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접 100% 합격 비결
내 공식적인 사회 데뷔 첫 무대는 공무원 시험 면접이다. 그런데 면접이란 과연 무엇일까?
면접과 첫인상만으로 그 사람을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을까? 때는 바야흐로 십 년 전으로 거슬러 간다.
지긋지긋한 5년간의 공시 생활 끝에 가까스로 필기시험에 합격했다. 288명 선발에 5,227명 접수. 18.1 대 1의 경쟁률이었다. 필기 합격자 발표 후 자기소개서를 쓰고 면접까지 남은 기간은 한 달. 정확히는 7월 25일 발표 후 8월 23일 면접이니, 실제로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은 28일이었다. 공직 시험에서는 변수가 없다면 주관적인 면접보다는 객관적인 필기 성적순으로 최종 합격이 결정된다. 몇 년간 자료를 분석해 보니 필기 합격하고도 면접에서 탈락하는 경우가 꽤 있었다. 커트라인에 아슬아슬하게 합격했기에 면접 준비에 최선을 다하지 않을 수 없었다.
25일 새벽 1시 44분, 9꿈사라는 공무원 수험 카페에 면접 스터디 구인 글을 올렸다. 그 시간까지 안 자고 있던 5명과 함께 스터디를 꾸리게 됐다. 03학번이지만 15년에 졸업해서 당시엔 아직 재학생 신분이었다. 주말마다 중앙대학교 빈 강의실을 빌려서 연습했다. 같이 준비한 동기는 면접 장소 마련을 위해 분주하게 뛰어다니는 내 모습을 보고 ‘어미 새’ 같다고 표현했다. 16명 선발하는데 8,575명이 몰려 535.9대 1이 된 어마무시한 경쟁률을 뚫고 국가직 교행도 복수 합격한 친구, 조리사를 하다가 교행 시험을 본 두 아이의 엄마, 교육기업에서 근무하다가 온 동생 등 다양한 사람이 모였다.
스터디 이름도 지었다. 미피우박. ‘미흡을 피하고 우수 받고 박수치자’라는 뜻이었다. 돌아가면서 면접관 역할을 하며 서로의 개설할 점들을 봐주었다. 자신의 녹음된 목소리를 들어본 사람은 알 거다. 내가 말하는 것과 남들이 듣는 것의 괴리를. 나는 내가 그렇게 혀짧고 불분명한 발음을 내는지 몰랐다. 영상도 찍었는데, 긴장해서 그런지 나도 모르게 말할 때마다 어깨를 움찔거리는 습관도 알게 됐다.
한 달이 채 안 되는 시간 동안 두 개의 면접 스터디를 하고 세 개의 면접 특강을 들었다. 친구에게 복싱을 배우며 다이어트까지 했다. 오직 면접에 합격하겠다는 열망 하나만으로.
‘훈련은 실전처럼!’이라는 생각으로 면접 전날, 고사장인 매원중학교를 찾아갔다. 서울에서 수원까지 실제로 걸리는 시간도 체크하고 당일 긴장감을 덜기 위해서였다. 교육행정실에 방문해 실장님께 인사드리고, 내일 면접이라고 하니 앉아보라며 실제로 모의 면접을 진행해 주었다.
“혁신 교육이 뭐라고 생각하나요?”
“혁신 교육이란... 어쩌고저쩌고~”
책에서 본 대로, 지금은 기억에 남지도 않는 아무 말이나 주워섬겼다. 내 말을 들고나서 한 실장님의 대답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아니. 그런 교과서적인 얘기 말고. 제 생각은 그래요. 혁신 교육이란 ‘학생과 교사와 학부모 모두가 행복한 교육’ 아닐까요?”
본질을 정확히 파악한 명쾌한 대답이었다. 그 말씀이 너무나 인상적이어서 발령 후 업무 메신저에 친구 추가를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사무관 승진자 명단에서 실장님 성함을 봤다. 그분도 그때 승진 면접 준비를 하고 계셨던 걸까?
운명의 면접일. 긴장해서 무슨 말을 어떻게 했는지 기억이 1도 나지 않는다. 그저 씩씩하게 열심히 하겠다는 각오를 온몸으로 뿜어냈다. 들어가고 나갈 때 공손하게 인사도 넙죽넙죽했다.
이렇게 나름 철저히 준비하고 사회인으로서 첫 무대 면접을 무사히 치렀다. 지성이면 감천인지. 결론적으로는 필기를 통과하고 면접을 본 사람 모두 최종 합격을 했다.
응??? 이럴 거면 한 달간 왜 그렇게 빡세게 준비를 했지???
2014년만 이례적으로 전원 합격이었고, 그 앞뒤로 면접 탈락자는 계속 있었다. 운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어쨌든 합격했으니 다행이지. 끝이 좋으면 다 좋은 법.
모두 합격할 걸 알았으면 만들어둔 마이너스 통장으로 해외여행이라도 다녀올걸!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고 있었더라면. 그렇다고 해서 그간의 노력이 모두 의미 없었던 건 아니다. 지극정성으로 만든 면접 자료들을 후배들에게도 공유했다. 공직관, 문제상황 대처법, 교육학, 시사상식 등을 수십 페이지에 정리한 자료였다. 고시 신문에 합격자 인터뷰도 하고, 임용 전 공무원 수험학원에서 수험생들 상담도 했다.
이제는 업무상 면접 자리를 준비하는 역할도 하고, 가끔은 심사위원으로 참여하기도 한다. 면접을 준비하며 나에 대해 돌아보고, 한 뼘 더 성장하게 된 기회가 됐다. 이래저래 첫 무대는 나, 노력형, 성공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