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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현 Aug 29. 2024

여름을 보내며

레디투킥 2024년 여름 회고

Note. 시즌을 타는 비즈니스 때문에 마음고생을 하던 배우자에게 "이참에 이번 여름을 복기해 보면 어때?"라고 말했는데, 며칠 뒤 글 한 편을 보내더군요. 한 번 읽어봐달라고 덧붙이면서요. 덕분에 가족으로서, 배우자가 왜 이 사업을 시작했는지, 매출뿐 아니라 본인에게도 의미 있는 여정이 되려면 앞으로 어디에 더 에너지를 써야 할지 엿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세상에 쉬운 길은 없다지만, 사업을 한다는 건 어둡고 험난한 구간을 통과할 용기가 더 필요한 일 같습니다. 때로는 여럿이서, 때로는 혼자서 말이죠. 모든 사장님들에게 응원을 보냅니다.

레디투킥의 2024년 여름 회고 글을 여러분께도 공유합니다.


안녕하세요, 이번 여름은 잘 보내셨나요?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2024년 8월의 마지막을 향해가고 있습니다. 어젯밤에는 오랜만에 에어컨 바람 없이도 잠들었습니다. 오늘 아침에는 입고 나온 민소매가 무색하게 바람이 차게 느껴져 따뜻한 커피를 주문했고요. 달력을 보니 처서가 지났네요. 절기는 참 정확합니다.


개인적으로 연말이 되면 그 해를 회고하는 시간을 갖곤 합니다. 어떤 일이 있었는지 살피다 보면 그 해를 잘 보내줄 수 있거든요. 수영을 모티브로 건강한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는 브랜드 ‘레디투킥’을 시작하고 어느덧 세 번째 여름을 맞았습니다. 올해 여름은 유난히 더 뜨거웠어요. 잔열이 찬 바람에 가시기 전에 3년 차 초보 사장의 마음으로 이번 여름을 복기해 봅니다.


레디투킥은 꽃 장식이 달린 수영모자를 출시하며 2022년에 시작했습니다. 그사이 수영복, 래쉬가드, 수영가방뿐 아니라 선캡, 미니백 등 물 안팎으로 즐길 수 있는 다양한 제품들로 라인업을 확장 중이에요. 이 브랜드를 3년째 운영하면서 이제 인정하게 됐습니다. 레디투킥의 성수기는 여름이라는 사실을요. 사계절 내내 뜨거운 사랑을 받고 싶지만, 많은 분들께서 여름에 보내주시는 사랑이 다른 계절에 비해 조금 더 크다는 걸요.


누군가는 저희 브랜드의 메인 테마가 ‘수영’이니 당연하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브랜드를 운영하는 차원에서, 회사의 살림을 챙기는 차원에서 성수기와 비성수기가 뚜렷한 것이 처음에는 익숙하지 않았어요. 요즘은 추운 계절에 따뜻한 나라로 여행을 가거나 날씨 상관없이 실내에서 수영을 즐길 수 있는 시설도 많아졌으니 매출이 여름에만 쏠리는 현상이 마냥 반갑지만은 않더군요. 여름이 아닌 계절에도 레디투킥을 즐길 수 있도록 고민하고, 그 결과 조금씩 비수기 매출도 올라오고 있지만 여름의 인기를 따라가기엔 아직 부족합니다.


레디투킥 팀은 올해 여름을 어떻게 보냈을까요?

먼저 레디투킥 팀이라고 적은 이유는 디자인, 생산, 운영 등 거의 모든 걸 혼자 하던 시절을 지나 올여름은 운영 매니저 베이와 디자이너 정은님과 함께 준비했기 때문이에요. 첫 해와 둘째 해에는 대부분 휴가를 떠난 여름의 중앙에서 뒷북치듯 제품을 내놓았어요. 골든 타임을 놓친 느낌이었습니다. 올해는 팀원들 덕분에 4월에 여름 제품을 선보일 수 있었어요. 생산 과정에서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적어도 출발 시점은 맞췄습니다. 크리에이티브 스튜디오 까치아파트먼트와 처음으로 영상 캠페인도 찍어봤고요.

[2024 SS 영상 캠페인 보기]

2024년 봄, 여름 시즌 캠페인 Super Pink Power 이미지 일부

여름을 일찍 준비하시는 분들은 이미 4~5월부터 제품을 구매하기 시작해요. 5월부터 조금씩 파도가 밀려오고, 6월이 되면 저희 팀은 본격적으로 바빠져요. 7~8월은 정신없이 하루하루를 보내고요.


