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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치심은 혼자 힘으로 이겨내기 어렵다>
1.
1954년 6월 7일, 앨런 튜링이 사망했다. 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군 암호 에니그마를 해독해 연합군을 승리로 이끈 천재 수학자였다.
그는 전쟁이 끝난 후 동성애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당시 영국에서 동성애는 범죄였으므로 그는 남은 연구를 위해 감옥 대신 화학적 거세를 선택한다.
하지만 영국 정부나 케임브리지는 계속 그를 싸늘하게 대했다. 결국 2년 뒤 41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한 입 베어 먹은 사과를 옆에 남기고.
2.
비슷한 예가 또 있다. 기원전 99년 한나라의 역사가 사마천이 궁형을 당했다. 흉노족과 싸우다 항복한 이릉 장군을 변호했다는 이유였다.
그는 당시에 사형보다 더 모욕적이라고 여겨진 궁형을 선택한다. 집필 중이던 역사서의 완성을 위한 어쩔 수 없는 결단이었다. 그렇게 <사기>를 완성했다.
궁형 이후 사마천의 삶은 튜링보다 훨씬 안정적이었다. 황제가 뒤늦게나마 이릉장군에 대한 오해를 인정하고 사마천에게도 이전보다 더 높은 황실직위를 하사한다. 황실도서관에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권한을 갖게 되어 집필에도 큰 도움이 되었다.
튜링은 거세를 당한 이후에도 자신을 향한 따가운 시선이 계속되었고, 사마천은 어느 정도 보상까지 받으며 견뎌낼 힘을 얻었다. 이렇듯 두 위인을 둘러싼 주위 상황은 크게 달랐다.
3.
튜링은 그의 천재적인 업적에 대한 찬사를 받기는커녕 사회에서 완벽하게 매장당했다. 정부 프로젝트에서 제외되었고 심지어 해외여행조차 마음대로 갈 수 없게 되었다. 가까이 지내던 지인들조차 하나둘씩 등을 돌리기 시작하자 결국 극단적 선택을 하고 만다.
“아무리 억울해도 끝까지 버텨야 하지 않나요? 남의 시선이 뭐 그리 대단하다고요.”
말은 참 쉽다. 괜히 인간을 사회적 동물이라고 부르겠는가. 아무리 주위 사람들과 연을 끊고 지내는 사람이라도 마음 붙이고 지낼 비빌언덕은 있기 마련이다.
사마천이 궁형을 감수한 용기는 튜링처럼 대단했다. 다만 그는 고난을 겪은 뒤에도 결코 혼자가 아니었다. 관직 외에도 사람들과의 인연이 계속 이어지면서 그는 꿋꿋이 자신의 길을 걸어갈 힘을 얻었다. 수치심은 혼자만의 힘으로 극복하기 어렵다.
4.
그를 둘러싼 주위 사람들이 범죄자로 낙인찍으며 손가락질하느냐 희생자로 간주하며 따뜻한 손길을 보내느냐에 따라 심리상태는 천지차이로 달라진다.
튜링의 사망을 화학적 거세 그 자체에 대한 모욕감이 원인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사회 전체의 냉대와 외면이 그를 죽음으로 몰고 갔다.
세상으로부터 당신은 여기 속할 자격이 없다는 메시지를 들으면 그 어떤 신체적 고통보다 무서운 고립감이 엄습한다.
사마천이 튜링보다 의지가 더 강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에게는 자신의 행동과 정체성을 인정해 주는 최소한의 사회적 연결고리가 남아 있었다. 사마천에게는 살아야 할 이유와 살 수 있도록 뒷받침해 주는 환경이 동시에 존재했던 셈이다.
5.
이 두 사람의 이야기는 우리 주변에서도 일어나고 있을지 모른다. 혹시 당신은 지금 누군가를 너무 쌀쌀맞게 대하고 있지 않은가. 지은 죄에 비해 너무 과할 정도로 차갑게 외면한다면 상대방도 튜링처럼 절망에 빠져들지 모른다.
죄는 미워해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명언에는 이런 의미도 숨어있다. 그 존재에 대한 커넥션까지 잔인하게 끊어버리면 너무 가혹한 형벌이다.
인터넷 악플이 왜 그렇게도 무시무시한 결과를 낳는지 잘 따져보자. 무고한 희생양을 만드는 사회적 낙인이 언제든 당신을 향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
*3줄 요약
◯튜링은 사회의 냉대 속에 죽었고 사마천은 인정과 연결 속에 살아남았다.
◯수치심은 혼자 힘으로 이겨내기 어려우며 주변의 태도가 운명을 결정할 수도 있다.
◯누군가를 차갑게 외면하는 행동은 생각보다 훨씬 잔인한 형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