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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지 Sep 08. 2017

수술실 신입을 위한 팁

'신규'로 불리는 시간 6개월 단축하는 법


우리는 실제로 근무해보지 않더라도 자주 가는 익숙한 곳에선 '직원들이 이렇게 일하는구나' 쉽게 짐작합니다.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해보지 않았더라도 손님으로 많이 가봤기 때문에, 주문이 들어가면 레시피에 맞춰 음료를 만들고 서빙해준다는 걸 알지요. 카페는 너무 흔한가요? 병동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입원하지 않더라도, 병문안을 가면 누구나 간호사들이 일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수술실은 내가 수술을 받으러 들어가도 사람들이 어떻게 일하는지 볼 수 없습니다. 보통은 마취되어 정신을 잃거나(?) 부분마취로 깨어 있더라도 수술이 시작되기 전에 환자의 시야를 가립니다. 살면서 이렇게 볼 일이 없다 보니, 신입 간호사로 들어오면 처음엔 구경하느라 바쁩니다. 수술 장면을 관찰하며 '신기하다...' 넋을 놓거나, 기구나 장비를 보여주면 '우와...' 합니다. 너무도 이질적이고 어색한 공간에 들어왔기 때문에, 이제 수술실의 일원이 되었는데도 외부인처럼 얼어 있지요. 그런데 이 상태를 빨리 벗어나야 일을 배울 수 있습니다.


수술하는 순간만 조용할 뿐, 수술실도 매우 바쁘다.


예전에 유명한 삼겹살집에서 친구와 고기를 굽고 있었습니다. 옆 테이블 손님이 일어났는데, 직원이 상을 치우는 속도가 어찌나 빠르던지 제 눈을 의심할 정도였지요. 사소한 움직임 하나하나에 군더더기가 없었습니다. 다음 손님이 채 앉기도 전에, 이번에는 거의 던지듯이 테이블 세팅을 하는 겁니다. 밑반찬과 앞접시가 흐트러짐 없이 상에 착지하는 걸 보고 감탄을 금치 못했습니다. 그동안 바쁜 상황에 얼마나 단련이 되었을지 눈에 선했지요. 저는 쌈을 싸서 입안 가득 넣고 우물거리며 친구에게 말했습니다.

"나도 수술실에서 저렇게 일하는데... 완전 똑같다."






1.  흐름 파악하기


여러분이 그동안 본 적만 없을 뿐이지, 수술실이 돌아가는 시스템은 식당과 비슷합니다. 손님이 들어오면(환자 입실), 메뉴를 고르고(합의된 방법으로 마취) 자리에 앉습니다(수술 침대에 적절한 자세로 고정). 테이블이 더러우니 깨끗이 닦고(수술 부위 소독) 테이블보도 예쁘게 깔고(멸균포 덮기) 상을 차립니다(수술을 위한 각종 세팅). 기다리면 주문한 음식이 나오지요(집도의 수술 시작). 포크와 나이프를 이용해 음식을 다 먹고 나면(각종 기구와 장비로 수술), 뒷정리를 합니다. 정리가 끝나면 바로 다음 손님 맞을 준비를 하지요. 식당 규모에 따라 테이블(수술환자 1명이 들어가는 방) 개수가 다르고, 손님이 많을수록 테이블 회전율이 높아져 직원들이 바빠집니다. 수술 중에 조용하다 뿐이지,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건 식당이나 병동과 똑같습니다.


처음부터 칼군무 추려고 애쓰지 말고 흐름 파악하기


수술실에 처음 출근했다면, 환자가 들어와서 어떤 과정을 거쳐 다시 나가게 되는지 흐름 flow을 아는 것이 우선입니다. 책을 읽기 전에 목차를 훑으며 '음, 이런 내용이군.' 파악하는 것이지요. 같은 흐름이 매 수술마다 반복되니 하루면 충분합니다. 당장 수술하는 선배를 관찰하며 따라잡으려 하기보다는, 조직이 굴러가는 큰 그림을 봐야 합니다. 큰 그림을 먼저 봐야 작은 그림도 수월하게 봅니다. 어차피 선배처럼 칼군무 추듯 일하려면 앞으로 2년 걸립니다. 조급해하지 말고, 한 발짝 떨어져 일의 흐름을 파악하세요.





2.  언어 익히기


어딜 가나 업계용어가 있습니다. 병원에서는 의학용어가 그것이지요. 그런데 의학용어가 아닌데도 자주 쓰이는 표현들이 있습니다. 의학용어야 학교에서도 배우고 검색하면 나오지만, 이런 표현들은 어렵지 않은 말인데도 막상 들으면 당혹스럽습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입니다.

"이건 하모닉이라는 장비인데, 여기 body 윗부분을 잡고 cable을 돌려 끼워서 고정해. 소리가 날 때까지 돌려서 locking이 되면, 여기 handpiece를 쥐고 button 살짝 눌러서 test 하고. 참! 사용할 때 tip에 tissue가 눌어붙으면 작동이 잘 안되니까 틈틈이 wet gauze로 닦아주고. 아, 근데 너무 세게 닦으면 여기 blade 부분에 packing 된 게 빠질 수 있거든? 그니까 조심해야 돼. 알겠지?"



신입간호사와 경력간호사는 눈높이가 달라 의사소통이 어렵다


선배 간호사가 이렇게 후루룩 말하고 쳐다보면, 신입 간호사는 애써 쓴웃음을 지으며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입니다. 얼굴에서는 총명함이 사라지고 눈동자는 텅 비어갑니다. 많은 신입 간호사들이 "하나도 모르겠어요. 다시 알려주세요." 말하지 못하고 넘어가지요. 선배는 분명 열심히 가르쳐주는데, 도대체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습니다.

