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여섯 번째, 버스에 관한 기억
버스에 관한 기억을 떠오르면 추억이 방울방울이다.
버스에 의한
버스에 관한
버스에 추억에 관한 일대기(?)를 떠올려 보려 한다.
까마득히 먼 옛날이지만 그 기억만은 지금도 선명하게 남아있는 아동기 때의 버스에 관한 슬픔(?)이다. 교육열이 남다르셨던 모친은 오라버니를 서울로 유학 보내셨다. 엄마는 일 년에 한두 번씩은 서울로 가셔서 오라버니의 생활을 챙겨주시고 오신다. 어린 나이(5세)에 나는 따라가겠다고 울면서 버스에 발을 한 계단 디뎠던 기억...
그 Bus는 오전에 한번 오후에 한번 다니는 Bus 였다. 마을에서는 그 Bus의 이름을 '한강 버스'라 명명하였다. 한강이 있는 서울로 간다 해서...
우리 모친은 야멸차게 나를 뿌리치고 떠나셨다. '너 때문에 버스가 가버리면 내일 출발해야 한다' 시며 어찌나 울었던지 지금도 버스에 한 발 올려놓았던 그때를 생각하면 서럽고 서럽다... ^^
국민학교를 입학하고
가을이면 버스를 대여해서 소풍을 갔다. 소풍 때에 그 버스의 기억.
소풍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버스가 고장 나 버렸다. 가평쯤이었던가 서서히 해는 지고 버스에 점검 수리는 계속되고 아이들은 모두 배고픔과 추위에 몸을 맡겨 버렸다. 시간을 지나 밤은 깊어갔다. 그 근처에 있는 부대 막사로 우리는 이동해서 버스가 운행 하기를 학수고대하고 있을 때 부대에서는 우리에게 먹을거리를 제공해주셨다. 최초로 먹어본 라면이었다. 얼마나 별미였는지... 이혜정 요리 연구가 말처럼 "얼마나 맛있게요"였다. 그 당시에는 대다수가 빈곤층이었다. 라면이 대중화되지 않을 때라서 라면은 고가에 먹거리였다. 1960년대 유년기를 보낸 나는 손님이 와야만 먹을 수 있는 라면, 부자만이 먹을 수 있는 라면을 그 부대에서 처음 먹었었다. 버스가 고장 나 버려서 먹어 본 최초의 라면을 시식한 그때를 생각하면 아름다웠다.
학창 시절
나는 버스를 타고 통학을 했다.
교복을 입고 가방을 들고 버스는 정말로 발 디딜 틈도 없이 학생과 직장인으로 가득 차 버렸다. 깨끗이 빨아서 다림질해 입고 등교하는 교복은 만신창이(?)가 되기 일쑤였다. 어쩌다가 자리가 나도 앉지 않았던 때 묻지 않은 기억들. 교복이 구겨질까 봐서 서서 있었던 아름다웠던 그 시절이었다.
학교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올 때 그 미니버스 기억도 잊을 수 없다. 중앙일보가 석간이라서 지국에 신문 보급을 위하여 우리 집을 지나가는 미니버스. 그 미니버스를 hitch hiking 해서 친구들과 함께 집으로 가던 길도 아름다운 추억이었다. 그 친구들은 하나둘씩 천국으로 전입신고를 하고...
네 아이의 엄마가 된 나는 교통수단이 버스였다. 아이들과 함께 항상 버스를 타고 미술관을 찾아다녔다. '정신적으로 풍요로워야 힘든 세상 헤쳐나갈 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는 거라고' 말씀하신 스승님의 뜻을 새기면서 박물관, 미술관, 고궁 등을 버스를 이용해서 다녔던 기억들. 밥은 두끼를 먹어도 정신의 밥(?)은 배불리 먹어야 한다고 부르짖으셨던 스승님! 그 스승님 덕분에 정신은 풍요롭게 살고 있다. 그 시절 힘은 들었지만 Bus에 나란히 앉아서 다녔던 그때도 진정 아름다웠다. 나의 아들, 딸들도 나를 닮아서 아이들을 거느리고 미술관을, 박물관을 탐방하고 있다. ^^
관광 Bus도 잊지 못할 추억이다.
가을이면 남편 동창 모임에서 여행을 간다. 관광버스를 타고 그 당시에는 버스에 음향기기가 장착돼있었다. 그 버스야 말로 달리는 방송국(?)이라 말할 수 있었다. 가요무대(?)도 하고, 뮤직뱅크(?)도 하고, 국악도 하고 또 시사토론도 하고 남편의 친구분들은 다재다능한 분 들이 많았다. 부인들 까지도...
