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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일이 가진 엄청난 위력>
1.
“오늘 무슨 날인지 알고 있지?”
심장이 콩닥거리고 식은땀이 흐른다. 빛의 속도로 머릿속 기억을 헤집는다.
“그럼 당연히 알지. 우리 결혼기념일이잖아.”
“무슨 소리야, 저녁에 영화표 예매한 날인데.”
2.
“1년 내내 무슨 날이 그렇게 많은지 모르겠어요. 하나하나 챙기려니 정말 귀찮네요.”
크리스마스, 생일, 결혼기념일, 심지어 만난 지 500일 되는 날까지. 도대체 이런 날들은 누가 정해서 이렇게 사람을 귀찮게 하는지 모르겠다.
어떻게 기념일 문화는 그 오랜 시간 수많은 사람들을 거치고도 꿋꿋이 살아남았을까. 답은 간단하다. 우리 삶의 대부분은 특별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단한 사람이든 유명 연예인이든 하루하루의 생활은 거의 비슷하다.
아침에 일어나 일을 시작하고 저녁이면 퇴근한다. 삼시 세끼 끼니를 찾아먹고 밤이 되면 잠자리에 든다. 제 아무리 원대한 목표를 가진 사람이라도 일상의 반복은 피할 수 없다. 그 다람쥐 쳇바퀴 같은 루틴 속에서 점점 지루함을 느낀다. 그러다 달력에 빨간 날을 발견한다. 오, 크리스마스.
3.
극한의 상황에서도 기념일의 가치를 알아본 섀클턴이라는 탐험가가 있다. 남극을 횡단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1913년 항해를 시작했다. 불행히도 배가 빙하 사이에 갇히고 만다. 얼음에 눌려 배가 부서지기 직전 배를 버리고 탈출한다.
이때 그의 탁월한 리더십이 빛난다. 탐험에 대한 욕심을 접고 모든 대원을 살려서 귀환하는 방향으로 목표를 수정한다. 최소한의 장비만 챙겨 생존을 위한 머나먼 길을 떠나기로 한다.
본인이 앞장서서 황금 담뱃값과 금화, 그리고 성경책까지 버리자 28명 대원 모두 군소리 없이 짐을 정리한다. 그 와중에도 거대한 카메라와 축음기, 악기, 카드, 축구공, 필기구 등은 챙겼다.
앞날을 기약할 수 없는 고난의 행군 속에서도 사진촬영, 일기 쓰기, 음악감상, 축구경기, 카드게임을 계속했고 여러 기념일도 반드시 챙겼다. 그런 일상의 재미로 대원들은 희망을 잃지 않으며 꿋꿋이 버틸 수 있었다. 무려 2년 1개월의 사투 끝에 그들은 살아서 돌아왔다. 단 한 명의 사망자도 없이.
4.
하루하루가 변화무쌍하다면 잡생각 할 겨를이 없다. 오죽하면 군대에서 사고 예방을 위한 명목으로 멀쩡한 흙더미를 이쪽저쪽 번갈아 옮기도록 시키겠는가.
보통 사람들은 반복되는 일상을 묵묵히 버텨내기 어렵다. 시간이 흐르면 재미없고 힘들고 짜증만 난다. 회사나 인간관계 모두 마찬가지다. 아주 오래된 연인들이 별일 아닌데도 툭탁거리는 합리적인 이유다.
바로 그때 기념일 같은 장치가 필요하다. 따지고 보면 피식할 만한 제목이지만 그 별것 아닌 이벤트 하나가 흑백의 일상에 컬러를 입힌다.
“정말 고마워, 잘 먹을게.”
빼빼로 한 통 주고받기만 해도 일주일은 활기차게 보내지 않는가. 기나긴 터널 같은 삶 속에서 그런 이벤트가 환기구처럼 숨 쉴 틈을 준다.
5.
“음악 듣고 영화 볼 틈이 어디 있어요, 열심히 일해야죠.”
들려주고픈 유명한 영어 속담이 하나 있다. “All work and no play makes Jack a dull boy.”
기념일을 챙기고 재미있게 놀 줄도 알아야 이 힘든 여정을 견딜 수 있다. 목표만 바라보며 무미건조하게 달리면 결코 오래가지 못한다. 함께 웃고 기뻐하는 순간을 즐기자.
*3줄 요약
◯지루하게 반복되는 일상 속에 기념일이라는 작은 이벤트가 큰 활력을 준다.
◯남극 탐험가 섀클턴도 극한 상황에서 기념일과 놀이를 챙기며 살아남았다.
◯목표만 쫓는 대신 함께 웃고 기뻐하는 순간을 만들어야 오래 버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