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가족의 화요일
3월 23일 월요일
엄마의 수술 하루 전날. 자궁 경부암 초기. 복강경 수술*로 진행 예정. 수술 시간은 3~6시간 예상. 수술 전 안내문을 읽다가 아래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복강경 수술은 실패할 경우가 드묾.’
* 전통적인 개복 수술을 하지 않고 최소한의 부위만을 절개한 후 그곳을 통하여 배안을 카메라로 들여다보면서 하는 비침습 수술.
3월 24일 화요일 오후 2시 30분
오늘도 신촌에 왔다. 젊은 학생들이 마스크를 쓴 채 거리를 활보하고 있다. 지금 이 시각, 마스크를 쓴 또 다른 이를 생각한다. 산부인과 김 모 교수는 “교과서 같은 분”이라고 들었다. 매사 꼼꼼하고 좀처럼 틀림이 없는 사람이라는 비유이길 바란다.
오후 12시 43분, 아버지에게 메시지가 왔다. “엄마가 방금 수술실로 들어갔다.” 선형으로 흐르는 시간과 교과서 같은 의사. 지금 내가 믿고 의지할 건, 둘 뿐이다.
같은 날 오후 10시 57분에 올린 트윗
가족이 암 수술을 받는 중에 내게 종신 암 보험 가입을 권유하는 전화가 왔다. 평소였으면 바로 끊었겠지만, 천진난만한 목소리로 너무 친절히 설명하길래 8분 동안 듣기만 했다. 그러다가 나중에 직접 알아보겠다고 하며 전화를 끊었다. 인생이 때때로 가혹하다는 생각을 했다.
수술은 대략 여섯 시간이 걸렸다. 입원실에 누워계신 어머니께 담당 간호사가 “예정대로 수술을 잘 마쳤다”라고 하여 그제야 마음을 놓았다. 부모님 두 분의 손을 번갈아 잡고, 내일 또 들르겠다고 하며 병원을 나섰다. 귀갓길에는 흑당 밀크티를 사 마셨다. 단맛이 그리웠다.
오늘 오전과 오후, 두 건의 수술을 집도하고 퇴근했을 의사를 떠올렸다. 직업인으로서 여느 화요일보다 조금 더 피곤했을 것이다. 당신의 피로 덕분에 수술 결과가 나쁘지 않았다. 내가 이름만 알고 있는 그 의사에게 감사한다.
3월 25일 수요일
어머니가 예정보다 하루 일찍 퇴원했다. 수술 바로 다음 날 퇴원해도 괜찮을까 싶었는데 병원에 있는 동안 어차피 더 이상 치료할 게 없다고 한다. 다행히 차도*가 빠르게 보이고 있고 안색도 나아지셨다. 방광 기능도 정상으로 통과. (소변 310mg) 오는 4월 10일, 마지막 외래 진료를 예약하고 부모님은 집으로 가셨다.
* 병이 조금씩 나아지는 정도.
가장 큰 언덕은 넘었다. 수술한 부위가 당겨서 한동안 아프겠지만 당분간 더 이상의 최악은 없을 것이다. 이제부터 시간은 엄마 편이라고 말하며 위로드렸지만, 정작 이 말이 당사자에게 위안이 될지는 모르겠다. 적어도 병원에서 주삿바늘에 꽂힌 채로 불편하게 누워있느니 집에서 회복하는 게 낫다.
Update: 트윗을 올리고 나서, 몇몇 친구들이 따로 격려의 말을 전했습니다. 다시 한번 고맙습니다. 어머니는 푹 쉬면서 아버지와 가끔 산책도 하고 천천히 회복 중이에요. 그저 일에 매진하고, 목표한 프로젝트의 성공을 위해 어떻게 하면 더 잘할 수 있을까를 궁리하던 사이, 부모님이 차근차근 나이 들어간다는 걸 놓치고 있었습니다. 예순 중반을 넘어 칠순으로 넘어가는 부모님의 얼굴을 모처럼 자세히 봤습니다. 그리고 거울을 보니 그 앞에 부모님의 젊으실 적 얼굴이 있더군요. 이번 일을 계기로 건강의 소중함과 더불어 가까운 사람에게 평소에 잘해야 한다는 걸 새삼 느낍니다. 그리고 암 보험은... 여전히 잘 모르겠지만 너무 늦지 않은 때에 가입할 생각입니다.
글 | 손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