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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요일 다섯시 May 03. 2018

오래오래는 무슨 색일까

 한 번의 의심 없이 나를 좋아해준 이들


나는 지금껏 한 번의 의심 없이,

나를 좋아해 준 이를 알고 있다.


그이는 나의 늙은 개다.

나의 아기이다.




개의 마지막을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기력이 쇠한 늙은 개를 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개의 죽음을 떠올린다. 생각이라는 것에는 발이라도 달렸는지, 순식간에 개의 마지막 순간을 상영하는 극장 맨 앞자리에 가 앉아 서러운 방정을 떨어댄다. 나는 그럴 때 괜히 개 꼬리를 슬쩍 잡아당기거나, 개에게 간지러움을 태우며 그 생각을 떨쳐낸다.


그런데 눈치 없는 딸이 문제다. 다섯 살이 됐다고 난데없이 인생을 논하기 시작했다. 꽃은 언제 펴서 언제 사그라드는지, 달은 어째서 점점 통통해졌다가 비쩍 마르는지에 대해 묻던 딸이, 마침내 엄마는 언제 할머니가 되는지, 개가 더 늙으면 어떻게 되는지를 궁금해한다. 부쩍 생각이 여문 아이가 툭 하고 던지는 질문 세례에 나는 초봄임에도 불구하고 벌써부터 진땀이 난다. 나는 그럴 때마다 대충 얼버무리곤 하는데, 막상 내일이 되면 딸이 또 어떤 질문을 해올지 난감하면서도 어쩐지 기대되기도 한다.    


아이가 물감놀이를 한다고 법석을 떤다. 알록달록한 물감들, 꼭 저 같은 색을 골랐다. 그러다가 우연히 빨간색과 하얀색 물감이 섞여 분홍색이 되자, 아이가 돌고래 소리를 냈다. 마치 이 우주에서, 분홍색을 최초로 발견했다는 듯 대번 눈이 똥그래졌다. 색과 색이 만나면 또 다른 색이 만들어진다는 이치를 깨달은 아이가 대뜸 내게 묻는다.


"엄마, 오래오래는 무슨 색이야?"


"음, 누런 색일걸?"


"아니지, 검은색 그리고 파란색이야.

엄마, 우리 개가 오래오래 살면 하늘로 가는 거야?"


"응, 아마 그럴 거야."


"그러면 다시 우리 집에 와줄까? 아님 별님이 될까?"


"응, 별님이 될 거야.

그런데 아주 오래오래 나중에 그렇게 될 거니까

걱정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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