회심곡도 부르고, 팝송도 부르고, 트로트도 부르고, 장거리를 가다 보면 모두 넉다운 되어 있을 때 친구분이 MC가 되어서 "지금 여행은 어떠신지요?" 하면 "오늘만 삽니다" 한 멘트에 크게 웃었던 예쁜 추억들...
이제 노년기에 접어든 나는
버스를 이용하는 일이 전무후무해 버렸다. 살아오는 동안 많은 사건(?)과 사고(?)를 관리하느냐고 나의 몸은 버스 타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허리, 무릎 부실) 버스만이 교통수단이었던 그 시절, 버스만이 만남을 이어 갈 수 있었던 (관람, 친구, 연인 etc.) 그때 그 시절을 건너서 삶을 이어가고 있다. 많은 교통수단의 발전으로 다양한(?) 교통수단을 이용하면서 2022년에도 "오늘만 삽니다". ^^
2022. 3月 19.sat
얼마 전 오랜만에 혼자 진득하게 버스를 탔다. 2년 만에 복직을 하면서 출근길에 탄 버스는 왠지 모르게 다부진 설렘을 가지게 해 주었다. 10여 년 전 일을 시작하면서부터는 거의 지하철로 움직이느라 버스를 탈 일이 많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버스는 어린 시절, 대학시절을 괜스레 한 번씩 떠오르게 한다.
중학교 2학년에 전학을 왔다. 엄마가 직장을 옮기면서 서울 경계 경기도로 이사를 했고, 학교는 서울로 다녔다. 멀지 않은 거리였지만 혼자, 동생을 데리고 버스를 타고 서울-경기도를 이동하며 등하교를 한다는 것은 스스로 조금 컸구나 하고 생각하게 했다. 짧은 시간 타는 버스라서 졸면 안 되는데 꼭 잠이 들어 허허벌판에 내려 "엄마... 나... 데릴러와..ㅠ"전화를 하던 기억도 난다.
버스를 타고 자던 쪽잠이 좋았었다. 고등학생 때는 다시 서울로 이사를 와서 버스를 탈 일이 없었다. 대학교도 지하철로 이동. 그런데 다니던 학교가 이사를 갔다. 대학교가 이사를 갈 수가 있나.. 싶은 일이 내가 다니던 때에 일어났다. 서울에서 경기도로 이사 간 학교는 너무 멀게만 느껴졌다. 버스 장거리 여행이 시작됐다. 다시 나의 살벌한 쪽잠이 시작되었다.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내가 타고 다니던 버스는 학교에서 출발해서 광화문에서 회차해서 다시 학교로 돌아오는 버스였다. 학교에서 버스를 타고 잠깐 눈을 감았다 떴다. 아직 학교 근처라 '오 다행이다' 하면서 안도하는데 다시 학교로 들어가고 있던 버스... 잠깐 감았다 뜬 눈으로 2시간을 날렸었다. 아무리 운동을 하고, 복수전공을 하고, 열심히 놀았다지만 이런 일이 한 번이 아닌 걸 보니 나도 참 잠이 많.. 아니 버스에서 자는 쪽잠을 좋아하나 보다. 가끔 그 쪽잠이 너무 달콤해서 제발 내려야 할 정류장이 오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원점으로 돌아갔다.
풋풋했던 연애시절. 지금의 남편과 버스를 타고 여행을 갔다. 관광버스 좌석에 붙어 앉아 꽁냥꽁냥 하던 모습을 생각하니 귀엽다. 그렇게 우리는 시작되었다. 그러고 보니 그때도 나는 남자 친구였던 남편 어깨에 기대어 잠들었던 것 같다. 이 정도면 그냥 멀미를 하나 싶기도 하다. (ㅎㅎㅎ)
지금은 아이 덕분에 버스와 더 친해졌다. 자동차를 좋아하는 아이가 처음으로 인지하고 좋아하는 캐릭터가 '꼬마버스 타요'이다. 지난겨울 처음으로 같이 버스를 타고 어머니댁에 갔다. 장난감으로만 보던 버스를 보고 놀라던 그 표정, 버스를 타고는 커진 눈이 작아지질 않았다. 그리고는 한참을 아직 못하는 말로 '타요, 띠, 하부지, 하무니' 열심히 표현을 하는 게 귀엽고 예뻤다. 비록 세 정거 정도 이동한 게 다였지만 아이에게 즐거운 기억을 준 것 같아 덩달아 기분이 좋았다. 앞으로는 아이와 함께 할 버스 이야기가 더 많아질 것 같아 기대된다. 우리 아이도 조금 더 크면- “엄마, 나... 데릴러와...ㅜ" 라고 하겠지..?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