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3
<손절에도 여러 단계가 있다>
1.
“김대리하고 이대리가 싸웠나요? 조금 서먹해 보이던데요.”
“저는 그런 생각 못해봤어요. 함께 업무도 잘하고 점심도 구내식당에서 다 같이 먹는데요?”
바로 그 상황이 손절이다. 눈치 빠른 사람은 그 미묘한 관계의 변화를 금방 알아차린다.
눈도 마주치지 않고 얼굴도 안 봐야 손절이라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2.
원래 그들은 무척 친했다. 평소에는 업무이야기를 하는 자리에서 근처에 새로 생긴 맛집 이야기도 나누었다. 아침마다 커피 한잔 마시면서 어제의 EPL 축구경기에 대해 이야기꽃을 피우기도 했다.
한 달 전부터 김대리 태도가 싹 달라졌다. 업무 얘기만 간략하게 전달하고 개인적인 이야기는 일절 꺼내지 않는다. 다 같이 움직이는 단체행동에서는 티를 내지 않지만 이대리와 따로 일대일 자리는 절대 만들지 않는다.
이대리는 고민에 빠진다. 내가 김대리에게 무슨 잘못이라도 저질렀나. 술자리에서 말실수하지는 않았나.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다.
“김대리, 나한테 무슨 서운한 일 있었어?”
참다못해 물어보지만 김대리는 속 시원하게 대답하는 대신 자리를 피해버린다.
3.
이런 식으로 인간관계의 등급이 달라지는 현상도 ‘손절’에 속한다. 손절에는 다양한 방법이 있고 이런 방식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핸드폰에서 그 사람 연락처 지운 뒤 차단하고 앞으로 평생 안 보고 살겠다고 결심하면 흔히 말하는 ‘단절형 손절’이다.
그런데 인간관계 중에는 그렇게 칼로 무 자르듯 냉정하게 돌아서기 어려운 관계도 있다. 직장 내의 동료, 가족이나 친척 같은 혈연 등이 대표적이다.
어쩔 수 없이 의례적으로라도 손발을 맞추어야 할 사람들과 단절하기로 결심하면 오히려 더 스트레스를 받는다. 잘못하면 주위 사람들에게 자신의 행동에 대해 일일이 설명하고 동의를 구해야 할 수도 있다.
4.
그렇게 애매한 관계일 때 딱 쓰기 좋은 방법이 바로 ‘단계적인 손절’이다. 공식적인 일정에 대해서는 그대로 유지하되 사적인 교류는 전면 중단한다. 궁금해도 묻지 않고 질문에 대답도 하지 않는다.
가족 내에 빌런이 존재할 경우 설이나 추석 같은 공식행사만 같이 참석하고 그 외에 덜 중요한 일정에는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빠진다. 각자 근황에 대한 정보를 주고받지도 않으며 가족 전체에 해당하는 꼭 필요한 내용에 대해서만 의논한다.
여기서 주의할 점이 있다. 겉보기에 비슷해 보이지만 성격이 전혀 다른 인간관계도 있다. 가깝게 지내다가 거리를 두는 ‘단계적 손절’과 달리, 원래 남이지만 조금 더 신경 쓰는 사이로 관계의 등급을 올려 ‘대접하는’ 경우다. 자주 가는 식당의 주인과 가벼운 농담을 주고받는 관계가 여기 속한다.
이런 경우는 ‘부분적 친분’이라고 한다. 아주 친한 사이까지는 아니지만 남들보다는 좀 더 살갑게 대하고 싶어 하는 마음이다. 서운해할 일이 아니라 오히려 서로 건강하고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중이다.
5.
일단 누군가에게 손절이 발생하면 그 전말을 정확히 알기는 어렵다. 손절한 사람은 이미 마음을 접었으니 구구절절 설명하려 들지 않는다. 행동으로 말할 뿐이다.
손절당한 사람은 아닌 밤중에 홍두깨처럼 느낄 수도 있다. 도리가 없다. 자신의 잘못이 원인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상대가 그런 식으로 인연을 끊겠다면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만일 타인의 어떤 면이 마음에 안 들거나 불만스러울 때 무조건 손절부터 떠올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밑도 끝도 없이 단절하거나 관계를 축소시키기보다 진실의 방에 들어가 잠시 대화를 나누는 과정부터 거치면 어떨까.
*3줄 요약
◯완전히 관계를 끊는 ‘단절형 손절’ 외에 공식적 관계만 유지하는 ‘단계적 손절’도 있다.
◯직장 동료나 가족처럼 완전히 끊기 어려운 관계에서는 단계적 손절이 현실적인 대안이다.
◯손절에 앞서 솔직한 대화부터 시도해 보는 과정이 건강한 관계 유지의 핵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