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엄지 Sep 06. 2017

병동 간호사와 수술실 간호사

병동과 수술실은 완전히 다르다


많은 분들이 '수술실에서 일하면 뭐가 좋고 뭐가 나쁜가요?'라고 물어보십니다. 대부분의 간호사가 교대근무를 하니 '수술실은 그래도 상근직이니까 규칙적인 생활이 가능하다' 정도 생각하실 겁니다. 하지만 부서를 선택할 때 그것 말고도 짚어봐야 할 점들이 있습니다. 짧게나마 병동에 있어보기도 하고 수술실도 경험한 사람으로서, 병동과 수술실의 차이점에 대해 몇 가지 기준을 가지고 써보려 합니다. (그 둘을 모두 경험하신 분이 계시다면 댓글로 또다른 의견 부탁드리겠습니다)






모두에게 좋은 건 없다


장단점을 쓰려고 하니 '장단점'이라는 개념 자체가 마음에 걸립니다. 사람마다 체질이 다르고 맞는 음식이 따로 있는 것처럼, 누군가에겐 좋은 것이 누군가에게는 나쁠 수 있습니다. 또는 단점이 많더라도 강력한 장점 하나로 용서가 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좋다 나쁘다의 가치판단은 어디까지나 개인적이고 상대적이라는 것이지요. 어떤 회사에서 신제품이 나왔는데, 나눠준 자료로만 후기를 작성해 포스팅하면 십만 원을 준다고 합니다. 어떤 블로거는 '와 대박 십만 원 벌었다!'하고 바로 승낙할 겁니다. 그리고 어떤 블로거는 '제품 좀 살펴보고 결정하겠습니다' 요청할 수도 있지요. 다른 블로거는 '죄송한데 표현의 자유를 십만 원에 팔 수는 없습니다' 하고 거절할 수도 있습니다. 이 모든 결정은 블로거의 가치관뿐 아니라 제품의 종류와 돈의 액수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지요. 여러분의 중요한 결정에 작은 도움이 되길 바라며,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나는 교대근무를 할 수 있는 사람인가?
교대근무의 장점을 누리는 사람들이 있다


교대 근무가 건강에 치명적이라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제 주위를 보면, 교대근무를 남들보다 쉽게 해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난 아무래도 삼교대에 특화됐나 봐."

"나이트 근무가 얼마나 좋은데! 낮엔 바쁘잖아."

"몰랐는데 나 야행성인가 봐. 밤에 일하니까 좋더라."

"앞으로 상근직은 절대 못할 거 같아. 오프 때마다 여행 가는 거 재미 들렸어."


물론 나이가 들면 힘들어질 수도 있고, 실제 본인들이 느끼는 것보다 건강이 악화됐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쨌든 지금, 이들에겐 교대근무가 장점으로 작용합니다. 교대근무는 상황에 따라 이틀에서 5일까지도 오프(off)를 받기 때문에, 쉬면서 금세 회복된다고도 합니다. 부서 상황에 따라 관리자 재량껏 장기 오프를 주기도 하는데, 세상에 10일까지 받는 친구도 봤습니다. 평일엔 비행기 티켓도, 숙박비도, 모든 게 저렴하지요. 활동적이고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감내할 만합니다. 야간수당이 붙으면 급여도 껑충 뛰고요.




반면, 교대근무에서 어떤 장점도 찾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놀면서라도 밤을 새울 수 없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수면의 질이 떨어지면 일상이 무너지는 사람에게는, 야간수당과 장기 오프가 전혀 매혹적이지 않습니다. 저는 졸리면 자고 배고프면 먹는 삶에 타격을 입자 그 여파에 정말 놀랐습니다. 허공에 매달려 허우적대는 기분이었지요. 집은 지방이고 당시 고시텔에 살고 있었는데, 뒷일 생각할 겨를 없이 광속으로 그만둘 만큼 강렬한 불행이었습니다.


