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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현 Jun 15. 2020

쿠팡맨으로 살아보기

다른 이의 삶이 궁금할 때가 있다

다른 이의 삶이 궁금할 때가 있다. 세상 모든 직업을 다 가져볼 수는 없으나 그중 흥미로운 일을 체험해 보고 싶은 욕구는 유년시절, 늘 내 가슴을 뛰게 했다. 아마존을 누비는 탐험가, 지리산 사계(四季)를 촬영하는 다큐멘터리 PD, 멸치잡이 어선의 뱃사람, 화덕에서 투박하고 구수한 호밀 빵을 꺼내는 제빵사, <복면가왕>(MBC)에 출연하여 구성진 목소리로 탄성을 자아내는 이름 모를 가수… 등. 탤런트나 영화배우가 인기가 많은 이유는 준수한 외모보다는 타인의 삶을 절절히 잘 표현함으로써 우리를 녹아들게 하는 연기력에 있지 않을까.


코로나19(COVID-19)가 일상을 지배한 지도 벌써 4개월째. 사람들은 얼굴의 반을 마스크로 가리고 감염을 걱정하고 있다. 여전히 하늘은 눈이 시리도록 푸르고 맑다. 산책을 나가보니 삽상한 공기에 노오란 금계국과 하얀 개망초 꽃들이 사이좋게 길가에 흐드러져 피어있었다. 문득 쿠팡 부천물류센터의 신규 확진자 집단 발생 소식*에 눈길이 갔다. 세계가 이 무서운 전염병에 허덕이고 있는데 작년에 쿠팡맨으로 잠깐 일했던 때가 생생하게 되살아 났다.
* 2020년 6월 2일 기준, 경기도 부천시 쿠팡 신선물류센터는 임시 폐쇄되었다. 중앙방역대책본부는 “이곳에서 5월 12일부터 근무한 노동자 전원에게 자가격리 및 검사를 진행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관련 기사: 시사IN)


2019년 초겨울, 드라이빙 투어 가이드로 일하려고 9인승 카니발을 새로 샀다. 차를 활용한 일거리가 또 없을까 찾다가 신문 어느 지면에 실린 사진을 봤다. 사진 속 물류센터에는 개인 차들이 줄지어 있고, 사람들이 그 안에 택배를 싣고 있었다. ‘마침 관광 비수기이니 이쪽 일을 해볼까?’ 쿠팡맨의 세상은 어떤 모습일지 호기심도 생겨 그날 바로 인터넷으로 지원했다.


내 소속은 쿠팡플렉스(Coupang Flex) 일산 4캠프. 캠프가 있는 곳은 김포의 어느 물류창고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쿠팡맨은 쿠팡 본사가 직접 고용한 직원이고 쿠팡플렉스는 자차를 이용한 아르바이트 기사다. 내가 지원한 건 쿠팡플렉스. 외부에서는 어쨌든 ‘쿠팡맨’으로 불렸다. 쿠팡은 고객이 물건을 주문하면 물류센터 → 캠프 → 고객 순으로 상품을 전달한다. 물류센터를 거친 상품은 주문자의 집 근처 캠프로 배송된다. 캠프는 택배 대리점 역할을 한다. 근무 조는 주간(10시~21시)과 야간(23시~7시)으로 구분되고, 신입은 우선 주간으로 배치된다.


긴장된 마음으로 오전 9시쯤 캠프에 도착했다. 창고가 무척 컸다. 이렇게 큰 물류창고에 벌써 줄지어 있는 다른 ‘플렉스(쿠팡플렉스 인력)’를 보니 생활전선에 바짝 다가선 느낌이었다. 앱을 통해 미리 교육받기는 했지만 고객에게 배송할 물건을 접수하는 과정이 생소했다. 다들 물건 받기에 바쁘니 딱히 물어볼 데도 없고 눈치껏 하는 수밖에 없었다. “전국에 이런 플렉서가 10만 명쯤 돼요.” 접수 직원이 알려줬다.


첫날 배정받은 택배 박스는 72개, 지역은 신정동 신트리 1단지로 집에서 비교적 가깝고 익숙한 동네다. 모든 박스의 바코드를 핸드폰으로 찍고 차량에 운반하기 쉽게 정리한 다음 출발하니 오전 11시였다. 이미 수십 명이 제각기 받은 택배들을 요령껏 차에 넣고 갔다. 간혹 부부나 자매도 보였지만 홀로 하는 기사들이 대부분이었다. 배송지를 아파트 단지로 묶어줘서 배달이 수월한 편이었지만, 아무래도 개수가 70개 넘으니 만만하지 않았다. 출입할 때 비밀번호를 눌러야 하는 곳들은 주민이 들락거릴 때 따라 들어가거나, 고객에게 직접 물어봐야 했다.


