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엄지 Sep 13. 2017

각종 기사와 통계로 보는 간호사

장렬히 전사하는 백의의 전사들


많은 사람들이 간호사를 '취업 잘되는 고연봉 전문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희 어머니 포함) 부모님들이 자녀에게 간호학과를 권하고, (저의 전 남자친구들 포함) 많은 남성분들이 결혼해서 맞벌이하기 좋은 직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저 말에 동의하는 간호사가 얼마나 될지 모르겠습니다. 이는 극히 일부에게만 해당되며, 일반 대학병원이나 중소병원에서는 업무 강도에 비해 형편없이 낮은 급여를 받습니다. 간호사의 이면을 보여주는 자료가 클릭 몇 번이면 쏟아져 나오는데도 '안 힘든 직업이 어디 있냐', '그나마 취업되는 게 감지덕지', '병원 일이 원래 힘들지', '간호사는 희생하고 헌신하는 직업'이라는 말을 너무도 쉽게 합니다. 가까운 사람들의 이러한 단편적인 생각은 간호사를 아프게 합니다.



진실은 언제나 불편하지만 우리는 눈을 뜨고 봐야만 합니다. 이제 접할 자료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보건의료계의 고질적인 문제였던 '간호사는 많은데 간호사가 없는 현상'의 원인과 실태를 잘 보여줍니다. 각종 토론과 정책제안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지만, 워낙에 복잡한 사안인 만큼 빠른 해결은 어려워 보입니다. 전문직이라는 이유 하나로 간호학과를 권하는 부모님들, 맞벌이하기 좋은 직업으로 간호사를 바라보는 많은 분들께 이 글을 바칩니다.






어떻게 그렇게 매일 힘들어?
'간호사 없는 병원'으로 비난받고 있는 '보호자 없는 병원'


사람이 너무 힘들면 힘들다고 말하지 못합니다. 아무도 날 이해하지 못하고 위로하지 못할 거라는 생각에 스스로 고립되지요. 그래서 신입 간호사가 병원에 입사하면 지인들과 잠시 연락이 끊깁니다. (저도 그랬고 제 친구들도 그랬습니다) 같은 학교를 나와 빅파이브에 입사한 남자간호사 한 명은 저에게 '군대보다 훨씬 힘들다'는 카톡을 남기고 잠적했습니다. (선배... 잘 지내나요...) 전문직인 간호사는 일도 매우 '전문적으로(?)' 힘들기 때문에, 같은 간호사가 아니면 듣고 공감하기가 어렵습니다. 먹지도 싸지도 못하고 생리대 갈 시간도 없다고 하면, 그 정도로 바쁘다는 '과장된 표현'인 줄 아는 분들이 많습니다. 소변을 누지 못해 방광염에 걸리고 생리대를 갈지 못해 피부가 짓무르는 일은 과장이 아니라 실화입니다.


제가 한창 수술실에 적응하고 있을 때 엄마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잘 지내냐는 말에 저는 짧게 '힘들다'고 했고, 엄마는 '남의 돈 벌기가 원래 힘들지' 하셨습니다. 잠시 침묵한 저는 힘없이 말했습니다.

"... 엄마가 한번 해볼래...?"


며칠 뒤 우연히 <EBS 극한직업 - 간호사 편>을 시청한 엄마는 제게 사과했습니다. 간호사는 짬을 찰수록 더욱더 전문적으로 힘듭니다. 잠깐의 방심이 치명적인 사고를 부릅니다. 병원 일은 '지금 당장' 해야만 하는 특수성 때문에 잠시라도 지체할 수가 없습니다. 후배 간호사들이 놓치는 건 없는지 신경을 곤두세워야 합니다. 숙련된 간호사가 적어지고 신입 간호사가 많아지는 시기는 그야말로 의료사고 터지기 딱 좋은 일촉즉발의 상황입니다. 저는 어쩌다보니 열일곱 시간을 내리 근무한 적이 있는데, 바로 퇴근하지 못하고 당직실에 쓰러져 울었습니다. 점심은 간신히 먹었지만 저녁은 못 먹고 일했습니다. 다리가 아프고 온몸이 쑤셔서 울다 그대로 잠들었지요.


