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20
<압존법은 더 이상 쓰지 않는다, 상호존대가 답이다>
1.
“팀장님이 외근 나가셨다고? 팀장이 나보다 높아? 지금 누구 앞에서 누구를 존대하고 있는 거야.”
본부장이 김대리에게 압존법 문제를 꺼낸다. 지난번 HR교육에서 서로 존대하는 말투를 써야 한다고 들었지만 소용없다.
압존법은 정말 꼭 지켜야 할 원칙일까.
2.
심지어 본부장은 불과 한 달 전 팀장에서 승진했다. 함께 일하던 동료가 새로 팀장이 되었는데, 본부장 입장에서는 팀원들이 자신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느낄 수 있다.
팀장이나 자신이나 별 차이 없다고 생각하나 싶어 더 발끈할지도 모른다. 팀장시절부터 아랫사람에게 함부로 반말하며 권위적으로 행동하더니 승진해도 그대로다.
압존법이라는 단어 자체를 처음 들어본 사람도 많지만 남자들은 너무도 잘 안다. 바로 군대에서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말이라서 그렇다. 군 경험이 있는 남자들이 직장에서도 비슷한 방식으로 위계질서를 강요할 때가 많다.
압존법은 군대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에서도 단골 소재다. 그것도 가벼운 코미디 장면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주로 선임이 후임에게 존대 똑바로 하라며 괴롭히는 수단으로 나온다. 군대는 한 달 단위로 미세하게 나름의 서열이 정해지는데 그 순위를 정확히 외우지 못하면 압존법을 어겼다며 불호령이 떨어진다.
3.
군대에서 조차 2016년에 ‘공식적으로’ 압존법을 폐지하기로 했다. 국립국어원에서는 ‘폐지’라는 단어를 함부로 쓰지 않는다.
압존법은 공식 규칙이 아니었으니 폐지하고 말고 논할 성격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압존법은 관습법 성격이 강하니 사적인 자리 또는 가족 내에서만 쓰고 회사나 사회생활에서는 쓰지 않는 편이 언어예절에 맞다고 밝히는 정도다.
나도 압존법으로 괴롭힘을 많이 당했다. 나보다 30살 많은 A선배에게 감히 반말할 생각을 못해 봤는데 40살 많은 선배 앞에서 “A가 밥 먹고 나갔습니다.”는 문장을 입 밖으로 내기가 너무도 부담스러웠다. 그렇게 혼나고 또 혼났다.
그나마 남자들은 군대에서 그런 제도가 있다는 사실을 접해본 적이라도 있지만 대부분 여성에게는 너무 황당하게만 들린다.
4.
압존법이 이리도 끈질기게 생명력을 유지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아마 잘못된 권위의식에서 시작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서열순서를 미세하게 쪼갠 뒤 자신이 그 사람보다 더 높은 위치라는 사실을 끊임없이 확인하는 심리다. 엇비슷한 대접도 인정할 수 없다. 자신의 레벨이 한 뼘이라도 더 위니까.
또한 아랫사람에게 불만이 있을 때 이처럼 손쉬운 핑곗거리가 없다. 말꼬리 잡아서 괜히 한소리 퍼붓고는 혼자 정신승리에 빠진다. “우리말 존대의 기본 원칙은 상호존대입니다. 같이 높이고 서로 님이라고 부르는 방식이 맞아요.” 국립국어원의 명쾌한 설명이다.
한 번은 아는 내과 선생님과 식사하는 중에 “간호조무사 선생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던데요.” 했다. “권원장보다 나이가 많아도 직급이 아래니까 존대하면 안돼.” 평소 존경하는 원장님이지만 그 말씀만은 아직도 인정할 수 없다.
5.
서로 반말하면 수평적인 문화이고 존댓말을 쓰면 권위적이고 수직적인가. 길 가다 누군가 당신에게 대뜸 “경복궁 어떻게 가?” 할 때 기분 나쁘지 않은 사람이 얼마나 되는가.
국립 국어원 지침대로 ‘상호존중’이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서열관계없이 모든 존재를 귀하게 여긴다는 차원에서 보면 훨씬 미래지향적인 언어습관이다.
*3줄 요약
◯압존법은 권위주의적 위계질서를 위한 도구로 악용될 때가 많다.
◯국립국어원은 압존법 대신 서로를 높이는 '상호존대' 원칙을 권장한다.
◯서열보다 상호존중을 바탕으로 한 언어 사용이 진정한 소통의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