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스를 꾸리는 나를 상상하다
서울국제도서전에 다녀왔다. 해마다 이맘때 열리는 도서전이지만, 직접 가본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출판사, 저자, 독자가 모이는, 우리나라의 가장 큰 책 축제라는 말이 실감 났다. 전시장 안은 개성 있는 책들과 다채로운 디자인의 부스들이 가득했다. 종이와 잉크 냄새. 사람들의 열기가 합쳐져 페이지를 넘기지 않아도 책의 세계로 풍덩 빠져드는 기분이었다.
출판사들은 단순히 책을 진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들만의 세계관을 공간으로 풀어냈다. ‘문학과지성사’는 창립 50주년을 맞아 종이로 만든 부스를 선보였고, ‘현암사’는 80주년을 기념해 팔순 잔치 콘셉트로 따뜻하고 유쾌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전시장 전체가 살아 있는 한 권의 책처럼 느껴졌다.
작가와의 대화, 독립 출판 코너, 해외 출판사들의 전시도 인상적이었다. 책은 단순한 종이 뭉치가 아니라 누군가의 삶을 담은 결이자, 시대를 담아내는 언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하루 종일 부스를 돌며 책을 고르고, 읽으며 기록했다. 가방이 무거워질수록 통장은 가벼워졌지만, 마음은 오히려 가득 찼다. “책사도 괜찮아 살안쪄. 다이어트는 내 통장이.”라는 홍보문구에 미소가 지어졌다. 읽고 싶은 책들의 목록은 끝없이 늘어났고, 마음속 책장은 더욱 풍성해졌다.
무엇보다도 기억에 남는 건 사람들의 눈빛이었다. 책 앞에서 반짝이는 눈동자, 작가의 말을 경청하는 진지한 표정, 서로 추천 도서를 공유하며 나누는 따뜻한 대화들. 책 속 문장보다 더 강렬했던 건 그 순간의 표정과 분위기였다.
반면에 아쉬운 점도 있었다. 독립 출판 및 1인 출판사들이 모인 책마을은 공간이 협소하고 동선도 불편했다. 해외 부스는 넓고 화려한 공간에 비해 관람객 수가 현저히 적어 황량함을 느낄 정도였다. 서울‘국제’도서전인데. ‘이게 맞나?’ 싶었다. 온라인 얼리버드 판매로 입장권이 매진되서, 디지털 소외 계층은 현장 발권의 기회마저 박탈당했다. 도서전 사유화와 더불어 내년에는 반드시 개선되야 할 문제점이었다.
작년부터 국내외 북페어를 다니면서 느낀 게 있다. 언어와 문화는 달라도 책이라는 매개로 모이는 순간의 찬란함. 서울국제도서전은 단순히 책을 사고파는 공간을 넘어, 책을 매개로 사람과 사람이 소통하고 교류하는 장이었다. 돌아오는 길, 문득 든 생각이 있다. 내년엔 관람객이 아닌 참가사로 이 자리에 서고 싶다고. 누군가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고, 눈길을 끌고, 마음을 움직이는 책을 더 많이 만들고 싶다는 마음이 싹텄다. 애서가들의 성지순례였고, 내게는 새로운 도전을 품게 해 준 의미 있는 자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