숙련된 간호사는 이미 일당백을 하고 있는 와중에 프리셉터로 지목될까 벌벌 떱니다. 프리셉터가 되면 일이 정확히 3배가 되지요 (원래 일 + 가르치는 일 + 후배 커버). 가르치기도 배우기도 어려운 실무가 이렇다 할 교육체계 없이 선임 간호사 1명에게 오롯이 맡겨집니다. 엄청난 양의 지식과 기술을 전수해야 하는 프리셉터는, 신입 간호사의 눈높이가 아닌 자신의 눈높이에서 설명을 쏟아내게 됩니다. 가르치는 사람은 한 번만 설명해도 알아들었으면 좋겠고, 배우는 사람은 한 번만 더 설명해주면 좋겠습니다. 충분한 시간을 두고 이해하기 쉽게 차근차근 알려주면 좋겠지만, 많은 병원의 현실이 그렇지 못합니다. 그래서 신입 간호사는 바쁜 선배의 눈치를 보며 끙끙 앓습니다.

외국 여행을 할 때 그 나라 언어를 조금이라도 공부해가면 고생을 덜 하지요? 마찬가지로 구글이나 유튜브에서 이미지나 영상을 접하며 수술실 언어를 미리 익히면 엄청난 도움이 됩니다. 출근해서 특정 진료과에 배정이 된 상태라면 해당 과의 수술명과 해부학을 빨리 익히고, 스크럽 교육을 받는 중이라면 기구 이름을 최대한 빨리 숙지해야 합니다. 언어를 알아야 서로 말이 통하고, 의사소통이 되어야 그때부터 일을 제대로 배울 수 있습니다.





3.  집도의 중심으로 일하기


처음에 스크럽 간호사를 하게 되면 사지가 분리되는 듯한 기분이 듭니다. 드럼을 배워본 적 있는 분은 아마 무슨 말인지 아실 겁니다. 내 몸인데 내 뜻대로 움직이지 않고 손발이 따로 놀지요. 하다못해 메스를 주는 것조차 쉽지 않습니다. 외과 의사와 스크럽 세계에는 '이 기구는 이렇게 주고받는다'라는 무언의 약속이 존재합니다. 그런데 그 규칙은 절대 머리로만 배울 수가 없지요. 몸에 익어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익힐까요? 그냥 반복해서 연습하면 될까요?

일머리는 공부머리와 다르다는 말이 있습니다. 여러 해석이 있겠지만 일머리는 보통 '센스'로 통합니다. 그리고 저는 수술실에서의 센스란 역지사지, 즉 공감능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얼마나 집도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느낄 수 있는지가 관건이지요. '스크럽은 메스를 이렇게 줘야 한다'가 아니라, '집도의는 메스를 이렇게 사용한다'고 받아들이는 간호사가 일을 빨리 배웁니다.


역지사지, 스크럽은 집도의 마음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아직 숙련되지 않은 신입 간호사가 수술에 들어오면 집도의가 이런 불평을 합니다.

"왜 네가 주고 싶은 대로 주니? 내가 쓸 수 있게 줘야지."

"수술 도와주러 왔니, 방해하러 왔니?"

"아 진짜 (삐----)$*@!%!~"

사용자는 집도의인데 스크럽이 자기중심적으로 기구를 주기 때문입니다. 어시스트와 스크럽은 외과 의사의 손과 발입니다. 수술하는 동안은 한 몸이나 다름없지요. 어느 교수님이 학회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어시스트가 보여주는 대로, 스크럽이 주는 대로 했더니 수술이 끝났다."


스탭들이 차려준 밥상에 수저만 얹었다는 수상소감처럼 겸손한 농담이지만, 그 자리에 있던 외과 의사들은 하나같이 고개를 끄덕이며 크게 공감했다고 합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수술실 간호사의 고객은 집도의고, 집도의 중심으로 생각하면 모든 게 순조롭습니다.



신뢰가 쌓이면 집도의가 스크럽을 매우 아낀다


제가 신입일 때 이걸 알았다면 적응기간이 6개월은 단축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아직 미숙할 때에는 집도의가 '갑질하는 악마'로 보이겠지만, 스크럽 간호사는 일반적인 order를 수행하는 사람이 아니라 집도의의 손발입니다. 그래서 스크럽이 제 몫을 해내지 못하면 그 로딩이 고스란히 의사에게 걸리지요. 모바일 앱을 하나 깔려고 해도 튕기고 버벅대면 짜증이 나는 게 사람 마음입니다. 하물며 수술하는데 자꾸 렉이 걸리면 어떤 기분일까요?


"하... (깊은 한숨)"

"너, 내 수술 들어오지 마."

"연습을 하고 들어와야지, 넌 내 수술이 연습이니?"


수술실 간호사는 하루 종일, 누구보다 가까이서 집도의와 부대낍니다. 신입 때는 날 가장 힘들게 하는 사람이지만,


"수술할 맛 난다"

"이야, 덕분에 수술 빨리 끝났네요."

"오늘도 잘 부탁합니다, 스크럽 선생님."


신뢰가 쌓이고 팀웍이 형성되면 나를 가장 기쁘게 하는 사람이지요. 내가 쏟는 노력과 실력의 변화를 누구보다 민감하게 알아차리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수술을 함께 한다는 건, 끈끈한 동료애가 생기는 찐한 시간이기도 합니다. 수술실에서 일하게 될 예비 간호사들 모두, 집도의가 격하게 아끼는 동료가 되길 바라며! 응원하겠습니다.









엄지 umji.letter@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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