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글랜드 유소년 축구 이야기
주인장은 모 활동에서 유소년 축구 관련 해외 출장을 다녀올 수 있었다. 현지에서 함께 동행하며 느끼고 생각한 점을 4편에 걸쳐 전하려 한다. 1편과 2편에선 각각 잉글랜드와 독일의 유소년 축구에 대해, 3편에선 두 나라의 풀뿌리축구 현장에서의 에피소드를 다루고, 끝으로 선진 축구의 대표 국가인 두 나라가 한국 유소년 선수 육성, 더 나아가 한국 축구에 던지는 시사점을 짚어보며 글을 마무리할 예정이다. 부족한 글솜씨는 미리 양해를 구한다.
* 연재 순서
① 잉글랜드 유소년 축구 이야기
② 독일 유소년 축구 이야기
③ 잉글랜드, 독일의 풀뿌리축구(Grassroots)
④ 두 나라가 한국 축구에 던지는 시사점
잉글랜드는 축구 종가답게 이미 잘 갖춰진 환경 속에서 꾸준히 좋은 유소년 축구선수를 육성시키고 있다. 잉글랜드 유소년 축구는 어떤 환경 속에서, 어떤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는지, 한국과 차이를 보이는 특징은 무엇인지 알아보겠다.
환경이 곧 성장으로 이어진다
잉글랜드의 유소년 육성 시스템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자 리그원(3부) 팀 피터버러 유나이티드FC에서 운영하는 아카데미로 향했다. 피터버러는 동부에 위치한 작은 도시다. 한적한 도시 분위기에 비해 아카데미 시설은 반전이었다. 천연 잔디구장 2면, 인조 잔디구장 1면에 더해 에어돔 축구장까지 갖춰져 있었다. 스태프만 30명이 넘을 정도로 팀 규모도 크다.
이들이 좋은 아카데미 시설을 유지할 수 있었던 배경엔 '카테고리 리그'라는 잉글랜드만의 유소년 리그 시스템이 있다. 이 시스템은 우수한 자국 선수 육성을 위해 약 13년 전부터 도입한 것으로 EFL이 프로 산하 아카데미가 유소년 육성에 투자하는 예산과 지원 시설, 스태프 수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카테고리 1~4까지 나눠진 뒤 카테고리 별로 리그를 치른다.
한국과 비교하면 K리그 주니어와 유사하다. 카테고리 1이 가장 상위 그룹으로 피터버러는 카테고리 2에 속해 있다. 카테고리 등급은 아카데미의 리그 성적과는 상관없이 매년 시설, 예산, 육성 등의 조건을 확인해 승격과 강등이 결정된다. 선수는 성적의 부담감이 줄어 경기장에서 더욱 자신 있게 본인의 모습을 보이고, 지도자들도 오로지 승리를 위한 전술을 강요하지 않아도 된다. 설명처럼 카테고리 리그는 좋은 환경이 유소년 축구선수 육성의 기본이라는 생각에서 시작된 제도다.
좋은 훈련을 받을 수 있는 시설과 개선된 선수 지도와 교육을 제공하는 것이 장기적인 선수 육성에 핵심이기에 EPL과 EFL에서 일종의 카테고리 등급으로 품질 보증을 해주는 셈이다. 카테고리 시스템은 궁극적으로 유소년 선수들의 능력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리고 그들이 더 나은 선수이자 인간으로 성장하는데 집중할 수 있도록 팀의 성적은 어디에도 반영되지 않는다.
그 외에도 카테고리 시스템에는 아카데미가 유소년 시설에 더 투자할수록 EPL, EFL에서 나오는 지원금도 늘어나는 구조이며 유소년 단계별 경기 프로그램에도 상세한 규정이 있고 매년 점검을 받는다. 카테고리 1에 소속된 팀들은 만 9세부터 팀과 계약을 맺을 수 있고, 다른 아카데미로 이동할 때 이적료가 붙는다. 이들은 그만큼 유소년 환경 육성에 진심이다.
아카데미가 이런 환경을 갖출 수 있었던 이유는 어린 나이에 좋은 환경 속에서 즐겨야 한다는 생각 덕분이다. 다른 날 방문한 카테고리 1에 소속된 스토크 시티FC 아카데미에서 만난 U14 코치 히카르도 풀러도 "우리는 선수들에게 가능한 좋은 환경에서 많은 도전을 제공하려고 노력한다. 선수들이 이 곳에서 축구를 즐길 때 더 많은 것을 배운다는 점을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볼터치 만큼 중요한 공부
"공부할 시간이 충분히 주어져서 좋다"
피터버러 아카데미에서 만난 두 선수가 해맑게 대답한 말이다. 그들의 대답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대답이기 때문이다. 피터버러 아카데미는 주 1일을 학업 전념 시간으로 정해 놓을 정도로 선수들에게 개인 학업 시간은 중요한 요소다. 한국과는 많이 다른 모습이었다. 한국은 운동 아니면 공부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하는 인식이 강하다.