가장 어려운 점은 고객이 택배를 경비실에 맡겨 달라고 할 때였다. 경비원은 쿠팡의 택배 수령을 귀찮아했다. 입주민에게 연락해도 잘 찾아가지 않고, 반납하려 해도 쿠팡맨이 매번 달라 서로 받아가질 않는다는 점이 그 이유였다. 설명 끝에 경비원은 이렇게 말했다. “그러니 지금 주민과 통화해보고, 연락이 되면 경비실에 두세요.” 내가 사는 곳의 경비원과 달리, 이곳은 태도가 무척 딱딱하여 자칫 말다툼을 벌여야 했다. 택배를 겨우 다 돌리고 나니 저녁 7시경. 점심 먹을 여유도 없어서 편의점에서 빵과 우유로 때웠다. 오늘 받은 일당은 박스당 900원에 신규회원이라 1만 원을 더하니 74,800원이었다. 기름값, 식대, 세금 제하고 나면 대략 6만 원선. 고단한 하루였다.


둘째 날은 등촌동 주택가를 배정받았다. 내가 전달해야 할 물량은 69박스. 아파트와 달리 단독과 다세대주택, 연립주택이 혼재된 동네였다. 골목 구석구석을 누비며 택배를 돌렸는데 이곳 역시 1층 출입문마다 대부분 비밀번호를 눌러야 했다. 간혹 도로명 대신 지번 표지판으로 붙은 곳이 있었는데, 그 표지판이 떨어져 있기도 하여 찾는데 시간이 꽤 걸렸다. 해가 져서도 남아있는 박스를 배달하다가 결국 운반용 카트를 잃어버렸다. 저녁 7시 30분에 일을 마쳤다. 이 날의 일당은 62,000원이었다.


셋째 날, 김포공항과 가까운 방화동 주택가. 여기는 등촌동보다 오래된 동네처럼 보였다. 단독, 다세대주택, 연립주택, 아파트가 다 섞여있고 주택 간격도 넓어 발걸음이 빨라야 했다. 숨바꼭질하듯 지번을 찾는데 가끔은 지번이 미로처럼 엉켜있기도 했다. 미로를 헤매며 배달하는 순간에도 기쁨은 있다. 수고한다는 인사말을 들을 때, 어느 아주머니께서 친절히 초콜릿을 건네줄 때, 그리고 여러 박스의 주문자가 한 집으로 되어 있을 때 기분이 좋다. 그럼에도 이날은 하루 물량이 59박스 밖에 되지 않는데 이동거리가 길어서인지 좀처럼 박스가 줄지 않았다. 오래된 연립주택에는 승강기가 없어서 계단으로 물건을 운반하자니 허리도 아팠다.


결국 밤 9시가 되도록 배송을 마치지 못했다. 캠프에 양해를 구하고 겨우 끝내고 나니 밤 9시 45분. 담당 직원은 원래 밤 9시를 넘겨 배송하지 못하면 캠프로 반송해야 하고, 배송 페널티가 발생한다고 했다. 무거운 몸으로 집에 돌아오니 아내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당신, 이 일을 그만하는 게 어때요.” 건설 일용직보다 일당도 낮고, 단순 노동이지만 무거운 물건을 운반할 경우 자칫 다치기 쉬워서 보기에 딱하다는 게 아내의 충고였다. 이 날은 박스당 800원으로 계산되어, 47,200원이 일당이었다.


쿠팡맨으로 3일간 살면서 총 178,000원을 벌었다. 택배 일에 익숙한 자는 하루에 100개, 심지어 120개까지 신청하는 걸 봤다. 젊은이가 열심히 일하면 한 달 수입 금액으로 150~200만 원도 가능해 보인다. 심야 배송의 경우 1000원~1100원 수준*이라고 하니 노력에 따라 200만 원 이상도 가져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생각건대, 생계유지 차원이라면 전형적인 저임금 단순 노동으로 가성비가 낮다. 용돈을 보조하는 수준이라면 쉬엄쉬엄 할 수도 있겠다.

