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한 것 같기도..?
난 군대 제대 후, 일본워홀을 가기로 마음먹었다.
중학생때는 일본유학을 가고 싶었지만, 잠시 일본어를 배우고 그만뒀었다. 아무래도 진짜로 간다고 생각하니 겁이 났었다. 당시 같이 일본어를 시작한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는 고등학교 졸업 후, 일본의 대학에 진학했다.
'설마 일본에 대학에 갈 수 있겠어. 도중에 그만두겠지.'
친구를 보고 이런 생각을 한 것 같다. 하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이렇게 결과가 따라왔다.
난 지잡대에 진학하였다. 나름 고등학생수준으로는 괜찮았던 일본어 실력과 교외대회에서 글쓰기와 탄탄한 체력으로 나름 자신감이 있던 나는 급격히 자신감이 떨어졌다. 학교 네임밸류가 이유였던 것 같다.
그래서 난 한번씩 생각했다. 그때 일본어를 계속했으면..?
입대후, 워킹홀리데이를 가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제대후, 차마 군적금을 털어갈 순 없었다. 군필자는 알 것이다. 쓰지 못하는 이 기분을..
난 여러 일을 지원한 끝에 대기업에서 7개월간 일하게 됐다. 원자력 관련 일을 하는 곳이었기에 주워들으며 관련 지식을 조금 쌓을 수 있었다.
난 7개월 후 최소의 준비를 하고 일본으로 떠나게 됐다. 운이 좋게 엔화도 800~900엔대로 떨어져있었다.
최소의 준비란 60만엔, 옷, 간단한 생필품, 체크카드 등이다.(추후 따로 작성하겠다. 준비에 대한 내용은)
난 일본어 자격증은 있었지만 운이 좋아 땄기에, 실력은 형편없었다. 고등학교 제 2외국어 수준이다.
그래서 목표 1순위가 일본어였다.
예전에는 애니메이션을 좋아헀기에 일본을 엄청 좋아했다. 요새는 조금 줄어들었지만, 그래도 불호보단 호이다.
군대에 있으며 난 많이 소심해졌다. 겁쟁이가 됐다.
예전에는 혼자 여행하면 '덤벼라 세상아!' 이런 느낌이었다. 요새는 전혀 그런 패기가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온 이유는 이게 나름 큰 비중을 차지한다.
'후회 안 하기 위해'
그렇게 난 일본 나리타 공항에 입성했다.
우선 재류카드를 받았다. 중장기체류자 칸에 서니까 재류카드와 입국을 도와주셨다.
받으며 느낀 점이 일본인들은 웃는 얼굴로 친절한 말투를 쓴다.
난 NEX(나리타 익스프레스)를 타고, 시부야로 이동했다. 고마자와 대학 역을 가야했기에, 밖으로 나가서 지하철 역으로 가야했다.
여기서 문제가 생겼다. NEX 표를 사면 표를 두 장 준다. 하나는 큰 거, 하나는 작은 거다. 작은걸 개찰구에 넣어야 문이 열린다.
'어라? 어디갔지?'
표가 사라진 것이다.
분명 주머니에 잘 넣어놨는데.. 난 어딜봐도 안 보여서, 10분간 옷을 뒤지다가 역무원에게 말했다.
'스미마셍, 코노 킷푸데 츠으카데키마스카..?' (저기, 이 표로 통과 가능합니까..?)
기본적으로 제대후의 난 겁이 장착돼 있다.
역무원은 안된다고 했다. 그래서 난 열차에서 두고 내린 것 같다라고 말해야했다. 그런데 갑자기 두고 내리다라는 말이 기억이 안났다. 당황한 나머지 난 이렇게 말했다.
'스테타..?' (버렸다.)
이 멍청한 나야.. 이렇게 말하면 어떡해..
난 역무원의 표정을 보고 더 쫄아버렸다.
역무원은 어이없다는 듯
'그래서 어디서 버렸나고요ㅋ'
조용히 화내는 게 무섭다는 걸 일본에서 알았다. 고함치며 화내는 것과 조곤조곤 화내는 건 천지차이다. 난 조곤조곤이 더 무서웠다.
'덴샤데..'(전차에서..)
이렇게 말했다.
역무원 아저씨는 원래 원칙상으로는 없으면 통과못한다며 내게 크게 당부한뒤, 이번만 넘어가주는 거라며 개찰구를 통과시켜줬다. 난 아리가토 고자이마스 라고 한뒤, 도망치듯 나왔다.
역무원 아저씨 죄송합니다.. 감사합니다...
여기서 내가 100퍼센트 잘못이란 것을 말하고 싶다.
느낀점은 일본은 생각보다, FM이라는 걸 알았다. 매뉴얼대로 하는 일처리 방식인 듯했다. 열차 타기 전, 재류카드 받을 때도 꽤 시간이 걸렸다고 느꼈기에 더 생각났던 것 같다.
시부야에서 고마자와다이가쿠 역까지 덴엔토시 선을 타고갔다. (덴엔토시선은 시부야에서 야마토시 츄오린칸까지 이동한다.)
고마자와다이가쿠까지 온 이유는 위의 친구집이 있기 때문이었다. 쉐어하우스를 구할때까지 잠시 머물기로 했다.