수술실은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아침에 출근해서 오후에 퇴근하는 규칙적인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수술이 정해진 시간에 땡! 하고 끝나지는 않기 때문에 연장 근무를 하게 됩니다. 병원의 규모가 클수록 더 자주, 더 늦은 시간까지 하게 되지요. 그래서 대형 병원의 경우에는 수술실이라도 이브닝, 나이트 근무가 있기도 합니다. 종합병원도 연장되거나 응급으로 뜨는 수술을 커버하기 위해 나이트, 또는 당직 근무가 있지요. 병동의 야간 근무와 다른 점은, 수술이 없거나 끝났다면 당직실에서 잠을 잘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수술실에서는 신규 간호사가 충분히 훈련되어 모든 수술을 커버할 수 있을 때까지 야간근무를 넣지 않습니다. 그래서 입사 초기에는 거의 칼퇴가 가능하지요. 또한 병동은 업무 자체가 '개인플레이'여서 퇴근이 늦어지더라도 '일이 많아서인지, 일이 느려서인지' 모호합니다. 때문에 연장 수당을 신청하는 것도 애매하고 눈치가 보이지요. 신규 간호사라면 꿈도 꾸지 못할 일입니다. 하지만 수술실은 명확한 근거(수술 & 마취 종료 시간)가 있기 때문에 부서 차원에서 잘 챙겨주는 편입니다.




 나는 어떤 성격의 직무에 더 적합할까?




학습 곡선(Learning Curve)이라는 말 들어보셨나요? 독일의 기억심리학자 에빙거스가 '망각 곡선'을 제시한 것이 최초인데, 20분이 지나면 새로운 정보의 절반을 잊어버리게 된다고 하지요. 이후에 스키너를 비롯한 여러 심리학자들이 '학습 곡선'을 이야기했습니다. 가로축은 학습 시간이나 횟수, 세로축은 학습의 정도를 나타내지요.


병동의 직무는 '여러 업무의 합'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바이탈 사인을 재고, I/O를 확인하고, 환자를 검사실에 보내고, 투약하고, 설명하고, 수술 준비를 하거나, 보호자 응대를 합니다. 각각의 업무가 서로 관련은 있지만, 분리해서 배울 수 있습니다. 분리가 가능한 업무이기 때문에, 각각의 숙련도가 서로 영향을 적게 주는 편입니다.



병동의 직무는 '분리가 가능한 여러 업무의 합' 이다



그래서 배움의 순서를 때에 따라 조절하거나, 쉬운 것부터 가르칠 수 있습니다. 보통 실습 학생이나 신규 간호사가 오면 환자의 활력징후를 먼저 측정하게 하지요. 이렇게 가르치면, 병동에서 신규 간호사가 '기술적으로' 능숙해지는 데 보통 일 년 정도가 걸린다고 합니다.


병동 간호사의 학습곡선 : 가파르다



그런데 수술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수술실의 모든 업무는 굉장히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어서, 하나를 배워야만 다른 하나로 넘어갈 수 있습니다. 외과적 손씻기를 할 줄 알아야 멸균가운과 멸균장갑 착용법을 배울 수 있고, 멸균술을 알아야만 수술상을 차릴 수 있고, 수술에 쓰이는 모든 기구의 이름과 해부학을 알아야만 수술과정을 이해할 수가 있습니다. 수술기구의 이름뿐 아니라 용도까지도 정확히 알아야 집도의의 손에 제대로 쥐어줄 수 있지요. 각각의 업무를 떼어놓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수술실 직무는 '분리가 불가능하고 유기적'이다



그래서 수술실은 어딜 가나 교육하는 과정이 대개 비슷합니다. 먼저 알아야 할 것을 건너뛰고 그 다음을 가르칠 수는 없지요. 그런데 이 모든 과정을 '각 진료과'마다 처음부터 다시 반복해야 합니다. 비뇨기과에서 몇 개월 훈련하더라도 일반외과로 가면 기구와 수술이 완전히 다릅니다. 일반외과 트레이닝이 끝나면 정형외과로 가고, 정형외과가 끝나면 이비인후과로 가고... 다른 과로 넘어갈 때마다 새롭게 신규가 되지요. 수술실에서는 이렇게 그 병원의 모든 외과를 다 돌아야만 진정한 '독립'입니다. 보통 외과는 일반외과, 정형외과, 흉부외과, 산부인과, 비뇨기과, 이비인후과, 유방갑상선외과, 신경외과, 성형외과 등이 있습니다. 각 과마다 다양한 종류의 수술이 있고요.


