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49
<왜 남의 말 한마디에 눈치껏 과잉친절을 베풀까>
1.
“오늘 날씨 좀 덥지 않아?”
A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갑자기 B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선다. 두리번거리며 에어컨 리모컨을 찾더니 냉방스위치를 켠다. “이제 시원하지?”
“너는 왜 B를 시켜 먹고 그래. 더우면 에어컨은 네가 알아서 켜야지.”
주위에서 타박하자 A는 억울해한다. 그저 덥다고 말 한마디 꺼냈을 뿐인데 졸지에 인민의 적이 되어 버렸다.
2.
두 가지 관점에 대해 각각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의외로 A처럼 빙빙 돌려서 자기가 원하는 바를 전하는 사람이 많다.
누구 한 사람을 지목해 부탁하거나 지시하지는 않는다. 대신 자신이 느끼는 불편한 감정은 고스란히 쏟아낸다.
이런 사람들은 그렇게 말하고 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경험상 대충 짐작하고 있다. 이 정도로 속내를 내비치기만 해도 누군가는 알아서 움직여 준다는 사실을 잘 안다. 부탁하지 않았으니 고마워할 필요가 없고 지시한 적도 없으니 갑질소리 들을 염려조차 없다.
남들 보기에 별로 좋아 보이지 않는 행동이다. 만일 당신이 정말 스몰토크의 소재로 그런 대화를 꺼내고 싶었다면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라. 혹시 은연중에 상대가 당신을 위해 움직여주길 기대하고 있지는 않았는가.
3.
B는 자신의 눈앞에 무슨 문제가 벌어지는 꼴을 잠자코 지켜보지 못한다. 무슨 수를 쓰든 그 일을 해결해야 직성이 풀린다.
자신과 아무 관계없는 일이고 누가 시키지도 않았지만 자발적으로 먼저 움직인다. 성격 급한 동네반장 스타일이라 그랬다면 그나마 이해가 된다. 혹시라도 오래전 트라우마의 무의식적 발로는 아니었을지 잠시 돌아볼 필요가 있다.
강압적인 분위기 속에서 눈칫밥 먹으며 지낸 사람은 알게 모르게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대단히 민감하게 반응한다. 자신을 향한 말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반사적으로 몸이 먼저 움직인다.
지금 바로 움직이지 않으면 잠시 후 거대한 후폭풍이 몰려온다는 공포가 자리 잡고 있어서 그렇다. A가 “너한테 에어컨 켜달라는 말이 아니었어. 그냥 날씨 이야기였을 뿐이야.”해도 ‘나를 배려해서 저렇게까지 말해주는구나.’하며 오히려 상대를 이해하려 애쓴다.
4.
보통 악의적으로 행동하는 A 곁에는 속 터지게 답답한 B가 붙어있다. 남들 보기에는 너무도 이상하지만 그들끼리는 너무도 자연스러운 공생관계다.
우아하게 간접화법으로 부려먹는 사람과 말 한마디 놓치지 않고 모조리 미션을 수행해 내는 환상의 조합이다. B들이 모두 사라지거나 등을 돌리면 A는 또 다른 먹잇감을 찾아 나선다.
“보자 보자 하니 둘 다 답답하다. A는 비겁하고, B는 너무 비굴해.”
남이 중재하려고 끼어들어봐야 소용없다.
A는 절대 부려먹은 적 없다며 발끈하고, B는 남을 돕는 친절한 자신을 왜 나쁘게 말하느냐며 화를 낸다.
5.
이 관계에서 도움이 필요한 사람은 사실 B다. 악의적으로 행동하는 A는 결국 사람들에게 자연스럽게 외면받기 쉽다.
B가 과거의 상처에서 확실히 벗어나야 ‘알아서 기는’ 버릇을 고칠 수 있다. 시간이 많이 흐르고 나이도 들었지만 아직 그 시절 불안과 공포에 계속 지배당하는 중이다.
지금 여기는 안전하다. 아무도 당신에게 위해를 가하지 않는다. 몸이 움찔하며 마음의 부담을 느낄 때 3초간 멈춰 잠시 생각하는 연습을 해보면 어떨까.
*3줄 요약
◯불편을 표현하여 간접적으로 남을 움직이려는 사람은 그 의도자체가 불순하다.
◯남의 말에 과잉친절을 보이는 반응은 강압적 환경에서 형성된 트라우마가 원인일 수 있다.
◯남 눈치에 민감한 사람은 지금 여기가 안전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과거의 불안에서 벗어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