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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르몬닥터 권영구 Jun 10. 2024

@1116 <다수결은 항상 옳을까 한번 더 생각하고~

@1116

<다수결은 항상 옳을까 한번 더 생각하고 양보의 미덕도 고려하자>     


1.

“의사선생님은 수술해야 된다고 하시는데 우리 투표부터 해봅시다. 찬성? 반대? 음, 반대가 많으니 어머니 치료는 수술 대신 약물로 하겠습니다.” 

믿기지 않겠지만 100% 실화다. 수련의 시절 나의 담당 환자에게 새로운 병이 발견되어 해당과 선생님 진료를 의뢰했지만 헛수고로 끝났다.     


2.

“다수결이 항상 옳지는 않다.”

오랜만에 슈카님 흥분한 모습을 보았다. 늘 객관적이고 논리적이지만 재미를 위해 일부러 농담을 섞어가며 말하는 그다. 공적인 중요한 일에 여론조사를 동원하는 상황을 놓고 이래서는 안된다며 발끈했다.    

 

그의 주장은 이렇다. 민주주의는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이라는 다수결의 원칙을 근본으로 한다. 다만 다수의 결정이 그 나머지 소수를 포함한 전체에게도 최선인지에 대해 잘 따져봐야 한다. 옳은 일이라면 다수에게 불편하더라도 설득하는 수고를 해야 한다. 대중도 그 주장에 동의하고 서로 양보할 줄 알아야 한다.     


3.

“민주주의는 효율적이라서 채택한 제도는 아니에요.” 

동의한다. 모두에게 1인 1표의 권리를 부여하니 바람몰이에 취약한 단점이 있다. 민주주의는 권력을 향한 인간의 끊임없는 욕망과 피의 역사를 끊어 보고자 탄생한 제도다.     


“오늘 회식은 중식당? 삼겹살집?”

이런 안건으로 투표하면 그나마 낫다. 물론 채식주의자는 먹을 음식이 없어 다수의 횡포로 느낄 수도 있다. 어차피 여러 사람이 한배를 탄 이상 모두 따로 국밥으로 움직일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다수결이 무조건 효율적이라기 보다는 서로 양보하는 하나의 기준을 제시한다고 볼 수는 있겠다.      


4.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이익을 추구한다. 양보하고 나누기 보다 내 것을 지키는 일에 더 몰두한다. 누구든 내 밥그릇에 숟가락 한 번 들이밀면 발끈하며 즉각 응징에 나선다. 물론 그 주장 자체는 옳다. 다만 서로의 옳음끼리 부딪친 상황에서 전체의 이익을 위한 적절한 선에서 양보하는 성숙함을 기대한다.      


핵심은 다수결로 결정할 수 있는 문제와 그렇지 않은 문제의 구별이다. 수술을 할지 말지는 의료진 판단에 따르되 수술 이후 1인 병실과 다인실의 결정은 의료적 판단이 아니므로 보호자들이 다수결로 정해도 좋겠다. 전문적인 판단에 대해 다수결로 밀어 붙여도 곤란하고, 전문영역이 아닌 부분에 대해 다수결을 너무 무시해도 문제다.     


5.

“다들 그렇게 잘 하고 있지 않나요?”

한국은 전세계 고등교육 1위를 자랑하지만 사람들이 늘 합리적이지는 않다. 특히 내 이익과 관련된 일이면 다수결이든 힘의 논리든 무슨 수라도 쓴다. 다수결과 양보 사이 그 적당한 타협점을 누가 잘 찾아내는지 정치적인 안목이 관건이다. 너무 어렵다.     


*3줄 요약

○다수결이 항상 옳다고 말할 수는 없다.

○다수의 이익이 전체의 이익과 항상 일치하지는 않는다.

○다수결과 양보사이의 적절한 타협점을 잘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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