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0
<선행은 좋은 의도와 지혜를 배우는 과정이 만나야 완성된다>
1.
“우리 애기 감기 걸렸다면서? 할머니가 죽 끓여줄게.”
손주 아프다는 소식에 시골 사는 할머니가 KTX 타고 서울로 출동하셨다. 엄마 아빠 모두 출근하고 집에 혼자 있다는 말에 부리나케 달려오셨다.
죽이라도 해먹이려고 하시다 사고가 터지고 만다. 땅콩을 갈아 넣으시는 바람에 아이에게 호흡곤란이 생겼다. 응급실 가서 죽다 살아났다.
2.
“엄마, 땅콩 알레르기 있다고 분명히 말씀드렸잖아요. 이만하길 다행이지 정말 큰일 날 뻔했어요.”
“너무하는구나. 내가 손주한테 못할 짓 했니. 끼니라도 챙기려는 마음에 기차 타고 올라와서 죽까지 끓여 주었는데 죄인 취급을 하네. 정말 서운하다.”
당신은 어느 쪽 손을 들어주시겠는가. 이런 일은 우리 주위에서 매우 흔하게 일어난다. A는 너무 좋은 마음으로 선한 행동을 하고 그 행동이 B에게는 치명적인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다.
상대를 위하는 좋은 마음으로 한 행동이면 결과는 문제 삼지 말아야 할까. 의도가 선하기만 하면 그 자체만으로 면벌부를 부여할 수 있을까.
3.
이 일은 결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공자 같은 성인마저 이 사안에 대해 특별 코멘트를 남길 정도다.
“스스로를 어질다고 생각하여 배우지 않으면,
어리석은 행동을 하는 폐단으로 이어진다.”
자신의 마음가짐이 어떻다고 판단하든 본인의 자유다. 만일 그 마음에서 우러난 행동을 남에게 전하려고 한다면 잠시 멈추어야 한다. 냉정한 검증과 확인이 필요하다.
타인은 나의 속마음을 알아차리기도 전에 이미 내 행동에 대한 영향부터 받는다. 좋은 결과가 생기면 일단 감사한 마음이 들고 선의를 깨달으면 더더욱 고맙게 느낀다. 공자는 이렇게 남들 상황과 자신의 행동에 대한 결과까지 고민하고 따져보는 과정을 ‘배움’이라는 말로 강조했다.
4.
그렇다면 이런 경우는 어떨까. 남을 괴롭히려고 못된 짓을 했는 데도 오히려 좋은 결과가 나온다면 선행이라고 보아야 하나. 그렇지 않다. ‘착한 행동’이 성립하려면 생각보다 꽤 까다로운 여러 조건을 만족시켜야 한다.
상대를 위하려는 선한 마음에서 시작되어야 하고 그에 따르는 조치 역시 실질적인 이득으로 이어져야 한다. 큰 도움이 되지 않더라도 최소한 해를 끼치지는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남을 도와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앞뒤 가리지 않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면 일종의 ‘감정적인 행동’이 될 수 있다. 마음만 급하니 순간적으로 판단력이 흐려진다.
공자는 바로 이 ‘감정적인’ 부분을 민감하게 거론하고 있다. 남을 돕고 용기를 내며 정의를 실현하려는 마음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아무 행동이든 모두 정당화된다고 착각하기 쉽다. 바로 그때 이치를 따져보는 ‘이성적인 배움’의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5.
“미안하구나, 잘못했으면 나 때문에 우리 손주한테 큰일이 생길 뻔했어. 앞으로 새로운 일은 꼭 미리 물어보고 확인할게.”
이 과정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지혜로운 선행’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상대를 도우려는 마음이 들어도 실제로는 수없이 다양한 방법이 있기 마련이다.
어떻게 행동하면 상대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 가장 이로운 결과가 될지 배우려고 애쓰면 좋겠다. 착한 마음은 좋지만 지혜가 없으면 그 마음은 허공 속으로 금방 사라진다.
*3줄 요약
◯선행은 선한 의도 외에 행동의 결과까지 고려해야 완성된다.
◯감정적으로 서두르지 않고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면 지혜로운 선행이 된다.
◯지혜가 없는 착한 마음은 결과에 따라 공허해질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