피터버러 아카데미의 단 로빈슨 총괄 매니저에게 선수들이 공부를 어떻게 하는지 물어봤다. 그는 단호한 표정으로 "매우 중요한 부분"이라며 "많은 선수들이 결국 프로나 국가대표로 가지 못하기 때문에 학업을 병행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학교에서 성적이 좋지 않으면 훈련에 참여할 수 없도록 하는 규칙을 두고 있다. 이를 통해 선수들에게 학업의 중요성을 인식시키고, 축구와 마찬가지로 학업에서도 좋은 성과를 내도록 독려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스토크 시티FC 아카데미에 코치 총괄 폴 해리스도 "팀 내 3명의 교사와 교육 책임자가 있다. 선수들이 학교에서 받은 과제를 할 수 있게 돕고, 교사들이 학교와 소통하여 선수들의 성적이 떨어지지 않도록 관리한다. 만약 성적이 하락하면 축구 훈련 프로그램 참여를 중단시킨다"라고 선수들의 학업을 강조했다.
이들은 이미 선수들의 학업에 관한 부분이 규정으로 체계화 되어 있었다. 모든 카테고리 소속 클럽은 교육 담당자를 두어 선수들의 학업을 관리하고 학교와 소통해야 한다. 선수들이 학업 성취도를 유지하며 훈련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교육 담당자 주도로 리그, 학교와 클럽이 끊임없이 소통하며 학업을 신경쓰고 있다.
또한 만 16세 이전 선수들은 일반 학교를 다니며 클럽에서 훈련을 받는 형태로 한국과 거의 같다. 하지만 만 16세 이후 GCSE라는 일종의 중학교 졸업 시험을 통과한 뒤 자신의 진로에 따라 진학을 결정하는데 축구 선수가 되기로 결심한 사람은 아카데미에서 학업 교육과 축구 훈련을 병행하게 된다. 이때 클럽 아카데미는 일종의 축구 전문 학교의 역할을 맡게 된다.
아카데미에서 진행되는 교육은 EFL 산하 'LFE(League Football Education)'라는 교육 기관의 정규 과정에 따라 운영된다. 이 정규 과정은 정식 학력으로 인정받을 수 있으며 축구 외에 다양한 직업 교육을 선택해 받을 수 있고, 우수한 학업에 뜻을 가진 선수는 추가로 일종의 대입 시험인 A-Level 과목을 택해 시험에 응시할 수도 있다. 모든 사람이 프로 축구선수가 될 수 있는 건 아니기에 공부를 배제하지 않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했다.
물론 연령이 오를 수록 훈련량이 늘어나고 학업과 함께 병행하기 어려운 건 사실이다. 하지만 선수들 모두 학업을 절대 놓을 수 없다고 이야기 했고 학교 공부를 할 수 있는 시간이 많이 주어지는 것에 대해 만족스러워 하기도 했다. 그만큼 이들은 학업을 축구 만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 어릴 때부터 꾸준히 운동과 학업을 동시에 강조 받았기 때문에 연령대가 높아져도 공부에 대한 거부감이 줄어들고 오히려 생각하는 선수로 성장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끊임없이 소통하는 선수-지도자-학부모
선수-지도자, 팀-학부모 등 이해관계 당사자들과 팀 사이의 소통이 꾸준히 이뤄지며 신뢰를 쌓아간 부분도 신기한 점이었다. 팀의 공통된 철학에 맞춰 훈련과 교육이 이뤄지고 이를 모든 선수, 코치, 학부모까지 모든 이해관계자에게 주기적으로 공유한다. 팀이 가고자 하는 방향을 이해관계자 모두가 완벽히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 기본 전제였다. 팀의 교육 담당자는 매해 아카데미의 관한 결과 보고와 앞으로의 계획을 끊임없이 공유하고 학부모들과도 소통의 벽을 허물어 상담을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원활한 소통은 개인 맞춤형 서비스로 이어졌다. 피터버러 아카데미에선 어디를 가도 선수가 자신의 상태, 의견을 표현할 수 있는 장치들이 마련되어 있다. 복도에는 당일 훈련의 강도를 선수 개인이 평가할 수 있는 칠판을 걸어두고 코치들이 이를 다음 훈련에 반영했다. 체력단련실에는 본인 포지션과 발전 시켜야 하는 부분에 맞춰 운동 계획이 개인 파일로 나눠져 있었고, 식당에서도 동일하게 개별 문서가 놓아져 있었다.
스토크시티 아카데미 U12 팀미팅에선 이상적인 양방향 소통을 볼 수 있었다. 지도자가 여러가지 상황을 제시하면 각 포지션의 선수들은 어떤 선택이 더 나은 선택인지 대답하는 토의 형식이었다. 지도자는 선수들이 얘기하는 것에 오로지 긍정적인 표현으로 대답했고 아쉬운 점은 좋은 방향으로 다시 생각할 수 있게 유도했다. 어린 선수들은 틀리더라도 더 적극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대답하는 왁자지껄한 미팅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