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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직장 동료

전복죽과 A4 용지에 담긴 온기

by 행복의 진수

2016년, 여주교육지원청에 근무하던 시절. 유달리 몸 상태가 안 좋아서 근처 내과에서 건강검진을 받았다. 대장내시경을 했는데 암 소견이었다. 조직검사를 하고 결과를 기다리면서, 마치 세상이 무너지는 듯한 기분에 휩싸였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라는 생각만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휴직해야 한다는 사실을 직장에 알리며, 더 큰 불안감이 밀려왔다.


며칠 후, 같은 사무실의 희연 선배가 정성껏 끓인 전복죽과 함께 따뜻한 쪽지를 건넸다.

“Dear. 찐수♥

주말 잘 보내쑤꽈?

친정에서 전복을 보내주셨어

그래서 전복죽을 끓여보았지

우리 찐수 생각하믄서!!♥

처음 해보는 거라. 크게 맛나지는 않아도 보양식이니,

몸에 좋은 거라 생각하고

잡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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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차도 별로 안 나는 후배가 몇 달 일하지도 못한 상태에서 암이라니. 어떤 마음으로 남편에게도 안 끓여준 전복죽을 만들었을까? 그 진심 어린 배려가 더욱 절절하게 다가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대장암 2기 선고를 받았다. 이런저런 상념이 머릿속에서 뒤엉켰다. ‘휴직하면 업무는 어떡하지? 팀장님과 팀원들에게도 민폐인데….’ 일도 손에 안 잡히고, 사무실에서 한숨이나 푹푹 내쉬고 있었다. “띵동” 그때 업무 메신저에 메시지가 하나 도착했다.


“불안하죠?

만날 착하게 열심히 사니까…

분명 생각보다 훨씬 덜 안 좋을 꺼야…

그냥 이야기 안 거는 것이

더 도와주는 것일 텐데…

너무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보니

공연히… 울컥하네…

열심히 공부하고 또 일해서

쉴 시간도 없었으니까…

휴식이라고 맘먹으면 좋을 것 같아~

잘 댕겨와요. 없는 동안

엄청 허전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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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 팀에 있는 김현정 장학사님이 보내주신 위로의 마음이었다. 사무실에 앉아 모니터를 보며 조용히 눈물만 줄줄 흘렸다.


수술 후, 한정순 장학사님이 병문안을 와주셨다. 병원비에 보태라고 교육청 직원들이 십시일반 모은 성의를 건네주셨다. 그 안에는 김 장학사님의 편지도 들어 있었다.


“A4 용지 참 멋없다. 이렇게 손편지를 쓰는 것도

얼마 만인지. 요즘은

마음을 전하는 것에 참 인색한 것 같아요.

그나마 주무관님이 아파서

그동안 고맙고 감동한 것들을 떠올리고

참 멋지고 소중한 사람인 것을 확인하네요

가끔 그러라고 우리에게 위기라는 것이 찾아오나 봐요.

그 씩씩하고 담담함 속에

얼마나 아픈, 먹먹한 마음이 있을지 미루어 보면

정말 속상하지만,

훌훌 털고 또 수더분한 미소로 돌아올 것을 알아서

걱정은 조금만 할께요.

빨리 회복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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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카와 히로무의 만화 『아르슬란 전기』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굶주릴 때 양 한 마리를 나누어 받은 은혜는 평생이 걸려도 갚아야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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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편지와 위로의 말과 마음은 그때는 물론 지금도 내 마음속 깊숙이에 자리 잡고 있다. 힘든 시기에 큰 힘이 되어 주었던 두 은인. 내가 평생 두고두고 은혜를 갚아야 하는데, 김현정 교감 선생님은 아직도 명절마다 김을 보내주신다. 받은 만큼, 아니 그보다 더 많이 돌려드리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야겠다.


인생의 큰 시련을 이겨낸 것은 나 혼자만의 힘이 아니었다. 나를 진심으로 생각해 주고 배려해 준 고마운 마음들이 있었기에 어려운 시간을 극복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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