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들은 척, 나는 모른 척
당뇨 합병증으로 투석을 시작한 그녀는
예전에는 잘 나가던 사모님이었다 한다.
나는 종종 타성에 젖어,
매일 여기가 아프고 저기가 아프고
힘들지 않은 날이 없다는 그녀의 이야기를
귓등으로 듣고 있다.
이 일을 잘하려면 귓등으로 들을 줄 알아야
이 바닥에서 오래 버틸 수 있다는 걸
경험으로 배운 것이다.
어쩌면 그녀도 나의 이야기를
귓등으로 듣고 있을지도 모른다.
“물 많이 먹지 마라, 짜게 먹지 마라, 약은 잘 챙겨 먹었냐”
매일같이 반복되는 나의 잔소리를
그녀도 그저 흘려보내고 있을지 모른다.
아하! 우리는 서로
귓등으로 대충, 대충 듣고 있었구나.
그렇게 생각하니 또 웃음이 난다.
매일같이 내가 던지는 드립에
“그래, 찔러라 찔러~”
쿨하게 외치는 배포 큰 왕년의 사모님.
우리는 서로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지만
이상하게 마음은 잘 통한다.
주사 바늘을 들고 키득거리며
우리는 친구도 아니고 가족도 아닌,
그 오묘하고 이상한 인연을 쌓아가고 있다.
생각해 보니
귓등으로 듣는 기술이 늘어서 오래 일한 게 아니었다.
어느새 정이 들어서 이 바닥을 못 떠나는 거지.
왕년의 사모님이여,
나의 반복되는 잔소리를
귓등으로 듣는 척 하지만
사실 물도 덜 마시려 애쓰고,
약도 꼬박꼬박 챙겨 먹으려는 거 다 알고 있어요.
그래서 내가 이 바닥을 못 떠납니다.
잔소리요? 내일도 합니다.
귓등으로, 잘 들으시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