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안부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손현 Oct 05. 2023

자가학습

8월 하순, 수현이 코로나에 걸려 집을 떠나 시내의 다른 숙소에서 며칠 격리 중이던 때가 있었다. 체크아웃 전날 밤, 송이를 데리고 마스크 쓴 수현을 잠깐 보러 갔다. 다시 둘만 집으로 돌아와 침대에 누워 나눈 짧은 대화가 떠오른다.


“엄마 보고 싶지 않아?”

“지금도 보고 싶어.”


최근 한 달 동안 세 식구가 번갈아 가며 아팠다. 송이와 나는 코로나를 피했지만, 9월 초엔 송이에게 고열을 동반한 아데노 바이러스 의심 증상이 있었다. 일주일 동안 어린이집도 못 갔다. 나는 송이에게 바이러스를 옮은 건지, 뒤늦게 눈에 염증이 생겼다. 요즘도 안약을 열심히 넣고 있다.



이럴 땐 “세월이 약”이라는 말을 믿게 된다. 시간이 모든 걸 해결해주진 않지만, 그럼에도 뜨끈하던 이마의 열이 내려가고, 푹 자는 동안 몸의 피로가 풀리는 걸 보면, 덩어리 시간의 효력을 느낀다. (물론 비상상황마다 도움을 주신 우리의 부모님들께도 늘 감사를… )


아침과 밤바람이 제법 차갑다. 송이는 그새 한 뼘가량 키가 더 컸고, 감정을 구체적으로 말할 줄도 안다. 돌봄 선생님의 수첩에서는 송이의 이런 말도 들었다.


“거실에서 책도 읽고 놀이를 하다가 베란다 쪽 거실창으로 가더니 "엄마 천천히 오세요"라고 말한다. 그래서 왜 그렇게 얘기했냐고 물었더니 "빠방이 꽝" 하면 안 되니까 천천히 와야지, 라고 한다. 가끔 비 오는 날이면 거실 유리창에 서서 "아빠 조심히 오세요. 미끄러지지 말고..."라고 하기도 한다.”


사진첩을 보며 부쩍 큰 송이 모습에 놀라고 한다. 지난 계절 동안 우리는 부지런히 강원도로 여행을 다녀왔고, 플리마켓에 참여했고, 물놀이를 했고 틈틈이 하늘도 봤다. 아직 뭘 가르친 건 없지만 송이가 우리와 놀러 다니는 동안 나름대로 자가학습한 거겠지.


내가 아이 인생의 아름다운 시절에 함께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어쩌면 내가 송이에게 베푼 것보다 받고 있는 게 더 큰지도 모르겠다. 송이의 호시절이 천천히 흐르면 좋겠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