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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의의 염려조차 공격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의 심리>
1.
“김대리, 당뇨가 심하다면서요? 우리 어머니 당뇨병 케어하면서 식단관리 정리해 놓은 자료가 있는데 한 번 보실래요?”
“언제 도와달라고 했나요? 제 건강은 제가 알아서 챙깁니다.”
분위기가 싸늘해진다. 커피 마시다 염려하는 마음으로 한마디 건넸을 뿐인데 뒤통수 제대로 맞았다.
염려를 전하는 말 한마디에 왜 저렇게 발끈할까. 주위 사람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이제 김대리에게는 아무도 안부를 묻지 않는다.
2.
김대리 같은 사람에게는 나름의 철학이 있다. 먼저 도움을 구하지도 않았는데 조언하면 무례한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경계를 함부로 침범했다고 여긴다.
말 자체는 옳다. 다만 실제로 사람을 대할 때 약간의 왜곡이 생기니 문제다. 점심 메뉴 이야기도 날씨 이야기도 모두 ‘내 영역 침범’이라고 하면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가. 그 어떤 소재를 꺼내도 본인이 침범이라고 우기면 할 말이 없다.
“그럼 명절에 취업이나 결혼에 대해서 다들 이래라저래라 한 마디씩 던지는 말이 모두 옳다고 보시나요?”
김대리는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놓치고 있다. 상대가 가볍게 대화를 건네는 상황과 상대방이 강압적으로 본인 생각을 강요하는 상황은 엄연히 다르다.
3.
A. “취업준비는 잘 되어가고 있어? 그렇구나. 곧 원하는 직장에서 연락 올 거야, 응원할게. 환절기에 건강도 잘 챙기면서 지내고.”
B. “취업준비는? 너무 재지 말고 어디든 입사부터 하라니까. 경험을 쌓으면서 기회를 찾아야 되는 거야. 아직 어리니 잘 몰라서 그러는데 내 말대로 한 번 해보라고.”
A와 B의 멘트를 구분하지 못하고 같은 카테고리로 받아들이기 시작하면 인간관계가 붕괴되기 시작한다. A는 나름의 선을 지키며 공감과 응원을 전하고 있지만 B는 판단과 지시를 담고 있다. A의 말마저 자신을 내려다보며 혀를 끌끌 차고 있다는 이미지로 받아들이니 화가 나기 시작한다.
이런 사람들은 남에 대한 스몰토크도 잘 하지 않는 편이다. 남이 자신에 대해 언급하는 자체가 그렇게 싫으니 본인도 남 일에 모든 관심을 끊고 지낸다. ‘필요하면 말하겠지, 말없으면 괜찮다는 뜻이겠고.’
4.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남의 발언을 ‘무시’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평소에 나를 얼마나 지질하게 보았길래 나한테 저런 말을 꺼내는 거지? 나 혼자 그런 일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다고 생각했나?’
겉으로는 상대가 선을 넘었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자신의 감정 상태에 따라 같은 멘트도 다르게 받아들인다. 정말 문제가 있는 발언이었는지 여부는 전적으로 본인 마음에 달려있다. 상대가 예의를 갖춰 기본 정보만 툭 전달하더라도 ‘내가 기분 나빴으니 무조건 네가 잘못한 행동.’이라는 논리다.
한두 번 이런 소동을 겪고 나면 주위 사람들은 점점 침묵한다. 무슨 말에 어떻게 폭발할지 예측이 안 되니 아예 입을 다문다. 점점 관계가 끊어지고 혼자만 남는다.
“왜 나는 친한 사람이 별로 없지?”
다 스스로 자초한 일이다. 사회적 관계를 넘어 ‘친한 사이’로 접어든 사람이라면 이런저런 말을 주고받다가 때로 경계를 넘나들기도 한다. 심하면 그 부분만 조심해 달라고 하거나 선을 옮겨 그리면서 관계를 이어가면 된다. 다들 그렇게 산다.
5.
핵심은 ‘열등감’이다. 상대가 대단한 조언을 던지지는 않았지만 내 일을 언급하는 자체가 불편하다. 나보다 더 우월하고 대단하다고 생각해서 이렇게 챙기려 든다는 느낌을 받는다.
열등감에 사로잡힌 사람은 타인의 선의마저 공격으로 해석한다. 그들이 진짜 원하는 반응은 단 하나다. 기립박수를 치며 환호하는 맹목적인 인정.
이렇게 열등감과 인정욕구는 묘하게 이어지는 구석이 있다. ‘건강한 경계’를 설정할 줄 알아야 자신의 존엄을 지키고 남과의 관계도 원만하게 유지할 수 있다. 상대의 말을 들을 때 ‘의도’와 ‘내용’을 분리해서 받아들이는 연습부터 시작해 보자.
*3줄 요약
◯일상적인 정보전달 및 안부와 상대에게 자신의 판단을 강요하는 상황은 전혀 다르다.
◯선의의 관심마저 무시로 받아들이면 관계가 점점 멀어지고 혼자 고립된다.
◯열등감을 버리고 건강한 경계를 설정해야 자존감과 인간관계를 모두 지킬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