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4
<쓰레기 치우는 순서도 상사 지시를 따라야 하나요?>
1.
“김대리, 과자를 쏟았으면 먼저 치워야지 왜 내버려 두는 거죠?”
인사팀에서 회의실 다과를 준비하는 중이다. 김대리가 과자통 하나를 건드려 쏟았다. 양손에 테이블마다 올려놓을 음료수를 잔뜩 들고 있으니 마무리한 뒤 치우려고 마음먹었다.
팀장 생각은 달랐다. 쓰레기가 생기면 그 즉시 치우고 다음 일을 해야 한다는 주의다. 누구 말이 맞을까.
2.
이런 일에 옳고 그름이 어디 있는가. 보고서 데이터처리 같은 부분은 팀장의 판단을 우선적으로 고려할 만하지만 과연 쓰레기 치우는 순서까지 상사 지시를 받아야 하나.
김대리가 잔소리를 들을 상황은 딱 두 가지 경우뿐이다. 음료수 세팅을 마친 뒤에도 은근슬쩍 안 치우고 도망쳤을 때, 또는 치운다고 치웠는데도 바닥에 부스러기가 남아있을 때.
김대리 생각대로 하던 일을 마저 끝내고 치우면 훨씬 효율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팀장 생각대로 회의실 바닥에는 잠시라도 쓰레기가 나뒹굴어서는 안 된다고 판단할 수도 있다.
문제는 팀장이 이러한 비공식적인 사안에 대한 결정마저 자신에게 결정권이 있다고 여기는 부분이다. 김대리를 어리숙한 사람 취급하며 자신이 잘못된 행동을 바로 잡아 준다는 듯이 처신했다.
3.
물론 회사는 공식적인 근무를 수행하는 기관이다. 그렇지만 그중 일부는 비공식적 성격에 해당한다. 상사와 부하직원의 구분 없이 자연인으로서 각자의 생각을 이야기할 수 있는 부분이다. 이 같은 일은 가정에서도 똑같이 벌어진다. 아들 자취방에 다니러 온 엄마와의 식사장면.
“밥을 먹었으면 바로바로 씻어놓아야지, 어딜 그냥 들어가려고?”
“그릇 몇 개 씻나 하루치 몰아서 씻나 별 차이 없어요. 나중에 같이 하려고요.”
엄마는 싱크대 안쪽이 항상 텅 비어있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한다. 그릇 한 개라도 남아있으면 할 일을 하지 않고 내버려 둔 기분이 들어 영 불편하다.
아들에게는 설거지의 법칙을 훈계하듯 말했지만 결국 본인 마음 편한 방식대로 아들에게 강요하고 있을 뿐이다.
4.
바로 이 시점에서 분쟁이 시작된다. “엄마 말대로 해. 어딜 말대꾸야.” 아들에 대한 경제권과 부모라는 권위를 등에 업고 엄마가 엉뚱하게 권력을 발동하는 순간 갑질이 시작된다.
지위가 높다는 이유로 부모나 팀장이 이렇게 나오면 아들과 팀원은 절망한다. 존경하는 마음이 싸악 사라지고 이제부터 무기력하게 시키는 대로만 하기로 한다.
이런 상황은 어떻게 풀어가면 좋을까. 일단 지금의 사안은 서로가 대등한 입장이라는 사실부터 인정해야 소통이 시작된다.
“김대리, 아까 바닥에 과자 쏟았는데 혹시 못 봤어요?”
“알고 있습니다. 음료수 마저 세팅하고 치우려던 참이에요.”
“아, 그렇군요. 혹시 못 봤나 해서요. 수고 좀 해주세요.”
“아들, 네 자취방이니까 네가 알아서 할 일이기는 한데. 설거지를 늦게 하면 밥풀이 잘 안 씻겨.”
“걱정 마세요, 설거지는 몰아서 하지만 빈 그릇에 물은 채워 놓거든요.”
5.
이런 대화가 오갈 수밖에 없는 더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
평소 팀장은 김대리가 영 미덥지 못하다. 엄마 눈에는 늘 아들이 철딱서니 없어 보인다. 그 와중에 오늘의 그 행동이 딱 걸린 상황이다.
팀장도 엄마도 일단은 상대가 자신의 일을 제대로 처리할 것이라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나중에 완전하지 못한 부분이 눈에 띄면 그때 개입해도 늦지 않다. 사소한 일까지 간섭하려 들면 서로 간의 신뢰까지 무너져 내린다.
*3줄 요약
◯공식적인 업무가 아닌 사소한 일 처리는 개인의 재량을 존중해야 한다.
◯지위를 앞세워 사소한 부분까지 간섭하려 들면 신뢰가 무너진다.
◯간단한 일은 일단 상대의 판단을 믿어주고 문제가 생길 때 개입해도 늦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