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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떰브 Sep 02. 2020

한국어 선생님 일기 02

02 꽃밭 그리고 잡초

한국어 교원이 되기 위해서는 국립국어원에서 발급하는 한국어교원자격증이 있어야 한다. 대학교에서 시행하는 양성과정을 듣고 시험을 통과하면 보통 3급을 받고, 대학원에서 한국어 교육을 전공으로 석사 학위를 취득하고 국립국어원에 심사 요청을 하면 2급을 받을 수 있으며, 2급을 소지한 교원이 국립국어원에서 제시하는 일정 시간(5년 이상, 강의 시수 2000시간 이상)의 경력을 쌓아야 1급으로 승급할 수 있는 요건을 갖추게 된다. 이때 경력을 인정받으려면 사실상 대학교에서 일을 해야만 한다. 그리고 팁을 더하자면 한국어 교원이라는 직업을 희망한다면 한국어만 잘해서는 안된다. 제2외국어로 의사소통 할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은 갖추고 있어야 서류가 통과된다.


나는 졸업하기 전에 정말 감사하게도 서울의 한 대학교 언어교육원에서 첫 경력을 쌓게 됐다. 첫 학교에서는 일주일에 3일만 출근했다. 강사법이니 4대 보험이니 뭐니 갖가지 이유 때문에 일주일에 12시간 정도만 일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대부분의 학교에서 12-14시간 정도 되는 강의시수(講義時數)를 주는 상황이었고 더 심한 학교는 일주일에 6-8시간을 주기도 했다. 그래서 보통 두 학교를 동시에 나가는 분들이 많았다.


그나마 운 좋게도 추가 업무가 많지 않은 학교라서 정말 9시부터 1시까지만 일을 할 수 있었다. 정시 퇴근을 보장하는 학교였기에 좋았다. 왜냐면 소문으로 다른 꽤 많은 학교에서는 강의 외에 자잘한 행정 업무를 잔뜩 줘서 제시간에 퇴근할 일이 거의 없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수업 후에 숙제 검사를 하고 대충 1시 15분이 되면 퇴근을 했고 그 다음 날은 수업이 없으니 늘어지게 낮잠을 자고 일어나 다음 날 수업을 준비했다. 모든 것이 처음이라 적응할 시간도 필요했고, 수업을 준비하는 것에도 시간이 오래 걸려서 주 3일만 수업하는 것이 편했다. 일단은 돈 벌 생각을 하지 말고 경력을 쌓아 보자는 생각이었다.


사실 대학원을 다니며 만난 선배나 동기, 후배들 중에서 경력이 화려한 이들이 꽤 있었다. 전직 공중파 아나운서, 기자 그리고 성우까지 만날 수 있었다. 이렇게 제2의 인생을 살아보고자 하는 사람들이 한국어 교육계로 많이 흘러 들어왔다. 나와 같이 대학교 졸업 후 바로 대학원에 진학한 사람은 적었다. 그만큼 한국어 교원 자격증에 도전하는 연령대는 아주 다양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대학교에서 신입으로 선호하는 연령대는 20대 중반에서 30대 중반 정도다. 그리고 이마저도 경력을 선호하는 분위기라 20대 중반-30대 중반의 '경력자'를 '신입'으로 뽑는다. 할 말은 많지만 하지는 않겠다. 그러니 경력 하나 없이 교원자격증 2급도 정식으로 발급받기 전인 내가 대학교 어학당에 취직한 건 꽤 대단한(?) 일이기도 했다. 그나마 20대라는 것과 간판이 썩 나쁘지 않은 대학교에서 석사를 했다는 것이 큰 메리트로 작용했을지도 모르겠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대학원 시절의 나는 머릿속에 꽃밭만 가득했다. 예쁜 원피스를 입고 출근해서 내 말에 귀 기울이며 한국어를 배우겠다는 의지에 두 눈이 초롱초롱한 학생들 앞에서 열정적으로 수업하는 모습을 상상했다. 수업이 다 끝나면 역시 ‘선생님 최고!’하며 엄지 척 올리는 여러 색깔의 눈동자들을 그려보기도 했다. 정말 강의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상상했다. 그 누구도 학교 정문 너머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제대로 얘기해주는 이가 없었다. 물론 먼저 현실을 제대로 찾아 보려 하지 않은 내 탓도 있었다. 여기서 변명을 덧붙여 보자면 꽃밭을 상상하며 과제와 졸업논문에 치이느라 상당히 바빴다. 물론 요즘 그 어떤 분야가 쉽겠냐마는 한국어 교육계 역시나 만만치 않았다. 정말 질기게 살아남아야 했다. 실은 꽃이 아니라 잡초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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