돌이켜보니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마케팅이었어요. 여전히 작은 조직이다 보니, 생산에 집중하며 상반기를 보내느라 정작 제품 출시 후 알리는 데 힘을 쏟지 못했거든요. 다른 브랜드들은 이미 체계적으로 계획한 마케팅을 착착 진행 중인 걸로 보이는데 저희는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되기도 전에 진이 빠진 상황이었어요.


다행히 저희보다 한참 선배이자 내공 있는 브랜드의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좋은 기회로 성수동에서 열린 우트 마켓에 참여했었고, 우트와 협업하여 래쉬가드, 니트 드레스 등을 만들었어요. 프로젝트 렌트가 역삼역 GS타워 로비에서 운영 중인 공간에서는 여름 동안 팝업을 진행하기도 했어요. (팝업은 8월 30일 금요일까지 열려요.) 최근에는 우리나라 대표 의류기업 한섬과도 협업 제품을 출시했어요. 감사한 제안들 덕분에 많이 배우고, 다양한 경로로 레디투킥을 알리고 있습니다.

우트마켓, 우트 콜라보, GSxR 팝업, 한섬 콜라보 제품들

저희는 아직 오프라인에 단독 매장이 없답니다. 그래서 종로구 운니동의 사무실 공간을 활용해, 자체적으로 오피스 마켓을 운영했어요. 평소 회의실로 쓰던 공간은 매주 금요일마다 쇼룸으로 변신했답니다. 오피스 마켓은 단순히 사무실 문을 활짝 열어 제품을 파는 걸 넘어, 저희 고객들을 직접 만나 뵐 수 있는 귀한 기회였어요. 어떤 분들이 어떤 이유로 레디투킥을 사랑해 주시는지 알게 되었죠.


레디투킥 팀이 간직하고 싶은 뭉클한 장면도 있었어요. 어느 금요일은 오픈 시각이 거의 다 되었는데 하필 건물 전체가 정전이 됐어요. 이런 적은 처음이었죠. 저희 사무실은 17층인데 엘리베이터까지 멈추고 에어컨도 꺼진 상황. ‘이 더운 날씨에 고객들이 밖에서 기다리시면 어쩌지’, ‘오피스 마켓을 오후로 늦춰야 하려나’ 이런저런 고민을 하며 소셜 미디어에 알리려던 중, 이미 몇 분께서 사무실을 찾아주셨어요. 계단으로 걸어 올라오느라 땀을 뻘뻘 흘리시면서요. 그날 그분들께 충분히 표현했는지 모르겠지만, 마음속에 깊은 감사함을 넘어 뭉클함이 샘솟았습니다. 그렇게 저희 방식대로 올여름을 잘 보낸 것 같아요.

오피스 마켓은 오는 9월까지 연장 운영됩니다.


이 일을 꾸준히 하는 의미

“여름에는 바빠서 못 놀아.” 주변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지만 아이를 핑계로 여름 동안 틈틈이 놀러 다녔습니다. 수영장뿐 아니라 동해 바다, 서해 바다, 남해 바다, 계곡 등 다양한 물속을 찾아다녔고 정말 재밌었어요. 종종 지인들에게 “저 휴가 때 레디투킥 수모 쓴 사람 봤어요!”라는 제보를 들은 터라 내심 기대도 했지만, 아쉽게도 제 동선에서는 아직까지 레디투킥 고객을 만나지 못했어요. 더 열심히 레디투킥을 알려야겠다는 의욕이 생겼답니다. 물놀이하는 사람들을 보며 다음에는 어떤 제품을 기획해야 할지 아이디어도 떠올랐고요.


휴가에서 돌아와 팀원들에게 이야기했습니다. “우리, 여름에 더 놀러 다녀야 할 것 같아요.” 내년 여름은 조금 더 미리 준비하고, 저희도 여름을 뜨겁게 즐길 수 있길 바랍니다. 여름은 더워야 하고, 겨울 내내 하얗던 피부는 건강한 햇빛으로 수영복 모양대로 새까맣게 타는 맛이 있으니까요.


수영을 못했던 팀원들이 수영의 재미를 알게 된 것도 올여름의 큰 수확이라고 생각합니다. 레디투킥의 복지 중에는 수영 강습 비용 지원이 있어요. 수영을 못하던 팀원 둘이 수영을 시작했습니다. 오전 일찍 수영 강습을 다녀오고 아직 물안경 자국이 남아있는 채로 사무실에서 젖은 수영복을 말리며 오늘 배운 영법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참 반갑습니다.


