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내 돈 내고 사서 고생
요즘 들어 여행에 관한 TV 프로그램들이 많이 생겼다. 유적지와 핫플을 돌아다니는 여행도 소개되고 산티아고순례길이나 트레킹을 다니는 여행도 종종 방영된다. 다른 듯 하지만 이 두 가지 각기 다른 콘셉트의 여행들은 공통점이 있는데 바로 여행은 개고생이라는 것이다.
내일 캐나다로 출국한다고 상상해 보자(F관점). 캐리어 끌고 나와 버스 타, 지하철 타, 사람 많은 공항에서 두 시간 줄서고, 좁아터진 비행기 좌석에서 열댓 시간 구겨져있고, 개밥 줘, 소밥 줘, 깨 털어..... 나가는 첫걸음부터 고생길인데 비싼 돈 쓰면서까지 여행 다니는 사람들이 매우 매우 많다. 말 그대로 고생을 돈 주고 사는 격인데 도대체 왜 그럴까 궁금했다. 아 물론 매년 해외여행을 다니는 나지만 나조차도 내가 왜 나가고 싶은지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좋으면 좋은 거지 이유가 있겠나.
그동안 여행 다니며 썼던 일기를 다시 읽다 보니 어느 정도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꾀죄죄한 현실의 도피처로서 여행을 다녔었다. 매일 반복되는 따분한 일상과 출금 알림만 연신 보내는 잔인한 은행어플을 한편에 미뤄두고 모른척하고 싶은, 그런 고단한 현실을 잠시 잊고자 떠났었다.
여행하는 동안에는 오늘 해결해야 할 끼니와 오후에 탈 기차표를 확인하는 등 사소하지만 지금 당장 해결해야 하고 확인할 것들 투성이다. 눈앞에 닥친 일종의 퀘스트를 깨면서 지금 순간에만 몰입하게 되고, 잠시라도 저 멀리 두고 온 현실을 잊는 것. 나에게 여행이란 탈출구였다.
'여행의 이유'라는 책에서 김영하 작가는 이를 멋들어진 말로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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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통의 인간들 역시 현재를 살아가지만 머릿속은 과거와 미래에 대한 후회와 불안으로 가득하다. 아침에 일어나면 지난밤에 하지 말았어야 할 말부터 떠오르고, 밤이 되면 다가올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뒤척이게 된다 ••• 여행은 그런 우리를 이미 지나가버린 과거와 오지 않은 미래로부터 끌어내 현재로 데려다 놓는다'
권태로운 일상과 보기 싫은 상사로부터
한 번쯤 떠나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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