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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과 악은 누가 정하는가 : 니체가 말한 독수리와 양의 비유>
1.
“우리 모두 독수리를 몰아낼 방법을 찾아봅시다.”
어느 날 속수무책으로 독수리에게 잡아 먹히기만 하던 양들이 대책회의를 열었다.
“아니, 저런 악당들이 어디 있소. 이렇게 순하고 착한 우리 양들을 무지막지하게 잡아먹다니.”
“맞아요, 맞아요.”
독수리는 정말 그렇게 사악한 악당일까.
2.
같은 시각 들판의 풀들도 머리를 맞대고 쑥덕거리는 중이다.
“양들이 우리를 모조리 뜯어먹는 바람에 불안해서 살 수가 없어요. 양들은 왜 그렇게 못됐을까요?”
“정말 어이없네요. 우리는 풀을 먹어야 살 수 있어요. 그럼 먹지 말고 죽으라는 소리인가요?”
양들이 억울해한다.
“아까 당신들도 독수리를 악당이라고 했잖아요. 뭐가 다른가요?”
“독수리는 우리를 잡아먹으니까요.”
아이러니하게도 양에게는 독수리가 악당이고, 들풀에게는 양이 불한당이다. 다들 자기 입장에서 선과 악을 규정한다.
3.
니체는 선악에 대해 설명하면서 실제로 독수리와 양을 예로 들었다.
독수리가 양을 잡아먹는 행위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먹이사슬의 이치다. 하지만 양은 잡아먹혀야 한다는 사실이 억울하니 독수리를 ‘악한 존재’로 규정한다.
“나는 독수리를 공격한 적이 없는데 왜 우리를 괴롭히는지 모르겠어.”
냉정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다. 양이 독수리를 공격하지 않는 이유가 정말 ‘선한 마음’ 때문일까, 아니면 단순히 힘이 없어서일까.
양은 독수리를 공격할 능력이 없고, 독수리 역시 즐거움을 위해 양을 사냥하지는 않는다.
4.
니체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도덕적 판단에서 입장차이에 주목한다. 독수리를 악이라고 보는 주장은 어디까지나 양의 시각이다. 이를 ‘약자의 도덕’이라고 부른다.
양은 일단 독수리의 행동을 폭력으로 규정한다. 그리고 힘으로 대응하지 못하는 자신의 무능함을 ‘용서’라는 이름으로 포장한다.
“그럼 그냥 가만히 당하고만 있으라는 말인가요?”
힘의 강약 관계를 선악의 관점으로 오해하기 시작하면 아무 해결책도 찾지 못한다.
양은 자신이 선하다고 주장하지만 정작 들풀에게는 악한 행동을 하지 않았던가. 이처럼 니체는 우리가 너무 쉽게 거론하는 선악이라는 개념 자체가 대단히 모호하고 막연하다는 점을 지적한다.
5.
“낚시가 정말 재미있어요, 손맛이 끝내주거든요.”
주위에 낚시를 즐기는 사람들이 많지만 나는 영 내키지 않는다.
손맛만 느끼고 그냥 풀어준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살아남으려는 생선의 처절한 몸부림을 재미의 대상으로 삼으면 너무 잔인하다.
선악의 관점은 결국 각자의 입장차에서 나온 개념이지만 생명을 존중하는 최소한의 마음만은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
*3줄 요약
◯독수리에게 양은 먹이지만 양에게 독수리는 악당이다.
◯니체는 선악이 입장에 따라 달라진다고 보았고, 약자가 강자를 '악'으로 규정하는 과정을 ‘약자의 도덕’이라고 불렀다.
◯생존을 위한 강약의 먹이사슬에는 선악이 없지만 쾌락이 끼어들면 문제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