대표로서 부끄럽지만, 올해부터 꼼꼼하게 숫자를 확인하고 있습니다. 우선 나가는 돈(매입)과 들어오는 돈(매출)부터 구분하고 인지하기 시작했습니다. 3년 만에 두 명의 팀원이 합류했고 충원에 맞춰 사무실도 넓은 곳으로 옮겼습니다. 물류 창고도 좀 더 안정적인 곳으로 이전했고요. 그만큼 인건비, 사무실 월세, 제작비 등 고정비용이 늘어나니 겁도 나지만 성장하는 증거라고 생각합니다. 충분히 고민하고 차근차근, 그리고 건강히 확장 중입니다. 월요일 오후, 주간회의마다 함께 매출을 확인하며 이번 주를 어떻게 보낼지 논의하고 있습니다.


매일 아침 8시면 알람이 옵니다. 어제의 매출 보고서입니다. 어제의 나는 어떻게 살았는지 매일 성적표를 열어보는 느낌이라 긴장됩니다. 사람 마음이 참 간사한 게, 좋을 때보다 안 좋을 때 더 많은 영향을 받습니다. ‘팀원도 늘었는데 매출이 왜 이럴까’, ‘내가 뭘 잘못했을까’, 아니면 ‘무얼 놓치고 있는 걸까’ 답이 없는 고민은 자책으로 끝나기도 합니다.


매출과 별개로 새로운 평가 기준을 고민 중입니다. 브랜드에게 매출은 매우 중요한 데이터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니까요. 저 스스로 힘을 잃지 않는 동기를 만들어야겠습니다. 가령 레디투킥 덕분에 수영을 시작한 사람의 숫자라든지요. 레디투킥 창업 이후, 실제로 제 주변에는 수영을 새로 시작한 사람들이 늘었습니다. 잠깐 세어봐도 열 손가락을 가득 채우네요. 더 많은 분들이 레디투킥으로 수영의 즐거움을 알게 된다면 이 일을 꾸준히 하는 의미가 좀 더 생길 것 같습니다. 물속 즐거움을 아는 친구들을 관광버스에 가득 태워 계곡으로, 바다로 놀러 다니는 상상을 해 봅니다. 저처럼 물속에서 웃고 있는 친구들을 상상하다 보면 하루치 힘이 절로 납니다.


뜨거운 여름을 몇 번이나 더 만끽할 수 있을까

레디투킥을 시작할 때, 계절을 잘 느낄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습니다. 회사원이었던 지난 10년 동안 여름에는 사무실에서 에어컨 때문에 춥고, 겨울에는 히터 때문에 더웠거든요. 요즘은 계절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습니다. 레디투킥을 아껴주시는 분들 덕분에 진한 여름을 보냅니다. 저의 초심을 잃지 않게 응원해 주시는 분 중에는 ‘코리아 그랜마’로 더 잘 알려진 박막례 할머니도 계십니다. 박막례 할머니의 말씀대로 아쉬움 없이, 앞으로도 제게 주어진 여름을 잘 만끽해 보겠습니다.

사랑하는 편드라 우리가 한평생 살면서 이 뜨거운 여름 맨고게를 너물가

해석: 사랑하는 친구들에게. 우리 인생의 이 뜨거운 여름을 몇 번이나 더 만끽할 수 있을까. 여름의 저 끝자락까지, 남은 한 날까지도 즐기자. 우리에게 남은 모든 하루하루가 정말 소중하니까.

— 박막례 할머니(Korean Grandma) 릴스 영상에서 발췌


처서가 지나면서 레디투킥의 매출이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지난 며칠 동안에는 답답한 마음까지 들었습니다. ‘더 이상 발버둥 칠 힘이 남아 있지 않은데 어떻게 해야 하지.’ 그러다가 아이와 들른 서점에서 우연히 발견한 동화책을 같이 읽다가 깨달았습니다. 여름을 이제 보내줘야 한다는 걸요. 물속에서 몸에 힘을 주면 줄수록 가라앉고, 오히려 힘을 빼야 물 위로 뜰 수 있듯이요. 올 여름 레디투킥 팀 모두, 충분히 애썼고 잘했다고, 다음으로 넘어갈 때가 왔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김효정 글, 그림 <여름이 몰려온다> 중

가을에는 새로운 팀원이 합류합니다. 지난봄, 사무실을 이전하면서 책상 4개를 준비했는데 마지막 남은 책상 하나의 주인을 찾았습니다. 함께 하면 조금 더 멀리 볼 수 있을 것 같아 벌써부터 내년 여름이 기대됩니다. 팀원들과 늦은 물놀이를 하러 플레이숍도 갈 예정이고요. 가을에 어울리는 신제품도 준비 중이에요. 


레디투킥 팀은 여름 동안 여러분에게 받은 사랑과 관심으로 한 해를 살아갑니다.

이번 여름도 많이 감사했습니다.


잘 가렴, 2024년 여름아.


레디투킥 양수현 드림.



글: 양수현 (2024.8.28.)

편집: 손현

원문: 레디투킥 홈페이지 RTK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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