"카톡 보낼 시간도 없나 보네...? 나 먼저 잘게~"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연장근무를 마치고 확인한 핸드폰. 남자친구의 카톡을 보니 좌절감이 밀려옵니다. 병원에서의 연장근무는 일반 회사의 '야근'과 전혀 다릅니다. 미리 알 수도 없고 언제 끝날지 예측할 수도 없지요. 핸드폰 볼 여유가 있다면 차라리 물 한 모금을 마실 겁니다. 다음날 통화하며 제 설명을 듣고, (회사원이었던) 남자친구는 멋쩍게 웃으며 말했습니다.


"신기하네... 어떻게 그렇게 매일 바쁘고 힘들 수가 있지?"

사랑한다고, 내년에 결혼하자면서 간호사의 고충을 전혀 공감하지 못했던 남자친구. 도저히 믿고 의지할 수가 없어 성격차이를 핑계로 헤어졌습니다. (미안해 사랑하지 않았던 건 아니야...)




사실 간호사는 많다
대한간호협회 자료


지난 십 년 간 76개 대학에 간호학과가 신설되고 입학정원은 전국적으로 2배 이상 증가했습니다. 간호학과 졸업생의 84.4%가 취업한다고 하니 취업률은 정말 높은 편이지요. 게다가 남자 간호사도 꾸준히 늘고 있습니다. '간호사 면허 소지자'는 2014년에 이미 32만 명을 넘어섰고요. 32만 명이 어느 정도인지 감이 잘 안 오실 텐데, 이는 인구 10만 명 당 97.3명으로 OECD 국가 중 가장 높다고 합니다.



대한간호협회 자료 : 꾸준히 증가하는 남자간호사




살인적인 노동 강도


우리나라 인구 대비 간호사 '면허 소지자' 수가 OECD 국가 중 1위랍니다. 놀랍지 않나요? 그럼 대체 왜 그렇게 간호사가 부족하다고 난리일까요? 면허를 가진 사람은 많지만 10명 중 4명이 '장롱 면허'입니다. 병원을 탈출해 다른 곳에서 일하는 간호사도 제외하면, 임상에서 근무하는 간호사는 절반이 채 되지 않습니다.


수차례 기사화되고 언론을 탔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모르는 사건이 있습니다. 병원 중에서도 '사학 연금'이 나오는 대학병원은 꿈의 직장으로 불립니다. 그러나 2006년 지방의 한 대학병원에서 잇따라 4명의 간호사가 자살했습니다. 그 후 10년이 지난 2016년, 같은 병원에서 24년 차 수술실 간호사가 남편과 두 딸을 남기고 또 목숨을 끊었습니다. 그 해 8월에는 국립대병원의 40대 간호사가 뇌출혈로 쓰러져 숨졌고, 다른 대학병원의 베테랑 간호사 역시 근무 중 뇌경색으로 숨졌습니다. 지금 말한 내용은 루머가 아닙니다. 2016년 [보건의료노조와 대한간호협회에서 주관한 토론회]에서 다뤄진 명백한 사실입니다. 많은 간호사들이 '이렇게 계속 일하다간 정말 죽겠다' 싶어서 병원을 그만둡니다. 저 역시 골반통을 비롯한 근골격계 문제로 치료를 받다가 결국 삶의 질을 위해 사직했습니다. 간호사 딸이, 간호사 여자친구가 매일 '징징'댄다고요? 이상하지 않습니까? 왜 그렇게 매일 좌절하고, 울고, 힘들어하는지, 단 한번이라도 진지하게 생각해보셨나요?



