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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현 Sep 26. 2020

한계를 안다는 것

괴롭고도 아름다운 이 순간을 사랑해야 한다

"잘못된 선택 같지만 내 원칙 혹은 내가 발견한 현상이 맞는지 알아보기 위해서 포지션을 가야 할 때(일단 그 선택을 실행해야 할 때)가 있다. 재미있는 것은 그런 용기를 내었을 때 결과가 나쁜 적은 거의 없다."

- 김동조 트윗 @hubris2015, 2015. 8. 2.


작년 봄, 두 명의 헤드헌터와 접촉했다. 당장 회사를 옮기려는 생각보다는, 커리어 패스에 대해 전반적으로 진단을 받고, 다른 산업 군 또는 직무에 대해 정보를 얻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방향을 정하면 차근차근 준비할 계획이었다. 그러면서 난 그들에게 조심스레 2015년에 노르웨이까지 모터사이클 여행을 다녀올 거라고 말했다. 나의 고등학교 선배라고 한 A는 대뜸 그런 여행은 대학생 때나 했어야지 현재 상황에선 말이 안 된다며 부정적인 입장을 취했고, 내 여행을 '대자연에 대한 경이'라는 여덟 글자로 압축해 버렸다. 그곳에서 느끼는 것은 아마도 그 정도일 뿐이니, 차라리 미국의 이름 있는 대학의 MBA 코스를 준비하라고 했다. 며칠 후 만난 B는 당시 나의 상황과 진행 중인 여러 작업들을 보고 당장에라도 떠나라며 정반대의 조언을 했다. 자기만의 브랜드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 쉽진 않겠지만 그 길을 좀 더 단단하게 만드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언제든 도와주겠다고 덧붙이면서.


문득 둘의 상반된 조언이 떠올랐다. 가지 말라는 A 대신 나는 다녀오라는 B의 조언을 취했지만, 이미 답은 내 안에 있었다. 단지 나보다 사회 경험이 많은 어른에게 동의를 구하고 싶었던 것 같다. 어쨌든 길 위로 나섰고, 두 달이 지났다. 처음 상상한 것 이상으로 다채로운 경험을 하고 있는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한계를 인식하고 그것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자연에 대한 경이'는 일순간에 지나지 않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모터사이클을 다룰 때 맞닥뜨리는 여러 가지 한계를 미리 인지하게 된다. 이제는 가득 주유하면 대략 몇 킬로미터를 갈 수 있는지, 주유 경고등이 켜진 채로 얼마나 더 가면 시동이 꺼지는지 안다. 실제로 멈춰 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갈 수 있는 길과 조금은 어렵지만 통과할 수 있는 길, 혼자 힘으로는 도저히 갈 수 없는 길에 대한 판단도 선다. 비포장길을 느린 속도로 통과할 땐 차체가 높고 짐도 무거워 더 조심해야 하고, 폭신한 모랫길은 거의 쥐약이다. 사실 몽골을 여정에서 제외했기 때문에 모랫길을 만날 일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울란우데 모토 클럽의 진입 구간에서 한 번 마주쳤다. 거의 사막 같은 모랫길에서 두 번 넘어진 뒤에는 결국 클럽 멤버인 예프게니에게 키를 넘겼다. 속도에 대해서도 한계를 정했다. 내가 경험해 본 최고 속도는 시속 220킬로미터. 한적한 일요일 늦은 밤, 서울의 남산 1호 터널에서 시험 삼아 달려 본 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계기판에 표시된 최대 시속은 240킬로미터고, 차체 옆에 알루미늄 박스를 달고 있으면 시속 160킬로미터를 넘지 않는 것이 안전하다. 이번 여행에서는 고속도로 기준으로 평균 시속 100~120킬로미터 정도로 달리고 있다. 그 정도가 가장 쾌적하다. 시속 80킬로미터이면 오히려 졸릴 때도 있다. 시베리아에선 달리는 내내 거의 모든 차량을 추월한 적도 있었지만 결국 그 앞의 차량 꽁무니에 또 붙을 뿐이라 이젠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



더 중요한 것은 스스로에 대한 한계다. 소유하고 있다고 생각한 것들이 여러 방식으로 사라지는 경험을 겪다 보니 이것들이 내게 본질적으로 필요한지 다시 묻게 된다. 그런 상황에서도 평상심을 유지하고자 애썼다. (이 글을 쓸 당시는 오슬로 공항에서 내 배낭이 도착하지 않은 상태였다. 지연된 짐은 7일 후 노르웨이 대사관에 도착했다.) 체력적으로 쉽지 않을 때도 있다. 8월 초 스칸디나비아에 진입하여 2주에 걸쳐 혼자 다닐 때는 하루에 쓸 에너지의 총량을 그날 다 쓴 기분이었다. 거의 매일 5백여 킬로미터씩을 달리고 숙소에 도착하면 모터사이클 상태부터 점검했다. 체인에 묻은 먼지와 기름때를 닦고, 다시 기름칠을 한 다음에야 샤워를 했다. 저녁을 간단히 해 먹고 다음 날 머물 도시와 숙소를 찾던 중에 존 적도 있다. 물론 그 느낌이 나쁘진 않았다. 하루를 충실히 살면서 잉여가 없다는 기분이 오히려 가뿐하니 좋았다.


