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주인
호기심과 꿈을 좇아 서울로 상경했다. 와글거리는 사람들로 가득한 서울은 반짝거렸다. 콩나물시루의 콩나물처럼 빽빽이 들이찬 대중교통을 타고, 공부만이 목적이었던 시간을 지나 직장이라는 분야를 통해 사회의 일원이 되었다. 지금까지 보낸 시간을 나의 의지라고 생각했으나, 흐름을 타고 오게 된 건 아닌지 종종 생각할 때도 있지만 나쁘지만은 않은 삶이었던 듯싶다. 여러 주거공간을 거쳐 나는 임대인이 맨 위층에 살고 있는 다세대 주택에 살았다. 임대인은 여든 살이 넘었던 노부부였는데, 주로 할아버지께서 집 관련 문의를 대응해 주셨다. 보증금도 높지 않고 월세도 적당한 그런 5평 남짓의 분리형 원룸에서 꽤나 차곡차곡 삶을 쌓아가고 있었다. 조금의 안정을 찾아 몇 년간은 이사할 일 없겠다 싶었다.
그런데, 6월의 어느 휴일이었다.
“띵동, 띵동… 쿵쿵쿵!”
“띠디딕, 찰칵-”
잠결에 꿈인가 싶다가도 문이 열리는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혹시 집주인인가, 잠든 사이에 연락을 미처 보지 못 한 건가 싶어 휴대폰을 확인했다. 조용했다.
다행히도 안전고리가 이중으로 걸려 있어 문은 열리지 않았고, 도어록이 다시 잠겼다.
나도 숨을 죽였다.
잠깐의 정적이 흐른 뒤, 소리치는 목소리와 함께 도어록이 다시 열렸다.
집주인 할아버지였다.
이유는 다른 호실의 에어컨 작동이 안 돼서, 실외기가 같이 연결되어 있는 내가 사는 집의 작동여부를 확인해 보려고 집 문을 열었다고 한다. 머릿속에서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안전장치를 하지 않았더라면? 집에 없었더라면? 이번이 처음일까? 마스터키로 언제든 열 수 있는데 다음번에는 이런 일이 없다는 보장이 있을까? 계약서에 만기 전 이사면, 복비는 세입자가 물어야 한다고 했었는데… 원인제공에 따른 책임소재 관련 조항이 있었나?
할아버지는 들어와서 에어컨을 한 번 켰다 끄더니, 자신의 집으로 돌아갔다. 홈 CCTV를 설치하고, 그 길로 이사 준비를 시작했다. 퇴거 과정에서 트러블은 없었다. 퇴실일자, 보증금 정산 등은 깔끔하게 협의된 것이 참 다행이었다. 익숙한 동네라 집을 새롭게 구하더라도 근처가 좋을 듯 해 동네 부동산을 돌았다. 중개인 중 어떤 이는 문을 두드렸으니 그 정도면 좋은 집주인인데 그냥 사는 건 어떻겠냐고 말했고, 어떤 이는 임차한 공간은 침범해서는 안 된다며 나오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결국 나를 보호할 공간을 찾지 못했다.
뼈해장국과 소주를 마지막으로, 그 동네를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