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1 <노이즈를 차단하면 창의성도 사라진다>

by 호르몬닥터 권영구

@1451

<노이즈를 차단하면 창의성도 사라진다>


1.

“오, 음질이 너무 좋은데.”


노이즈 캔슬링 이어폰을 처음 끼면 다들 감탄을 쏟아낸다. 소음이 완전히 사라지면 처음 만나는 고요 속에 음악에만 완벽하게 몰입할 수 있다.


그래도 길을 걸을 때는 한쪽만 끼우자. 누가 위험하다고 소리쳐도 전혀 안 들리니 조심해야 한다.


2.

노이즈 캔슬링은 주변 잡음을 감지하고 그와 반대되는 역파동을 발생시켜 그 소리를 상쇄하는 기술이다. 지하철 덜컹거리는 소리도, 옆사람이 통화하는 소리도 깔끔하게 지운다.


이 기능을 너무 오랫동안 사용하면 엉뚱한 부작용이 생긴다. 이제 귀가 너무 작은 소리에도 민감하게 반응하기 시작한다. 소음을 이겨내는 능력을 잃어버리고 적응하지 못하게 된 결과다.


이런 현상은 소리뿐만 아니라 우리 일상 전반에 걸쳐 나타나고 있다. 별 관심 없는 정보는 눈길도 주지 않다 보니 유튜브와 인스타도 내 취향에 맞는 콘텐츠만 계속 띄운다. 때로는 알고리즘이 나에 대해 더 정확히 안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나와 관련 없다고 생각하는 일들은 가볍게 훑어보기도 싫다. 전부 잡음처럼 느껴진다. 너도 나도 소음이 아닌 ‘신호’라고 느끼는 내용만 공유하며 대화를 나누려고 한다. 그렇게 직업이나 취미에 따라 정해진 커뮤니티 활동만 열심히 하다 보니 주위에는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만 가득하다.


3.

언뜻 효율적으로 보이지만 실은 매우 위험하다. 내가 듣고 싶은 음악만 듣느라 지나가는 자동차 빵빵 소리를 못 듣는 상황과 비슷하다.


지금 당장은 관계없어 보여도 잠시 귀를 기울이고 들어보아야 할 소리들이 있다. 딱 내게 필요한 정보만 추구하다 보면 점점 소양이 얕아진다. 관심 없는 바깥 세상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분위기 파악도 제대로 못하게 된다.


스티브 잡스는 출판사에 취업할 생각으로 대학 때 서체 수업을 들었겠는가. 컴퓨터 관련 지식만 좇지 않고 흥미가 생긴 분야에 대해 시간을 쪼개어 두루두루 지식을 쌓았다.


이후 스토리는 잘 알려진 그대로다. 수년 뒤 매킨토시를 만들 때 창의적인 융합 반응이 일어났다. 서체에 대한 지식이 컴퓨터와 만나 혁명을 일으켰다. “공대생이 왜 서체 수업을 들어? 시간이 남아도나 봐?” 누군가의 핀잔에 마음을 접었다면 위대한 탄생은 일어나지 않았다.


4.

“그럼 세상의 모든 지식을 다 알아야 한다는 말씀인가요?”

당연히 아니다. 짧은 인생을 살아야 하는 입장에서 시간만큼 소중한 가치는 없다.


다만 시간을 어떻게 쓸지 고려할 때 일부만이라도 불필요해 보이는 정보에 투자하면 좋겠다. 지금 중요해 보이지 않는다고 무조건 ‘노이즈 캔슬링’ 해버리면 머릿속 창의적인 아이디어의 샘은 금방 말라 버린다.


정치기사를 챙겨보는 이들이 모두 정치 지망생일까. 경제면을 펼쳐 드는 사람이 다들 여의도 증권맨들일까.

다양한 시각이 없으면 창의적인 사고는 불가능하다. 창의는 관점이다.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창조’와 다르다. 이미 알고 있는 사실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떤 식으로 연결 짓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맥락으로 바뀐다.

5.

낯선 환경 속으로 자기 자신을 던져보자. 공통분모가 하나도 없을 듯한 사람을 일부러 만나 대화를 나눠봐도 좋겠다.


평소 눈길도 주지 않던 서점의 문학코너에 들러 전시된 책들을 잠시 살펴보면 어떨까. 포털 뉴스만 대충 훑어보는 대신 종이신문을 펼쳐 큰 제목이라도 휘리릭 챙기자. 유튜브도 검색 기록을 모두 삭제하고 알고리즘을 리셋시키자.


노이즈 캔슬링을 끄고 세상의 소리를 함께 들어야 소음을 가려듣는 능력도 길러진다. 어쩌면 지금 외면하려 했던 그 ‘소음’이 내일의 기회일 수 있다.


*3줄 요약

◯관심사만 좇다 보면 세상을 보는 시야가 좁아진다.

◯관계없어 보이는 지식의 융합에서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탄생한다.

◯낯선 정보에 노출되어야 창의적 사고의 샘이 마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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