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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현 Oct 05. 2019

결혼생활은 잼을 닮았다

양실장과 손대리의 잼 레시피

잼집에 갔다. 여느 한국 커플처럼 보이는 부부가 있었다. 여자가 잼을 고르는 족족 남자는 토를 달았다. 패키지가 별로라는 남자에게 여자는 지지 않고 “왜 난 이쁜데?”라며 쏘아붙였다. 결국 여자는 원하는 바를 이루고 가게를 나갔다. 가게 안을 맴돌던 냉랭한 기운은 그들이 나가면서 사라졌다. 괜히 졸아있던 우리도 잼을 몇 개 고르고 포장을 하고 나왔다. 가게를 나오면서 현이 말했다. “부인도 싫겠다. 뭐 일일이 딴지를 거냐.” “그르게. 이기지도 못할 싸움에.” 이때까지 우리는 다른 줄 알았다.


실은 그날 오전, 나는 몽키 포레스트에서 몽키 두 마리에게 다구리를 당하면서 어깨를 물렸다. 간호사는 빠르게 응급 처치를 하면서 다행히 피부 겉만 뜯겼고, 이곳 몽키는 ‘no disease, no virus, clean'하니 안심하라고 했다. 하지만 그날 밤, 불안한 마음에 그곳에 관한 글을 검색하다가 나처럼 원숭이에게 물렸다가 광견병 백신 주사를 맞았다는 글을 읽었고 불안한 마음에 현에게 말했다. 그러자 남편의 답.


오바야~


참고로 이 남자는 평소 병원의 과잉진료에 반감을 가지고 있고, 나는 조금만 아파도 병원으로 달려가는 엄살쟁이다. ‘(비아냥과 서운함을 듬뿍 담아) 오바야아아???!!!’ 그 말이 얼마나 서운하던지. 돌아 누워 씩씩 거리다가 “혹시 나중에라도 내가 잘못되면 얼마나 후회하려고 그런 말을 해!?”라며 어마 무시한 말을 쏟아냈지만 피곤함이 서운함을 이겨 우선 잠에 들었다.


둘째 날 우리는 (이어서) 싸웠다. 이유는 작았지만 싸움은 커졌다. 나는 야외 풀에서 인생샷을 남기고 싶었고, 현은 사진을 열심히 찍었지만, 내가 족족 토를 다느라 지쳐있었다. “아니, 내가 하늘도 나오게 찍어달라고 했잖아.” “디렉션을 정확히 줘. 그리고 나도 휴가라는 걸 잊지 말았으면 좋겠어. 다른 남자들은 이렇게도 안 해” “뭐? 그런 흔한 한국 남자랑 비교되고 싶은 거야? 설마 그 정도 차이로 잘한다고 생각하는 거야? 내가 서운한 건 당신이 점점 잼집 아저씨 말투를 닮아가서야!”


뜨거운 태양 아래 뜨거운 티키타카가 오갔다. 요즘 들어 조금씩 솔직해지는 남편 때문에 심기가 불편해지고 있었다. 결혼한 지 일 년 지났다고 이러기냐? 연애할 때는 마음 무거울 정도로 가벼운 짐 하나 못 들게 하고, 별도 달도 다 따줄 것 같더니. 참 나.


싸움은 싸움이고, 여행은 여행이지. 오후에는 근사한 풍경이 있는 카페에 갔다. 전 세계 커플이 모인 듯했는데, 다들 똑같았다. 예쁘게 차려입은 여자들을 찍어주는 심드렁한 남자들. “저 남자들도 똑같네...” 현이 말했다. “저 남자들을 봐. 그냥 받아들여.” 어깨를 두드리며 내가 말했다. “그래. 나만 그런 게 아니라 위안이 된다.” “이왕 하는 거 웃으면서! 적극적으로! 하면 얼마나 보기 좋나, 손대리.”


싸움이 끝나고 현이 내게 물었다.


결혼하고 가장 자주 느끼는 감정이 뭔가요?

“짜증”

“그다음은?”

“분노”

“마지막은?"

“서운”


“그럼 당신은?” 이번에는 내가 물었다.

“당혹”

“그다음은?”

“의아”

“마지막은?”

“미안”


이렇다. 내가 짜증을 내면 현은 당혹스러워하고, 내가 화를 내면 의아해한다. 쌓이고 쌓여 서운한 감정이 들면 이제야 현이 미안해한다. 잼은 달고, 결혼 생활은 달콤함을 맛보는 과정과 닮았다. 서로의 욕망을 부딪혀 으깨고, 확 열이 받아 끓었다가 마음 졸이고, 열이 식은 후에야 달콤함을 맛볼 수 있다.


그렇게 얻어낸 수영장 사진을 공개한다.



Note. 양실장과 손대리는 2019년 9월 28일부터 10월 13일까지 발리에서 늦은 여름휴가를 보내는 중입니다. 원 글은 양실장의 인스타그램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글 | 양수현

편집(을 많이 하지는 못함..) | 손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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