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5
<그 사람의 냄새를 기억하고 있나요>
1.
“짠, 제가 벽장 안에 있던 옷 전부 세탁했어요.”
교환학생으로 외국에 간 학생이 현지인 가정에 도착했다. 따로 방 하나를 내주셔서 들뜬 기분으로 방구석구석 청소하기 시작한다.
벽장을 열어보니 옷들이 지퍼백에 하나씩 담겨있다. 꿉꿉한 냄새도 난다. 연세 많은 할머니가 미처 세탁을 못하셨나 보다. 세탁기에 넣고 싹 돌렸다. 외출하고 돌아온 할머니는 빨랫줄의 수많은 빨래들을 보며 흐느끼기 시작하신다. “딸아, 이제 너의 냄새를 다시는 맡을 수 없겠구나.” 세상을 떠난 딸의 옷이었다.
2.
점심식사하러 팀원 전부 구석진 골목의 낡은 김치찌개집에 들어갔다. 팀장님이 국물 한 숟가락 뜨는 순간 멈칫하신다.
“어, 돌아가신 우리 엄마가 끓여주신 바로 그 맛인데?”
그날부터 팀장님은 그 집의 단골이 되어 버렸다. 사장님은 매일 같이 찾아오는 그 손님에게 무슨 사연이 있는지 알 길이 없다.
이처럼 냄새와 맛은 우리의 기억을 소환하는 강력한 힘이 있다. 오감 중에서 가장 원초적이고 강력한 감각이다. 잠시 노출되기만 해도 순식간에 타임슬립하여 그때 그 장소로 이동한다.
딸이 옷을 입은 채 비에 흠뻑 젖어 들어왔을 때의 표정, 찌개를 먹으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던 저녁식탁의 풍경이 할머니와 팀장님 눈앞에 아직도 생생하다.
3.
“김대리는 초딩 입맛이에요.”
어린 시절 좋아하던 음식을 여전히 고집하는 사람들이 있다. 단순히 입맛의 문제가 아니다. 그 음식에 깃든 따뜻한 기억을 놓치고 싶지 않은 마음일지도 모른다.
사람마다 추억을 간직하는 방식은 다양하다. 찐한 사이일수록 함께 밥 먹고 술 마시고 또는 같이 여행도 간다. 그렇게 추억을 만들려고 애쓰는 관계가 주로 가족, 친구, 동료들이다. 그들과 함께 한 시간 속에서 당시의 냄새와 맛은 우리 마음속에 각인된다.
아쉽게도 냄새와 맛은 저장할 방법이 없다. 그 순간이 지나고 나면 영영 사라진다. 아쉬운 마음에 사진을 찍고 글로 묘사해 보기도 하지만 한계가 있다.
게다가 인간의 기억은 그리 믿을 만하지 않다. 시간이 흐르면 옅어지고 어느 순간 잊어버리게 된다. 심지어 기억끼리 간섭하여 왜곡되기까지 한다.
4.
“그래서 사진을 열심히 찍어요, 결국 남는 건 사진뿐이니까요.”
여행을 다녀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는 사진만 봐도 모든 기억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사진 속 어깨너머 뒤에서 놀고 있던 아이들의 웃음소리까지 귀에 생생하다.
그러다 어느 순간이 되면 기억이 가물가물해진다. 그 사진을 정말 찍기는 했나 궁금해진다. AI로 조작된 장면은 아닐까 의심할 정도다.
그런 점에서 사진보다 동영상이 백번 낫다. 냄새와 맛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상당히 위력적이다. 다시 보지도 않을 풍경사진 찍느라 시간 허비하는 대신 그 장소에서 소중한 사람과 보낸 그 상황을 저장하자.
5.
간직하고 싶은 순간이 있는가. 영원히 잊기 싫은 사람이 있는가.
당장 그와 함께 오감을 즐길 방법부터 연구하자. 맛있는 음식과 좋은 술을 같이 나누고 독특한 그의 체취도 맡아보자.
이왕이면 사진과 동영상으로 기록까지 남기자. 조금 귀찮더라도 블로그에 그날의 대화내용과 맛, 냄새, 날씨, 감정까지 적어두면 더 좋다. 나중에 하면 된다고? 오늘 이 순간은 결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3줄 요약
◯냄새와 맛은 기억을 소환하는 가장 강력한 감각이다.
◯동영상처럼 오감과 연결된 경험이 더 생생한 추억을 만들어준다.
◯소중한 사람과 함께 음식을 나누고 기록으로 남기면 10년 뒤 큰 보물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