이렇게 한계를 인식할수록 나는 점점 겸손해지고 있었다. 그동안 막연하게 생각했던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주의를 다시 생각했다. 이는 자칫 '어느 무엇 하나 잘할 수 있는 것이 없다'를 의미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즉,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태도에 초점을 두기보다는, 내가 '무엇'을 할 수 있고, 할 수 없는지 그 차이를 아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2014년 10월 24일 자 <뉴욕 타임스>에서는 무조건 긍정적인 것보다는 현실적인 제약 속에서 온 힘을 다한 사람들이 오히려 성과가 좋았다는 기사를 실었다. 현실주의에 바탕을 둔 긍정적 사고나 긍정적 사고에 바탕을 둔 현실주의가 필요하다는 의미다.


극단적인 예로 마크 로스코(Mark Rothko)의 작품이 떠오른다. 여행 직전 본 그의 전시 중 로스코 채플을 재현한 공간이 있었는데, 온통 어두운 색의 그림들 속에 빛이 오묘하게 발하고 있었다. 마치 앞이 캄캄한 내 여행의 미래를 보는 것 같아 감정이 동요했던 기억이 난다. 전시장의 끝에는 로스코가 마지막 시기에 그린 그림(<무제>, 1970, 내셔널 갤러리 오브 아트, 워싱턴 D.C.)이 걸려 있었고, 선홍색에 가까운 붉은빛은 로스코 채플에서 느꼈던 은은함과는 달리 너무나 눈부셨다. 그는 자신이 그리고자 한 바를 사람들이 분명히 이해해 주기를 바라며 결코 예술관을 굽히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의 고집을 고려해 봤을 때 스스로의 한계를 인지한 상태에서 최상의 퍼포먼스를 낸 본보기가 아닐까 조심스레 생각해 본다. 로스코는 그림을 완성한 1970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한편 한계를 깨고자 노력하는 소수의 사람들도 있다. 지난 2012년 10월 14일, 레드불 스트라토스(Red Bull Stratos) 소속의 오스트리아 출신 스카이다이버 펠릭스 바움가트너(Felix Baumgartner)는 12만 피트 상공에서 초음속 낙하 다이빙에 성공했고, 가장 최근엔 호주 출신의 모터사이클 스턴트맨 로비 매디슨(Robbie Maddison)이 물 위를 달리는 영상이 지난 8월 2일 공개됐다. 그는 노(paddle)처럼 여러 개의 날이 덧붙인 바퀴를 고안해 냈고, 수십 번의 연습 끝에 결국 멋지게 모터사이클 서핑에 성공했다. 영상 마지막에는 그가 다가오는 파도 사이로 모터사이클을 타고 들어가는 장면이 나온다. 이후 파도를 뚫고 유유히 갔을지, 휩쓸렸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그 한계의 찰나를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 그에게 존경과 박수를 보낸다.


이 영상을 볼 때마다 가슴이 뛴다.


파타고니아의 창업자 이본 쉬나드(Yvon Chouinard)는 이렇게 썼다.


"인간의 한계를 극복해야 하는 험난한 서핑과 고산 등정은 또 다른 중요한 교훈을 내게 가르쳐 주었다. 즉 절대로 자신의 한계를 넘지 말라는 것이다. 할 수 있는 데까지는 최선을 다해야 하지만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는 안 된다. 자신에게 진실해야 한다. 자신의 능력과 한계를 알고 그 범위를 벗어나서는 안 된다. 비즈니스도 마찬가지다. 회사가 능력의 범위를 벗어나서 일거에 무언가를 이루려고 하면 곧장 망하기 마련인 것이다."

- 이본 쉬나드, <파도가 칠 때는 서핑을 Let My People Go Surfing>, 2007


한계를 안다는 것은 어떤 방식으로든 그 순간을 겪어 봤다는 것을 말한다. 아디다스의 러닝화 광고 카피처럼 괴롭고도 아름다운 이 순간을 사랑해야 한다. 그 순간을 무사히 보내면 사람은 겸손해지고, 그 경험이 우리를 성장하게 한다. 펠릭스가 초음속 낙하 다이빙에 성공한 다음 한 행동은 가슴에 성호를 긋고 땅에 입을 맞추며 신께 감사드린 것이다. 이들에 비하면 내 여행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지만 나 역시 모터사이클과 함께 하는 동안은 매일 기도한다. (2015. 8. 29)



* 2016년에 출간된 저의 첫 책 <모터사이클로 유라시아>에 실린 에세이 중 하나입니다. 대략 5년 전에 쓴 글이지만, 가끔씩 한계에 부딪힌다고 느끼거나 스스로 인지한 한계를 확장할 수 있을지 고개를 갸웃거릴 때마다 이 글을 따로 찾곤 했습니다. 조만간 한 번 더 소속을 옮길 예정인데, 최근에도 두 분에게 커리어에 관한 상반된 조언을 들었습니다. 이번에도 답은 결국 제가 찾아야겠죠. 오랜만에 이 글이 생각나서 다시 올립니다.


글 | 손현

편집 | 김미정(미메시스/열린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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