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북케이션 위크 2025를 마치고
3일간 제주국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제주 북케이션 위크가 끝났다. 행사가 끝난 공간은 늘 그렇듯 갑자기 넓어 보인다. 온종일 북적이던 통로는 사람을 비워낸 뒤에야 비로소 자신의 크기를 드러낸다. 테이블 위에는 바닷바람을 잔뜩 머금은 제주의 공기가 남아 있었다. S Family 출판사로 참가한 북페어 중 역대 최대 매출을 올린 행사였다. 숫자로만 놓고 보면 분명 축하할 만한 성과였다. 판매량을 체크할 때마다 마음속에서 작은 파도가 일렁였다. 이 정도면, 올해를 잘 버텼다고 말해도 되지 않을까?
주최 측에서 준비해 준 도시락은 행사 마지막을 장식하는 보너스 같은 것이다. 북페어의 끝에는 늘 이런 작은 호의가 기억에 남는다. 수고했다는 마음으로 건네는 따뜻한 밥. ‘마감하고 천천히 먹어야지’ 하고 생각하며 도시락을 한쪽에 두었다. 늘 그렇듯,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니까. 그렇게 마감 1분 전에 ‘구름’과 ‘벚꽃’ 두 권을 팔았다.
기분 좋게 행사를 마치고 서둘러 짐을 정리하다가 캐리어 위에 놨던 도시락을 엎었다. 주먹밥과 빵이 바닥에 굴러떨어졌다. 채소와 두부만이 가까스로 용기를 벗어나지 않았다. 바닥에 음식이 떨어지는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이 귀한 걸 어찌하여!’ 그제야 옆 부스 김보령 작가님이 “이따 드실 거면 비닐봉지 같은 데다 넣어두셔야겠어요.”라고 했던 말의 의미가 떠올랐다.
집을 챙겨 밖으로 나와 제주공항으로 가는 601번 버스를 기다렸다. 남은 도시락을 열었다. 두부와 채소 조각이 몇 개 남아있었다. 판도라의 상자 같았다. 버스 정류장에서 남은 도시락을 입에 털어 넣었다. “희망의 마지막 조각이네요.” 함께 간 차혜선 작가에게 너스레를 떨며 말했다. 바닥에 떨어진 건 음식이었지만, 남아 있는 건 희망이라는 생각. 그것만으로도 오늘 하루는 충분히 견딜 만했다.
불현듯 처음으로 참여했던 부산 마우스 북페어가 생각났다. 올해는 선정에서 탈락됐지만, 내게는 여전히 시작의 이미지로 남아 있는 행사다. 첫날, 책 한 권을 팔 때까지 밥을 먹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저녁이 되도록 책은 팔리지 않았고, 첫날 일정이 마감됐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점심때 받은 김밥 꺼냈다. ‘눈물 젖은 김밥‘이라는 표현은 과장이 아니었다. 쌀은 씹을수록 달아야 하는데… 그날의 김밥은 유난히 짰다.
그러고 보니 어제도, 오늘 아침도 김밥을 먹었다. 저번 주 대구 만권당 북페어에서도 아칩 두 끼 모두 김밥이었다. 일찍 일어나서 주변 산책도 하고 가지런히 부스 준비도 하면 좋으련만. 금요일까지 근무하고 주말마다 북페어에 나가는 생활을 2년 가까이 하다 보니 준비한 체력이 금방 소진되길 마련이었다. 가까스로 일어나 후다닥 씻고, 가는 길에 있는 식당에서 김밥을 하나 사서 먹으며 이동했다. 라면이라도 한 그릇 곁들이면 좋으련만, 시간이 여의치 않았다.
부산과 지금. 같은 길 위에 있지만, 같은 위치에 서 있는 건 아니다. 2년이라는 시간은 짧지만, 그 안에는 수없이 많은 망설임과 결심이 들어 있다. 책 한 권이 팔릴 때까지 식사를 참던 사람에서, 부스를 정리하며 도시락을 엎지르는 사람으로. 눈물 젖은 김밥에서 채소와 두부만 남은 도시락으로. 결국 공항에서 먹는 라면으로.
공항에 도착해 아침에 서두르느라 참았던 라면을 먹었다. 국물을 한 숟갈 뜨는 순간, 비로소 하루가 끝났다는 실감이 났다. 비싼 저녁을 먹지 않아도, 두둑한 매출 덕분에 마음은 이미 충만했다. 성공이라는 단어를 함부로 쓰고 싶지는 않지만, 적어도 ‘잘 버텼다’라고 자부할 수 있는 하루였다.
이상하게도 그런 날에는 배보다 마음이 먼저 차오른다. 매출이 많아서 아니라, 지나온 시간이 틀리지 않았다는 확인을 받은 것 같아서. 책을 만들고, 사람을 만나고, 낯선 도시를 오가며 작은 테이블 하나를 지키던 날들이 헛되지 않았다는 감각. 숫자로 환산되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무게다.
셰익스피어의 말이 떠올랐다. “끝이 좋으면 다 좋다.” 과정이 늘 아름답지도 않았지만, 적어도 끝이 나쁘지 않았다면 그 하루는 실패가 아니다. 바닥에 떨어진 주먹밥과 빵이 있었고, 눈물 젖은 김밥의 기억이 있었지만, 그 모든 장면 위에 지금의 끝이 포개진다.
다음 북페어에서도 분명 예상치 못한 일이 생길 거다. 생각보다 저조한 매출에 좌절할지도, 상상치도 못한 성과에 콧노래를 부르며 덩실덩실 어깨춤을 출 수도 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 모든 장면은 결국 하나의 끝을 향해 간다는 것을. 그 끝이 조금이라도 좋다면, 우리는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