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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르몬닥터 권영구 Mar 05. 2024

@1047 <회사에서 집에서 완벽한 멀티 플레이어가~

@1047

<회사에서 집에서 완벽한 멀티 플레이어가 되려면>     


1.

“김대리, 요즘 실수가 너무 많네요.”

팀장은 김대리의 속사정을 잘 안다. 몸이 안 좋으신 어머니 신경쓰느라 일이 손에 잡히지 않나 보다. 효자로 소문난 김대리이다 보니 하루종일 어머니 걱정으로 머리가 복잡하여 업무에 지장이 많은 듯하다.     


2.

직장은 직장이다. 일할 때는 아들이라는 옷을 벗어놓고 사원의 자리를 지켜야 한다. 사원 역할은 외면하고 아들자리만 지키니 계속 사고가 터진다. 마음이 심란한 그 입장은 이해하지만 일은 일대로 어머니 일은 어머니 일대로 선을 그을 줄 알아야 한다.     


“오빠, 어머니 드실 죽을 안 사오면 어떡해.”

6시 땡치고 퇴근하면 죽부터 사야 했다. 회사 정문을 나서니 하루종일 저지른 사고들이 하나 둘 떠오르기 시작한다. ‘아, 그 일은 이렇게 처리했어야 하는데…’ 몸은 지하철을 타고 있지만 마음은 아직도 회사에 머물러 있다. 회사에서는 어머니 걱정으로 일을 망치고 퇴근하고는 회사걱정하느라 어머니 죽을 까먹는다.     


3.

사원역할이나 아들역할이나 어느 하나 제대로 못했다는 생각에 마음이 너무 무겁다. 오늘따라 비가 추적추적 내리니 막걸리 한 병 사들고 와서 얼큰한 김치찌개와 같이 한 잔 한다. “아빠, 나랑 놀자.” 어느새 초등 아들이 달려와 매달린다. 아 맞다, 나 아빠였지. 팀장에 아들에 아빠 역할 추가요.     


“오빠, 밥 다 먹었으면 재활용 쓰레기하고 음쓰 알지?”

후다닥 밥 먹고 아이랑 놀아주다 보니 마눌님 지령이 떨어진다. 아차차 남편 역할도 있었다. 사원에 아들에 아빠에 남편까지다. 한숨돌리고 TV앞에 앉으니 오랜만에 아는 후배에게 전화가 온다. 퇴사하고 싶다는 후배와 1시간 통화하며 선배역할에도 최선을 다 한다.     


4.

아직 끝이 아니다. 사회적 역할까지 따지면 동창회 총무에 낚시 모임 회장까지 한도 끝도 없다. 매 순간 다른 옷으로 갈아입고 완벽하게 새로운 사람이 되어야 한다. 학생 때는 공부만 열심히 하면 만사 오케이었는데 시간이 가면 갈수록 계속 새로운 임무가 늘어만 간다.     


처음에는 이 수많은 일을 처리하느라 사고도 많이 쳤다. 이 일을 하고 있으면 그 일이 걱정되고, 그 일을 챙기기 시작하면 저 일에 문제가 생기곤 했다. 회사에서는 집안일이 머릿속 가득이고, 집에서는 오늘 회사에서 있었던 일을 리플레이하며 곱씹는다. 하루 종일 마음이 붕 떠 있기만 하고 어느 일하나 제대로 마무리하지 못한다.     


5. 

그래도 이제는 많이 익숙해졌다. 낯설게 느꼈던 역할들이 어느새 내 손아귀에서 놀고 있다. 하나하나의 일에 적응도 잘했지만 불현듯 중요한 이치 한가지를 깨달았다. 여러 역할을 수행하더라도 그 순간에는 그 역할에만 온전히 충실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여러가지 역할의 옷을 동시에 껴 입으면 반드시 탈이 나고야 만다. 회사에서는 사원으로서 업무에만 집중하고 퇴근이후 아들 역할로 돌아가면 된다. 아직 부족한 아빠 역할은 노력하다 보면 더 잘하게 될 거다. 아쉬운 역할은 아쉬운 대로 다음을 기약하며 남겨두고 돌아선다. 하루종일 부족한 아빠역할에만 매몰되어 미련을 두기 시작하면 다른 일까지 전부 엉망이 되어 버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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