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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르몬닥터 권영구 Mar 06. 2024

@1048 <내 책임도 아니니 대충 해도 괜찮겠지~

@1048

<내 책임도 아니니 대충 해도 괜찮겠지 하는 생각>     


1.

“일 처리를 이렇게 하시면 어떡합니까, 너무 엉망이잖아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내가 봐도 부실투성이다. 누가 내 일을 이렇게 해주었다면 대놓고 삿대질이라도 했을 듯하다. 죄송하다는 말로 사과하고 또 사과하는 수밖에 없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2.

사건의 진상은 이렇다. 내가 책임자 역할을 맡아 여러 가지 일을 해결해야 할 때가 있었다. 업무를 쪼개어 구성원마다 할당량을 정해 주었다. 남들도 내 마음 같으려니 무작정 믿었다. 방심하고 미처 결과물 확인을 못했다. 그 사람이 배째라 하며 이렇게 대충대충 했을 줄이야.     


리더는 책임지는 자리다. 무슨 변명을 하겠는가. 그 어떤 핑계를 대더라도 결국은 최종 결과물을 점검하지 못한 나의 불찰이다. ‘그 업무는 제가 아니라 A가 한 일인데 왜 저한테 그러세요!’ 목구멍까지 이런 말이 올라오더라도 꾸욱 참아야 한다. 괜히 듣는사람 화만 키운다.     


3.

이런 사태가 벌어지게 된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 본인 이름을 걸고 평가를 받는 상황이라면 누구든 자기 앞가림을 열심히 한다. 세상 그 누구도 자신의 이익 앞에서는 눈에 불을 켜기 마련이다. 항상 문제는 이해관계가 모호한 회색 지대에서 터진다. 내가 책임질 일은 아니고 윗사람이 시키니까 마지못해 해야만 하는 그런 일들이다.      


시간을 때우고 자리만 지키면 그만이다. 본인 생각에도 결과물 완성도가 별로지만 크게 상관하지 않는다. 이런 일은 더 열심히 한다고 해서 티가 나지도 않고 대충해도 큰 불이익은 없다고 여긴다. 하는 척만 하고 적당히 넘어가기로 한다. 일자체를 펑크 내면 질책을 듣겠지만 질적으로 부실한 부분은 남이 함부로 판단하기 애매하다. 조금만 뻔뻔해지면 육신이 편하다.     


4.

나는 의료인이다. 수술하고 환자 목숨 구하는 일을 하고 있지는 않지만 법적으로는 엄연히 의료인에 속한다. 의료인이라는 이름을 어깨에 걸고 나름 주어진 역할 내에서 무거운 사명감을 느끼며 매순간 집중한다. 환자가 가볍게 건성으로 말하더라도 나까지 판단력이 흐려지면 안 된다.     


“소변에 피가 나오다 말다 그래요.”

그 환자분은 그리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예전에 방광염에 걸렸을 때도 이런 적이 있었다며 신경도 안 쓴다. 아니다, 내가 보기에 이번은 다르다. 다른 증상들 살펴본 뒤 대학병원에 가시라고 했다. 그냥 한약이나 지어달라고 하셨지만 No. 자칫 진료비 몇 푼에 눈이 멀면 큰일난다. 몇 달뒤 수줍은 표정으로 나타나시고는, “저… 그때 방광암 수술 잘하고 왔어요, 감사해요.”     


5.

당신의 삶을 의미 있게 만드는 요소에 대한 세계적인 설문조사가 있었다. 대부분 국가에서 가족과 직업이 1, 2위를 다투었는데 놀랍게도 딱 한 나라는 돈이 1등이었다. 심지어 2등도 가족이 아니었다. 2등은 자신의 건강. 즉 나 혼자 잘 먹고 잘 살면 내 인생 해피하다는 말이다. 놀라우면서도 가슴이 아팠다.     


모든 사람은 전문가다. 선생님, 의료인, 법조인 같은 직업만 전문가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세상 모든 일 중에 제대로 교육받지 않고 아무나 당장 처리할 수 있는 업무가 얼마나 되겠는가. 세상천지가 모두 돈돈돈하는 세상이지만 돈이 내 인생을 대신 살아주지는 않는다. 대충 하면 아무도 모르겠거니 하지만 최소 4명은 안다. 하늘이 알고 땅이 알며, 나 자신과 산타할아버지까지 알고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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