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한 번의 삶을 쓰다
얼마 전에 김영하 작가의 '단 한 번의 삶'을 읽었다.
그의 이야기를 읽다 보니 나의 삶도 그의 이야기와 뒤섞인다.
나도 모르게 시작된 나의 삶을 천천히 사유해 본다.
단 한 번의 삶. 그 말이 내 안에서 맴돈다. 대단하지도, 하찮지도 않은 이 유일한 시간.
나는 이 시간을 어떻게 채워야 할까. 생각이 꼬리를 물다가 상상해 본다.
조선후기, 노비의 딸로 태어났다면 나는 무엇을 꿈꿨을까.
먹고사는 것, 그 단순하면서도 무거운 짐. 그 속에서는 꿈이란 단어조차 사치였을지도 모른다.
대감집 여식이었다면, 비단옷을 입고 시를 읊으며 살았을까?
그럼에도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며 불공평한 세상을 깨달았을까?
아니면 주어진 특권에 안주하며 세상의 질서를 당연히 여겼을까?
그런 상상을 하다 보면, 지금의 나도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지금의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조선후기의 노비였다면, 어쩌면 생존이 유일한 목표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이 시대의 나는 무엇을 위해 발을 내디뎌야 할까.
꿈을 꾸며 살아야 하는가, 아니면 현실의 무게를 인정하고 안전망 안에 머물러야 하는가.
꿈을 꾸는 것은 자유일까, 부담일까. 사회는 말한다. "꿈을 가져라, 네가 원하는 삶을 쟁취하라."
하지만 그 꿈은 정말 내 것인가, 아니면 세상이 내게 심어 놓은 또 다른 신분제도일까.
성공, 부, 명예라는 이름의 꿈은 때로 노비의 사슬처럼 내 발목을 잡는다.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나는 과연 그걸 알기 위해 얼마나 깊이 나를 들여다보았나.
꿈을 좇는다는 건, 어쩌면 나를 찾아가는 여정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길은 불확실하고, 험난하다. 실패의 그림자가 도사리고, 세상의 냉소적인 시선이 기다린다.
반면, 현실을 받아들이고 안전망 안에 머무르는 삶은 안정적이다.
매일 아침 같은 시간에 일어나, 익숙한 일상을 반복하며, 예측 가능한 미래를 쌓아가는 것.
그것은 노비의 삶처럼 숨 막히는 제약은 아니지만, 또 다른 형태의 틀이다.
안전함은 편안하지만, 그 안에서 나는 점점 작아지는 나를 느낀다.
꿈을 꾸지 않는 삶은 편할지 모르지만, 내 안의 무언가가 조용히 시들어가는 소리를 듣는다.
그 소리가 나를 불안하게 한다.
꿈을 꾸는 것은 본능일까, 사회가 심어준 욕망일까.
성공, 자유, 행복이라는 이름의 꿈은 때로 나를 이끌지만, 때로 나를 옭아맨다.
안전한 삶을 택할 것인가, 위태로운 꿈을 좇을 것인가. 그 갈림길에서 나는 자꾸만 주저한다.
현실의 무게는 무겁고, 꿈의 길은 불확실하다.
하지만 단 한 번의 삶이라면, 나는 무엇을 남기고 싶을까.
정답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어리석은 나는 글을 쓴다.
나를 기록하는 것은 나를 지키는 일이다. 내 안의 작은 불씨를 꺼지지 않게 지키는 일이다.
부끄럽고 위태로운 마음으로, 나를 잃지 않기 위해 펜을 든다.
누군가의 문장에서 불씨를 얻고, 그 불씨가 내 안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피워낸다.
글을 쓰는 순간, 나는 나를 마주한다. 나는 이 글자들 속에서 나를 그린다.
완벽하지 않아도, 누군가의 비웃음을 살지라도, 이 기록은 나의 것이다. 꿈과 현실 사이에서 방황하는 나,
부당함에 분노하면서도 무력한 나,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안고 앞으로 나아가는 나.
이 모든 조각이 모여 단 한 번의 삶을 만든다.
나는 여전히 답을 찾지 못했다. 꿈을 좇아야 할지, 현실에 머물러야 할지. 하지만 글을 쓰며 나는 깨닫는다.
답을 찾는 것보다 중요한 건, 질문을 멈추지 않는 일이다.
부끄러움을 안고, 위태로움을 딛고, 나는 나를 기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