* 쿠팡의 배송 단가는 점점 내려가는 추세라고 한다. 관련 기사: 더스쿠프)


비록 3일간의 짧은 경험이었지만, 하늘 한 번 쳐다볼 여유가 없고 식사도 제대로 할 수 없는 빡빡한 근무환경은 아직도 생생하다. 무엇보다 외로운 늑대 마냥 홀로 물건을 배달하며 다니는 구조가 비인간적이라고 느꼈다. 내가 경험한 캠프는 오히려 바이러스 감염과는 거리가 멀었다. 부천물류센터와는 달리 대면할 사람이 거의 없고 배달에만 집중하는 ‘비대면(untact) 지대’였기 때문이다.


바이러스보다 무서운 건 노동법으로도 보호받지 못하는 현실이다. 2020년 5월 말 기준으로 쿠팡의 하루 주문량은 330만 건으로 급증했다. 매일 그만큼의 택배를 처리하기 위해 쿠팡은 오늘도 아르바이트 기사들을 쓰고 있다. 지난 3월 12일에는 쿠팡맨 김 씨가 새벽배송을 하다 숨졌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접했다. 여전히 많은 이들이 쉬운 일감을 찾아 일하려고 애쓰는 걸 보면 살기 더 힘든 세상이 온 게 아닐까. 나는 쿠팡맨을 더 이상 하기 어려울 것 같다.


2020년 6월 8일(월)

 | 손훈

발행 및 편집 | 손현


“아빠, 쿠팡맨으로 며칠 동안 일한 경험을 글로 써보시면 어때요?” 쿠팡 물류센터발 집단 감염 소식을 접했을 무렵, 작년에 아버지가 그곳에서 잠시 아르바이트를 했다는 사실이 떠올랐습니다. 분가(分家) 후 단체 카톡방으로 서로의 소식만 접하다 보니 당시 아버지의 이야기를 충분히 듣지 못하고 흘려 들었던 것 같기도 하고요. 그래서 지난 5월 29일, 아버지에게 카톡을 보냈고, 6월 8일 글을 받았습니다.


글쓰기는 참 어렵죠...


글을 받고 두 가지 고민이 생겼습니다.


1. 마지막 문장, 괜찮을까?
2. 이 글이 자칫 짧은 체험을 토대로 해당 직업을 존중하지 않는 것처럼 읽히지는 않을까?


1번에 대해서는 아버지도 비슷한 염려를 가졌는지, 글을 보낸 다음날 마지막 문장을 ‘짧은 경험이었지만 삶의 현장은 만만치 않고 고달팠다. 그러나 열심히 살다 보면 분명 좋은 시절이 찾아오리라’라고 수정해달라는 카톡이 왔습니다. 그리고 사흘 뒤, 다시 연락이 왔습니다. 장강명 소설가의 칼럼(‘욕먹을 각오 하고, 인용의 욕심과 감동의 집착 버려라’)을 함께 보내면서 마지막 문장을 솔직하게 마무리하겠다고 합니다. 결국 조금 고치긴 했습니다. (원문: 나는 더 이상 쿠팡맨으로 살고 싶지 않다.) 글감을 제안한 사람이자, 발행하는 사람으로서 온라인에 글쓰기가 더욱 조심스러워지는 건 사실입니다. 2번은 독자 여러분의 판단에 맡깁니다.


글을 다듬는 동안 관련 기사나 다른 사람들의 후기, 산업 리포트를 찾아봤습니다. 여러 글을 종합하여 판단해보니 쿠팡플렉스를 비롯한 다양한 플랫폼 노동자에 관한 법적, 제도적 보호 장치가 부족해 보이긴 합니다. 그렇다고 이 에세이를 통해 뜬금없이 솔루션이나 교훈을 주려는 생각은 없습니다. 그럴 수도 없고요.


저 역시 쿠팡이나 마켓컬리 등의 커머스를 종종 이용합니다. 그동안 사용자 입장에서는 ‘로켓배송’, ‘샛별배송’ 등의 단어가 매력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제는 그 단어가 지닌 양면성을 봅니다. 내가 누리는 편리함이 누군가의 불편함 때문은 아닌지, 적어도 늦게 온다고 불평하는 일은 없어야겠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디선가 고객을 위해 물건을 배송해주는 분들이 고단한 하루를 무사히 잘 마치길 바랍니다. 10만 명의 ‘플렉서’도 사실은 누군가의 가족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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