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75
<전문가를 무시하면서 전문가로 인정받고 싶어 하는 사람들>
1.
“우리나라 사람들은 외국 유명한 분들한테는 꼼짝도 못 하면서 한국인 건축가들은 완전히 무시해요.”
왜 한국에서는 설계도 대로 건물이 지어지지 않는지 설명하는 도중 유현준교수가 울분을 토한다.
일본에서는 건축주가 전기콘센트 위치 하나만 옮기려 해도 건축가에게 조심스럽게 부탁하지만 한국에서는 절대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이라고 한다.
2.
“전문가들은 왜 그렇게 불친절하죠? 이쪽으로 콘센트를 옮겨달라면 해줄 일이지 왜 자꾸 토를 다는지 모르겠어요.”
우리나라에서는 일반인 의견을 그대로 반영하지 않으면 무조건 불친절하다고 말하는 경향이 있다. 유튜브에서 본 내용이나 친구에게 들은 말은 철석같이 믿지만 전문가의 견해는 절대 신뢰하지 않는다.
그렇게 본인 생각에 확신을 가지고 있으면서 전문가는 왜 찾는지 모르겠다. 인터넷과 인공지능이 많이 보급되면서 이런 현상은 점점 심해지고 있다.
비전문가인 일반인들도 학력이 높다 보니 본인 전공분야가 아니라도 자신의 안목으로 얼마든지 판단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3.
“스스로 평범하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평범함의 권리’를 주장하며 오히려 상대에게 그 내용을 강요하기까지 한다.”
스페인의 사상가 오르테가는 대중들의 이러한 행동에 대해 엄중히 경고했다. 대중은 결코 자신의 무지를 인정하지 않으며 오히려 모든 분야에 대해 의견을 말할 권리가 있다고 믿는다.
오르테가는 이를 단순한 무지의 차원으로만 바라보지 않았다. ‘평범함이 비범한 전문성을 지배하려 드는 폭력’으로 보았다.
인터넷 검색과 AI의 발달로 이런 현상은 점점 심해지고 있다. 한국에서 이런 풍조가 유독 두드러지고 있는 배경에는 IT 발달로 정보 접근성이 좋아진 부분도 있다.
4.
“대중은 자신과 다른 것, 뛰어난 것, 자격을 갖춘 것, 선택된 것을 짓밟는다. 누구든 대중처럼 생각하지 않으면 배제될 위험에 처한다.”
오르테가의 말처럼 대중의 행동은 자신들의 의견을 주장하는 수준에서 그치지 않는다. 전문가의 견해가 대중의 뜻과 다르기라도 하면 그 의견에 주목하는 대신 다수가 똘똘 뭉쳐 손가락질하며 비난하기까지 한다.
“제가 이 기계 AS만 10년을 했어요. 왜 제 말을 못 믿으세요?”
“아니, 선생님도 아까 변호사한테 당신 말 못 믿겠다고 하셨잖아요.”
정말 아이러니한 일이다. 타인의 전문성은 부정하면서 본인의 전문적인 지위는 인정받고 싶어 한다. 심지어 자녀들도 전문직 타이틀을 가졌으면 하고 갈망하기까지 한다.
5.
물론 전문가의 말이 다 맞다고 할 수도 없다. 실력이 천차만별이고 고압적인 행동으로 갑질하는 모습도 많이 보인다. 대학시절 습득한 지식으로 평생 버티려는 사람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일부의 문제를 빌미 삼아 ‘전문성’ 자체를 부정하려 들면 곤란하다. 자격을 갖추지 못한 전문가들을 솎아내어 도태시키는 방식이면 몰라도 자신이 더 많이 안다고 덤비면 대단히 위험하다.
상대를 존중하는 차원에서 경험과 지식을 인정하라는 말이 아니다. 전문적인 조언을 무시했을 때 가장 큰 손해를 보는 사람은 결국 자기 자신이다. 나도 모르게 전문가의 말을 가볍게 듣고 넘기지는 않았는지 잠시 돌아보자.
*3줄 요약
◯한국에서는 국내 전문가 의견을 쉽게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대중은 자신의 무지를 인정하지 않고 평범함으로 전문성을 지배하려 든다.
◯전문가도 완벽하지는 않지만 전문성 자체를 부정하면 결국 자기만 손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