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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의 말은 귀로 듣지만 뇌가 걸러낸다>
1.
“선생님, 방금 사과라고 하셨는데요?”
“네? 제가 언제요. 저는 분명히 딸기라고 했거든요.”
과일가게에서 손님과 점원 사이에 가벼운 실랑이가 벌어진다. 사과와 딸기는 발음이 비슷하지도 않다. 듣는 사람이 비슷한 발음을 착각했다고 보기에도 무리가 있다. 할 수 없이 CCTV를 돌린다.
“어? 정말로 제가 사과라고 했군요. 영상을 봐도 도저히 못 믿겠어요.”
녹화영상이 없었으면 꼼짝없이 생사람 잡을 뻔했다.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다.
2.
이런 현상은 자신이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더 자주 발생한다.
스탠퍼드의 심리학자 리 로스는 이렇게 설명한다.
“지적으로 뛰어난 사람들은 자신이 세상을 매우 객관적으로 보고 있다고 믿어요. 방해받지 않는 조용한 환경일수록 자신의 인지에 대한 확신이 더 강해집니다.”
대화 패턴에 대해 실험한 결과는 더 충격적이다. 상대방의 말 중 평소 자신의 생각과 다르거나 상충하는 내용이 들어 있으면 절반도 기억하지 못했다. 심지어 아예 듣지도 못했다는 반응까지 보였다.
이쯤 되면 심각한 고민에 빠진다. 사람은 소통할 때 과연 귀로 소리를 듣는가, 아니면 뇌에서 걸러낸 일부 정보들에 대해서만 들었다는 기억을 만들어내는 걸까.
3.
이런 일은 유독 머리가 좋은 사람들에게 더 자주 일어난다. 그들은 상황에 대한 이해와 추론능력이 뛰어나다. 바로 그 능력이 정확한 소통의 발목을 잡는다.
김대리가 손가락에 피가 흐르는 채로 말을 건넨다. 이대리는 듣자마자 바로 대꾸한다. “네, 저한테 밴드하고 연고 있어요. 여기 드릴게요.”
“밴드라뇨? 오후 미팅시간이 몇 시냐고 여쭤봤는데요?”
딱 이런 상황이다.
눈앞의 광경을 재빨리 파악하고 분석한 뒤 상대방이 말을 꺼내기도 전에 이미 들어야 할 내용을 전부 접수해 버렸다. 거의 환청이 들리는 수준이다. 실제 상대의 말은 거의 듣지도 않았다.
4.
과일가게로 다시 돌아가 보자. 가족끼리 과일을 고르던 중 딸이 쇼츠 영상을 하나 보여준다. 사과를 이용한 마술쇼다. 재미있다며 깔깔거리며 웃었다. “사과를 저렇게 써먹다니 재미있네.”하는 대화까지 나누었다.
곧이어 점원과의 대화가 이어진다. “사과 한팩만 주세요.” 딸기를 쳐다보며 너무도 태연하게 말했지만 일처리가 확실한 점원이 재차 확인을 한 상황이었다.
당신의 귀를 너무 믿지 말라. 또한 당신이 한 말에 대한 기억도 언제든 틀릴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라.
지금 방금 3초 전 듣고 말한 내용의 정확도가 이 정도다. 혹시 당신은 남과 말다툼할 때 3주 전, 5개월 전, 16년 전 기억이 맞다며 우긴 적은 없는가.
5.
아무 선입견이나 고정관념 없이 상대를 대하는 태도가 핵심이다. 들리는 대로 듣고 말하고 싶은 대로 투명하게 말해야 소통이 잘 된다.
듣는 말은 머릿속에서 이리저리 재해석하여 받아들이고, 하는 말은 예쁘고 멋지게 포장하여 내뱉으려 하다 보니 오차가 생긴다.
평소 사소한 대화를 나눌 때라도 늘 피드백하는 습관을 가지면 좋다. 지금까지 들은 내용을 나만의 언어로 요약해서 확인하는 방법도 훌륭하다. “마트 가서 우유 2팩, 문방구 가서 딱풀 1개, 오는 길에 떡볶이 하고 순대까지. 맞아?”
*3줄 요약
◯자기 생각과 다른 말은 뇌가 자동으로 걸러내므로 들어도 들리지 않는다.
◯상황을 빠르게 파악하는 능력이 오히려 실제 대화에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선입견 없이 듣고 수시로 확인하는 습관을 가져야 소통이 정확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