<병원노동자 전쟁같은 장시간 노동에 '과로사 OUT 공동대책위원회' 발족>  2017.9.12 라포르시안

<막말, 성희롱 더는 못 참겠어요>  2017.9.7 오마이뉴스

<노동강도 못 견디고 떠난 간호사들, 병원 돌아보지도 않는다>  2016.9.6 매일노동뉴스

<간호사 이직 부르는 야간 교대근무제>  2017.8.30 청년의사

<내년 간호사 수 12만 명 부족한데 간호간병 통합서비스 확대?>  2017.8.15 조선비즈

<간호사가 몸종인가요? 모욕, 성희롱, 폭언 설움>  2017.8.8 한국일보

<강산도 변한다는 10년, 간호사 근무환경은 제자리>  2017.8.7 메디파나 뉴스

<인기직업 간호사, 그 양극화 실태>  2017.5.22 뉴스투데이

<보람이 아니라 사직서 품고 사는 간호사>  2017.5.12 라포르시안

<많이 뽑아도 줄사표, 간호사는 웁니다>  2017.5.1 서울신문

<간호사 부족으로 지방 의료 붕괴>  2017.3.9 헬스코리아뉴스

<괴롭힘에 병원 떠나는 간호사, 태움 문화를 아십니까?>  2016.9.9 파이낸셜뉴스

<살아남으려면 나쁜 간호사 될 수밖에 없어...>  2016.7.28 SBS 뉴스

<간호사 가혹행위 태움, 못 이겨 소송 간다>  2015.4.14 충북일보



내 아들딸, 내 여자친구, 내 와이프가 간호사라면 남들에게 '전문직'이라고 자랑하기 전에, '간호사 실태', '간호사 폭언', '간호사 자살'로 검색 한 번 해보시기를 권합니다. 어차피 이해도 못할 텐데 듣는 사람 힘 빠지게 뭐하나 싶어 내색하지 않는 간호사들이 많습니다. 나약한 불평으로 들릴까봐 가족에게도 기대지 못하는 마음, 겪지 않으면 정말 모릅니다. 저 역시 말해봤자 입만 아프다고 생각했으니까요.




당신이 몰랐던 우리나라 의료현실



면허 소지자 수는 1위인데 '활동 간호사' 수는 최하위인 우리나라. 그마저도 간호조무사를 제외하면 OECD 평균값의 4분의 1, 꼴찌로 추락합니다.


열악한 근로환경은 단지 '일하는 간호사'의 숫자가 부족해서 생긴 일만은 아닙니다. 우리나라의 '인구 대비 병상 수'는 일본에 이어 2위를 달리는데요, 2014년에 경실련(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OECD 가입국들의 병상 수를 조사한 뒤 "한국은 병상이 과잉 공급된 반면, 공공병원 병상은 지나치게 적다"고 꼬집은 바 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병상 수 자체만 놓고 보면 2등인데 공공병원 병상 수는 또 꼴찌였거든요.




'전체 병상 수'는 OECD 회원국 2위
'공공 의료기관 병상 수'는 OECD 회원국 꼴찌 !


우리나라가 '건강보험'으로 국민이 지불하는 의료비 자체는 저렴하지만, 공공의료 체계는 형편없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자료입니다. 88%의 병상을 차지하는 민간 병원에서 수지타산을 맞추기 위해 비급여(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환자가 전액 부담하는 비용)를 때려 붓고 과잉진료와 과잉검사를 남발하는 건 의료인이라면 다 아는 현실입니다. 반면 나머지 12%의 공공의료기관은 적자에 허덕이며 간신히 운영되고 있습니다. 경기남부권역 외상센터장인 이국종 교수님 또한 여러 매체에서 "도저히 지속할 수 없는 구조, 이렇게는 오래 못 간다" 호소한 바 있습니다. 국가 차원에서 많은 지원이 이루어져야 할 공공의료기관이 소외되어, 의사들은 집에 가지 못하고 간호사들의 연간 사직률은 35%에 육박한다고 합니다.


이렇게 공공인프라가 취약하다 보니 환자뿐 아니라 의료인력도 서울로 몰리고, 지방 병원은 갈수록 구인난에 시달리게 됩니다. 오른쪽 지도를 보면 지역 간 '인구대비 활동 간호사 수'가 서울과 인천은 다섯 배, 서울과 제주는 최대 25배까지 차이가 납니다. 지방이 아니더라도 병원의 규모가 작아질수록 간호사가 없다고 아우성이지요. 인력이 부족하면 노동 강도가 세지고, 그러면 남은 간호사들이 더욱 힘들어져 또다시 사직하게 되는 악순환입니다. '보호자 없는 병원'을 실시한 후에는 간호사가 부족해 병동을 폐쇄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간호사 1명이 담당하는 환자 수가 적어질수록 환자의 입원일수와 의료비가 감소한다는 사실이 여러 연구를 통해 입증되었지만, 병원 경영이 어려워지면 가장 먼저 간호사의 인건비를 깎는 것이 현실이지요.





함께 고민해야 할 문제
[선진국은 간호사 1명 당 환자 수가 2~5명이지만, 우리나라는 20여 명에 육박한다]



저는 간호사가 되려는 학생, 간호사의 가족, 그리고 간호사들이 이런 현실을 꼭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미 오래전부터 여러 단체에서 머리를 맞대고 해결에 힘쓰고 있지만, 극심한 의견 차이가 좀처럼 좁혀지지 않고 있습니다. 정책도 정책이지만 다양한 사람들의 과감하고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필요합니다. 무엇보다 간호사들의 연대가 필요합니다.

