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잡화점 668
1.
"아니, 깜박이도 안켜고 갑자기 끼어드시면 어떡해요!!"
/"분명히 제가 먼저 끼었는데, 당신이 뒤로 박았쟎아요. 쌍방과실이죠."
한문철TV에서 퍼져나온 수많은 사고영상을 보면, 내가 저 상황에 처하지 않은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가슴을 쓸어내린다. 사고는 언제든 일어나기 마련이니 쌍방과실로 처리하면 그만이라며, 난폭하게 운전하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다. 당한 것도 억울한데 미안하다는 말한마디없이 쌍방과실로 몰아가니 더 짜증난다.
2.
소통이 잘 안되어 트러블이 생길 때가 있다. 대부분 둘다 기분이 안좋다. 제3자가 중재하여 해결을 시도하지만 결코 만만치 않다. A는 서로 공격을 주고 받은 대등한 상황이니 '화해'를 하려고 하고, B는 일방적으로 피해를 입었으니 '사과'를 받아야 한다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3.
"아까 회의실에서 제가 드린 말씀이 불편하셨다면 사과드리겠습니다. 다음에는 조심하겠습니다."
/"뭐, 불편하셨다면? 그게 사과야! 김대리는 아직도 잘못이 없다고 생각하는군. 그래, 좋아. 그렇게 나온다면야..."
화해와 사과는 전혀 다르다. 잘못은 없다고 생각하지만 이 불편한 상황을 모면하고 싶을때, '마지못한 사과'가 등장한다. 보통 조건문의 형식을 빌어 미안해하는 척만 한다. 당연히 듣는 사람은 더 열불이 난다.
4.
지금 상대가 잘못했다고 생각하며 말을 꺼내는지, 고개 빳빳이 들고 잘못없다고 대드는지 말투와 표정만 봐도 금새 감이 온다. '미안, 죄송, 유감' 같은 단어를 썼다고 해서 무조건 사과했다 주장하면 안된다. 사과의 자세가 느껴지지 않으면 상대가 꼬투리를 잡아 역공격을 시작한다.
"사과하는 사람이 그런 표현을 쓰나?"
"사과하면서 다리를 달달달 떨면서 말한다고?"
5.
핵심은 사과를 어떻게 했느냐 하는 구체적인 상황과 문구에 있지 않다. 이 상황자체에 대한 인식자체가 서로 다르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한쪽은 천재지변으로 생긴 불가피한 일이라 피장파장이라 여기고 있는데, 다른 한쪽은 아무튼 당신이 약속을 어겼으니 코가 땅에 닿도록 사과하길 바란다. 그 입장차이를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지 협상부터 다시 해야 한다. 아직 협상이 덜 끝났다.
6.
필요하면 끝장토론이라도 해야 한다. 말은 안통하겠지만 서로 어느 부분에서 기분이 나쁘기 시작했고, 어떤 부분이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는지 충분한 소통이 먼저다. 대충 얼버무리고 넘어가려 들면 어떤 행동을 해도 기름만 붓게 된다. 사과의 말을 해도 어이없는 말로 재해석되고, 돈으로 보상해도 상대를 거지취급하는 꼴이 될 뿐이다.
7.
서로 말문을 닫고 외면하는 이유는 딱 하나다. 이 상황을 구태여 해결할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파국으로 가든 말든 이 관계에 그리 집착하지 않으며 될대로 되라는 마음이다. 회사나 가정, 그리고 친구사이에 사소한 문제가 생긴 뒤, 그로부터 30년째 남남처럼 지내는 사람들이 많은 이유다. 파국을 막고 싶다면, 상대에 대한 최소한의 애정이 남아있다면, 조용하게 넘어가지 말고 오히려 큰소리를 내야 한다. 앙금이 남지 않도록 다 드러내어, 화해를 하든 사과를 하든 제대로 마무리지어야 한다. 그 과정을 거치면 서로 상대를 '용서'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