수술실 간호사의 학습곡선 : 완만하다



이런 까닭에 수술실에서는, 신규 간호사가 일 년이 지나도 전혀 숙련되지 못합니다. 제가 수술방에 있을 때 많은 집도의께서 "수술방 간호사는 2년에서 3년은 지나야 일인분을 한다"고 하셨습니다. 학습 곡선 얘기도 그분들이 해주셨지요. 제 경우를 보더라도 만으로 2년이 지나면서 가속도가 붙기 시작했습니다. 빨리 갈 수 있는 지름길은 없습니다. 차곡차곡 누적되어야만 하지요. 스스로도 답답하겠지만 학습곡선의 그래프가 치고 올라오는 시점까지는 지겹도록 혼나게 됩니다.




나는 얼마나 오래 집중할 수 있을까?


병동 간호사는 뛰어다니느라 화장실을 못가고,


이제 마지막입니다. 병동 간호사는 동시다발적으로 여러 업무를 합니다. 이 환자를 보다가 저 환자를 보고, 이 일을 하다가도 저 일을 합니다. 갑자기 우르르 입원하기도 하고, 수술하고 돌아온 환자의 상태가 나빠지기도 합니다. 의사에게 노티해야 하는데 연락이 안 됩니다. 초조하고 답답해 죽겠는데 원무과, 수술실, 검사실 등 여러 부서에서 재촉하는 전화가 옵니다. 수술방에서는 수술환자 왜 안 보내냐고 난리가 났습니다. 이 와중에 어떤 환자는 정맥주사가 빠졌다고 다시 놔달라고 하네요.


병동 간호사는 병동을 날아다닙니다. 주의를 이리저리 돌리면서 말도 많이 해야 하지요. 제 친구들 중에서 병동에 빠르게 적응한 이들은 '본인이 활동적인 편이라고 말하며 가만히 있으면 좀이 쑤신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수술실 간호사는 수술하느라 화장실을 못간다.


반면 수술실 간호사는 수술 시작부터 종료까지 '움직임이 제한됩니다'. 빠르면 1시간 만에도 끝나지만 길면 몇 시간이 걸릴지 모르는 게 수술입니다. 저는 일곱 시간을 수술하고 당직 근무자와 바통 터치를 한 경험이 있습니다. 일곱 시간 동안 잠시라도 딴생각을 하면 안 됩니다. 스크럽이 느슨해지면 집도의가 바로 눈치챕니다. 계속 필드를 보며 집중해야 하지요. 수술 도중에 화장실이 가고 싶다고요? 엉덩이가 가렵다고요? 배가 고프다고요? 택도 없는 소립니다. 일단 들어갔으면 수술이 끝날 때까지, 또는 교대할 때까지 책임져야 합니다. 물론 정말 긴급한 상황이라면 동료가 손을 바꿔주겠지만, 흔치 않은 일이지요.



실수를 반복하면 집도의와의 신뢰가 깨진다


스크럽 간호사는 가만히 서서 기구를 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멸균영역 안에서 누구보다 바쁩니다. 수술의 흐름이 끊기지 않도록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야 하지요. 스크럽이 머뭇거리면 수술에 자꾸 '렉'이 걸립니다. 아무리 너그러운 성격이라도, 중요한 순간의 실수를 웃으며 넘기는 집도의는 없습니다. 스크럽이 반복해서 실수하면 집도의는 안심하고 수술할 수 없게 됩니다. 신뢰가 깨지면 스크럽의 교체를 요구하기도 하지요.





나는 무엇을 더 쉽게 견뎌낼까


결국, 편한 곳이 아니라 무엇을 견뎌낼지 선택해야 합니다. 장점은 곧 단점이기도 하지요. 장단점을 따지기보다는 나에게 맞는 부서를 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저는 수술실에서의 시간이 무척 힘들었지만, 돌이켜보면 병동보다는 훨씬 적성에 맞았습니다.  1) 근무 형태  2) 직무의 성격  3) 본인의 성향,  이 세가지를 잘 살피고 시뮬레이션을 돌려보세요. 실습나가기 전의 간호학과 학생이라면, 이 글을 읽고 해당 부서의 선생님에게 자신을 대입해보면 도움이 될 겁니다.










엄지 umji.letter@gmail.com

매거진의 이전글 보이지 않는 의료진, 수술실 간호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