여기서 또 문제가 생겼다. 난 폰에 데이터가 안터진다. SIM을 안샀기 때문이다. 안사도 괜찮겠다는 생각은 만용이었다. 길을 잃어 주변을 돌다가 'DOUTOR'라는 카페에 들어갔다. 너무 덥고 30KG짐을 하루 종일 끌기에는 내 체력이 안 됐다.
땀을 흘리며 겨우 들어가니, 여기서 또 일본어 문제가 발생했다.
우선 아이스티를 시켰다. 난 커피를 못 마신다.
''코치라데오메시아가리데스카? 오모치카애리데스카?(여기서 드시고 가실건가요, 포장이신가요?)
난 당황한 나머지
'와카라나이데스' (모릅니다.)
점원분은 당황하고 주변 점원분은 날 흘깃흘깃 쳐다봤다.
쪽팔려서 죽는 줄 알았다. 난 붉어진 얼굴을 숙이고, 크레짓토 카도데..(신용카드로..)라고 말하고 아이스티를 잡고 근처 자리로 피신했다.
목이 말랐기에 일단 빨았다.
한국의 복숭아 아이스티를 생각했는데 달랐다. 홍차를 시원하게 만든 느낌이다. 단맛이 아주 약하게 있다.
말 그대로 시원한 차다.
그 후 잠시 숨돌리며, 친구에게 구조요청을 보냈다.
잠시뒤 친구는 날 픽업하여 돌아갔다. 친구는 장염에 걸린 터라 집에 도착하자말자 난 집안일을 해주었다. 간호사인 친누나에게 배운 간호실력을 뽐냈다.
이후 포카리랑 물을 사러 동네 마켓에 가서 구매 후 집에 돌아왔다. 결제 뭘로 하시나여? 에서 잠시 위기가 있었지만, 성공적으로 퀘스트 완수했다.
일본에서는 사람들이 목소리 작은 경우가 많다. 모두들, 귀를 쫑긋 세우고 듣자.
그 후 부모님꼐 통화드리고 친구랑 얘기하고 잠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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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차
간밤에 지진이 일어났단다.
이게 무슨 소리야.. 지역은 떨어져있었지만, 한층 더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내가 진짜 일본에 왔구나. 오늘은 빅카메라에 가서 여행자용 SIM을 사고 이불을 살 것이다. 집에 자보니 허리도 아프고 추웠기 때문이다.
시부야에 가서 밖으로 나오니 완전 사람이 많았다. 시부야 스크램블 교차로 앞은 정말 소문대로 발디딜틈이 없었다. 벚꽃시즌이라 근처 요요기 공원이라도 가는 것인지 사람이 붐볐다. 교차로 빌딩에서는 요새 상영하는 하이큐라는 영화 포스터와 버츄얼 유튜버 광고, 그리고 일본노래들이 나왔다.
도쿄에 와서 느끼는 거지만 다들 옷을 잘 입는다. 요즘말로 '패피(패션피플)'이라고 할까. 역시 수도권의 느낌이 난다. 아, 흔히들 오사카는 부산, 도쿄는 서울 이라는 비유를 많이 하는데 공감이 된다.
도쿄에서는 뭔가 차가운 분위기가 있다. 정이 없달까..
우선 SIM카드를 샀다. 사려고 고민하는 중에 서양외국인아저씨가 와서 영어로 여기 개비싸니까 사지마라.
난 더 싼가격에 더 많은 데이터 이용함 ㅋㅋ 이래 말해줘서 안 사고 싶었지만, 급했기에 그냥 샀다.
그 후, 난 어제 밥을 한 끼만 먹었기에 주변구경을 하다가 밥을 먹을 것이다. 식당 찾아다니면서 거리를 돌아다녔다. 식당을 찾는데, 들어가는 게 겁이 났다. 외국인이라 이상한 눈으로 보면 어쩌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렇게 구경만 하다가, 평생 이렇게 살 수는 없다며, 돈까스 집에 들어갔다. 아침도 걸러서 인지 술술 들어갔다.
로스카츠테이쇼쿠(로스카츠 정식)을 시켰는데 1000엔이었다. 하지만 밥이 솥밥이다. 밥이 완전 괜찮았다. 고기보다 밥이 더 맛있는 집인 것 같았다. 아쉽게 츠케모노는 추가가 안되더라. (츠케모노는 한국의 절임 반찬같은 것이다.) 하지만 양배추는 리필가능이었다. 그치만 솥밥이 3인분은 족히 되는 느낌이었기에 난 추가 안하고 든든히 먹고 갔다. 계산할때도 난관이었지만, 일단 넘어갔다.
뭘로 계산할거냐고 물어봤는데 '이이데스요'(좋습니다) 라니... 미친..
그냥 해주셨다.
또 도망치듯 나왔다. 그래도 까먹지 않는 아리가또.
이후 소화시킬겸 요요기 공원에 갔다가 길거리 저글링쇼하는 아저씨 구경했다. 그전까진 힘들어서 재미었었는데 아저씨 덕분에 조금 기분이 나아졌다.
벚꽃구경을 하고, 니토리(가전제품, 이불 등 매장)에 가서 이불을 산 후 집으로 돌아왔다.
친구 집들이 선물 겸 환자보호용으로 휴지 사들고 갔다.
워홀하는 동안 글은 꾸준히 작성할 것 같다.
차차 적응해나가는 저를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다음에 또 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