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서른이 처음이야?

#07. 있어빌리티

by 수상


30대가 되면서 표면적인 것들로 사람을 판단하는 치명적인 실수를 자주 하게 된다. 누가 어디 회사를 다닌다더라, 어느 지역에 산다더라, 요즘 무슨 옷을 입고 다닌다던데. 이른바 ‘있어 보이는’ 행색에 부러움 가득한 말들로 그 사람을 재단하고는 한다. 특히 요즘은 단순히 보이는 모습뿐만 아니라 우아한? 취미와 지적인 모습들로 본인을 어필하고자 하는데 이런 모습들을 ‘있어빌리티’라고 한다(mz용어 주의)

심지어 신조어사전에서 검색결과가 나왔다

있어 보이게 하는 능력. 있는 척, 잘난척하는 것도 능력으로 정의되는 사회다(맙소사). 읽지도 않는 책을 잔뜩 사서 들고 다닌다거나 비싼 명품 옷 대신 너이키를 사서 입고 다니는 ‘가짜 코스프레‘인 셈이다. 그러나 이것은 또 다른 의미의 목표의식과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남들에게 보여주고자 꾸민 모습이 결국 내가 되고 싶은 모습이다. 하고 싶은 것이나 되고 싶은 게 없는 사람들이 수두룩한데 인생에 있어서 바라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허영심으로 치부될 수 있는 있어빌리티는 좋은 자극제가 될 수 있다.


나의 이야기를 해보자면 난 아는 척하기를 좋아하는 지적허영심 환자다. 이조차도 남들에게 소위 똑똑해 보이고자 하는 있어빌리티에서 비롯됐다. 문제는 테무산 구찌티셔츠를 입으면 끝나는 겉치레와 다르게 지적허영심은 지식을 갖춰야 하는, 검증이 가능한 있어빌리티다. 그래서 난 어쩔 수 없이?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고 외국어 공부도 하고 있다. 어쩌다 보니 잘난 척을 재료로 삼아 반강제적으로 자기개발을 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남들이 날 내가 바라는 모습대로 ‘똑띠한 녀석’으로 바라봐줄지는 모르지만, 나에게는 출근-퇴근을 반복하는 열정 없는 일상에서 날 움직이게 하는 에너지를 찾은셈이다.

책을 읽으면 힙해보인다? (텍스트힙이란다...별표)

꼭 독서가 아니어도 좋다. 디올 레이디백을 멋들어지게 들고 약속을 나가고 싶은 마음도 좋다. 내가 보여주고 싶은(혹은 되고 싶은) 모습을 위해서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버는 것도 좋다. 무언가를 하고 싶은 욕구가 없는 건조한 일상에서 우릴 움직이게 할 수 있는 ‘잘난 척’을 행동으로 옮겨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