야 한다. 그것이 고인에 대한 김기덕식 49재일 수도 있겠다. 고 노무현 대통령 그리고 '오민주'의 다음 생이 결정되기 전 날인 5월 22일에 49재 의식을 치렀다. 이는 우리 자신의 인생의 새로운 생이 시작되는 통과의례이기도 하다. 요한 계시록도 22장으로 끝난다. "(계 22:21)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지어다 아멘."
왜 제목이 '일대일'인가?
영화 전체적으로 보면, 7명의 민간인 그림자 테러범과 7명의 오민주를 살해한 용의자가 한 판 붙는다. 영화 후반부 마지막 심판까지 각 각 팀에 남은 인원은 그림자 4명: 용의자 4명이다. 그림자 2, 3, 4는 마지막 심판에 참여하지 않았고 용의자 정이세는 자살하였고, 진호성은 그림자 7에 의해 살해되었고, 변오구는 오현에 의해 살해되었다. 숫자로 보면 1: 1 대칭 상태이다. '일대일'이다.
좁은 시각에서 보면, 만일 영화의 사건이 '유우성 간첩 조작 사건'과 '세월호 민간인 사찰'사건이고, 사람은 노무현을 두고 이 시나리오를 썼다면, 검사들의 고 노무현 대통령을 '박연차 게이트' 사건으로 심판했듯이 영화 안에서 그림자들의 7명의 용의자 심판으로 심판의 일대일이 된다.
영화의 외부적인 관점에서 보면, 살해된 오민주를 살해한 용의자 7명을 심판장에 세웠다. '일대일'이다. 살해된 '오민주'를 대신해 '오민주'의 살해범들을 심판했다. 민주주의 입장에서 ''일대일'이다.
'오민주'가 '고 노무현' 대통령이라 가정할 때, 죽음으로 몰고 간 용의자 7명을 그림자(저승사자) 7명이 차례대로 불러와 심판을 한다. 고 노무현 대통령의 한을 푸는 살풀이와 동시에 고인의 49재를 치렀다. 이 생에서 떠도는 망자인 '고 노무현' 대통령의 혼을 상징할 수 있는 '그림자 7'도 7명의 용의자의 심판 후에 영화 속에서 사라졌다. 그림자 7은 그림자 혹은 혼으로 이생을 떠 돌지 않는다. 육신과 혼 모두 이 생을 떠났다. '일대일'이다
개인적인 관점에서 보면, 우리 자신이 그림자임과 동시에 용의자로 살아있음을 알아차리는 통과의례를 거쳤다. 내가 나를 마주 보았다. '일대일'이다. 그리하여, 우리 각자가 용의자가 심판을 받았을 때, 우리 개인 각자도 심판을 받았다. '일대일'이다.
이렇게 리뷰를 쓰고 있으니, 김기덕 감독과 나도 일대일이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은 김기덕 감독과 리뷰를 쓰는 본고를 동시에 바라보고 있으니 일대일이다.
용의자와 그림자가 나의 또 다른 모습인 것을 알아차렸다면, 나의 외부 통제자인 용의자 변오구와 나의 내부 통제자인 그림자 리더 7의 살인으로 '오현'은 새로운 나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었다. 더 이상 또 하나의 우리 자신인 '오현'을 통제할 최고의 수장인 변오구와 그림자 7은 사라졌다. 이제 어쩔 셈인가? 현재 '변오구'의 자리와 '그림자 7'의 자리는 공석이다. 과연 '오현'은 '변오구'의 자리를 차지할 것인가? 완벽한 인간(그림자 7은 영화 속에서 '오현'에게 폭행을 가했던 자다)은 아니지만 완전함을 추구하는 '그림자 7'의 사람 7이 될 것인가? 또한 나는 나와 남을 일대일의 평등한 존재로 대하는가? 나의 학연, 지연, 지위, 권력, 돈을 앞세워 일대일이 아닌 이 대 일로 대하는가? 앞으로의 나는 누구이며 어떻게 살 것인가? 그림자로 살 것인가 인권을 존중하고 존중받은 한 인간으로서 살 것인가? 이제, 신과 내가 중개자 없이 마주 보게 되었다.
<김기덕 감독 영화 리뷰 모음집>
김기덕 감독의 영화 속 숫자를 통한 숨은 코드 넣는 방식은 영화 '활'에서도 나타낸다. 그땐, 주역을 사용했다. 이번엔 성경을 사용한 것 같다.
김기덕 감독은 영화 '아리랑'에서도 '그림자'를 사용하였다.
영화 속에서 주인공이 웹 서핑을 통한 기사로 메시지를 전달과 영화 '일대일'에서 보여준 뫼비우스식 구조는 영화 '뫼비우스'에서도 나타난다. 영화 '뫼비우스'에 소년의 아빠가 본 기사는 가짜지만, 영화 '일대일'에서 그림자 7이 본 기사는 실존하는 기사들이다. '내 총은 처음부터 진짜였어'라는 그림자 7의 대사가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