 

평택 굿모닝 병원의 서은경 간호부장은 경영진을 설득해 파격적인 투자를 이끌어내 화제인데요, [연봉 천 만원 인상, 나이트근무 2시간 감축, 4교대 도입, 동영상 인수인계, 육아휴직 적극권장, 간호등급 1등급 유지] 로 순식간에 중소 병원계의 샛별로 떠올랐습니다. 단순한 처우개선에 그치지 않고 태움문화와 비효율적 관행을 근절하기 위해 병원을 완전히 뒤집어 엎었다고 합니다. 신입간호사 50명을 채용하는 데 150명이 지원했다지요. 사직률은 10%로 급감했고요. 병원장은 중장기적으로 의료의 질을 고려한 당연한 선택이었다고 말했습니다.




여성 인권과도 직결된 간호사 문제



아직까지 여성이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간호사는, '젊은 여성'으로 불리며 무시받고 희롱당하기 일쑤입니다. 환자나 보호자 또는 동료 의사, 상급자에게 아리송한 말을 듣는 건 일상이고, 때로는 불미스러운 일을 겪기도 하지요.

올해 <82년생 김지영>이라는 책이 한국 사회에서 여성의 삶을 재조명하며 이슈가 되었습니다. 이 책의 수위를 한껏 높인다면, 제목은 아마 <간호사 김지영>이 되지 않을까요?


저는 대학생활을 할 때까지 제가 약자라는 생각을 단 한번도 하지 않았습니다. 성차별이 뭔지도 딱히 몰랐지요. 아마 요즘의 20대 여성은 대부분이 그럴 겁니다. '남아선호사상'은 옛말이고 '딸이 최고야' 시대에서 자랐으니까요. 하지만 간호사로 일하면서 저는 페미니즘의 존재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여자 간호사에게 막말하던 환자들이 남자 직원이 나타나면 조용해집니다. 일하면서 만나는 사람들이, 외모에 대한 평가는 물론이고 자꾸 사생활에 대해 물어봅니다. 술자리에서 상급자가 내 몸에 손을 대는 일이 진짜로 일어납니다. 안마를 요구하고 볼에 뽀뽀까지 하라고 합니다. 심지어 수술 중에 '어제 외박했냐'며 실실 웃습니다. '돈 더 받아서 뭐하게? 남편 잘 만나면 되지' 라는 말로 급여문제를 일축합니다. 아직까지 병원은 군대에 비견될 만큼 낡은 조직이고, 그 안에서 간호사는 '일개 여성'으로 희롱 당하고 있습니다. 여자라는 이유로 깔보고, 함부로 대하고, 가르치려 듭니다. 가뜩이나 힘든 와중에 각종 폭언과 언어적/비언어적 성희롱은 정말 참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이런 일들은 간호사를 좌절시키고 무기력하게 만듭니다. 분통을 터뜨리며 관리자에게 보고해도 '니가 참아라.' '에구 그사람은 왜그런다니'와 같은 이상한 말만 듣게 됩니다. 그래서 저는 스스로를 지키기로 했습니다. 기분이 나쁘면 불쾌하다고, 실수를 했으면 사과하라고 했습니다. 상대방의 직책이 어떻게 되든 간에 비상식적인 일에 대해서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후배 간호사에게 성희롱 대처법을 가르쳤습니다. 인력이 반으로 줄었는데 일을 그대로 시키려면 돈을 더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이상한 부분이 있으면 근로기준법을 찾아서 인사팀에 들고 갔습니다. 위에서 '니가 노조냐'고 하면, 웃으면서 '병원을 너무 사랑해서 그러는데요?' 했습니다.



그래서 짤렸냐고요? 아니요, 모든 요구는 받아들여졌고 어느새 저는 '잘못 건들면 안되는 쎈캐(?)'가 되어 있었습니다. 병원 생활 5년은 정말 힘들었지만 값진 경험이었습니다. 스스로를 지킬 수 있게 되었거든요. 예비 간호사, 현직 간호사 분들도 모두 화이팅하고 동료와 항상 연대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두려워하지 마시길! 동료와 함께라면 반드시 이깁니다. 관습은 상식을 이길 수 없습니다.









엄지 umji.letter@gmail.com

매거진의 이전글 궁지에 몰린 간호사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