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7 <코끼리를 만진 맹인은 그 크기를 알고~

by 호르몬닥터 권영구

@1517

<코끼리를 만진 맹인은 그 크기를 알고 있었을까>

1.

“코끼리는 기둥처럼 생겼군요.”

“무슨 말씀을. 코끼리는 뱀모양인데요.”


맹인 여러 명이 코끼리를 만지는 우화는 너무도 유명하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과연 그들이 코끼리의 사이즈는 제대로 알고 있었을까.


2.

앞이 보이지 않더라도 미리 ‘코끼리는 집채만 하다’는 설명을 들었다면 결과는 달라졌을 수 있다.


그랬다면 맹인들은 자신의 손에 잡힌 부분만으로 가볍게 판단하는 대신, 전체 크기를 가늠하며 주변까지 더듬어 보았을 것이다.


만약 코를 만지는 맹인에게 “코끼리는 당신이 만지고 있는 그 모양보다 100배는 더 큽니다.”라는 정보를 주기만 했어도 그는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여러 가지 시도를 해보지 않았을까.


물론 그 말을 듣고도 바뀌지 않는 사람이 있다. “칫, 그럴 리 없어. 그렇게 커다란 생명체가 존재할 리가 없잖아.”


3.

그 태도의 차이가 오만과 겸손을 가른다. 제약이 있다는 사실은 같지만 누구는 자신이 감지하는 영역이 크나큰 세상 중 극히 일부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겸허한 자세를 보인다.


반면 오만한 사람은 자신이 직접 경험한 세상만이 전부라는 생각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남들이 무슨 말을 해주든 상관없이 그는 자기 앞에 서 있는 거대한 코끼리의 크기를 상상조차 하려 들지 않는다.


“이 내용은 이렇게 해석해야 합니다. 여러 가지 이론을 모두 적용할 때 이 방식이 가장 옳습니다.”

“김대리, 자네가 아직 모르는 내용도 있을 수 있지 않을까요?”


팀장이 도와주려고 손을 내밀어도 오만한 사람은 자신의 생각을 바꾸려 하지 않는다. 그는 세상을 아기 코끼리처럼 작게 여긴다. 자신의 지식과 경험만으로 모든 이치를 깨달았다고 착각한다.


4.

“저는 A라는 분야의 A-1 경우에 대해서 A-1-a에 해당하는 데이터를 연구하고 있어요.”

“너무 작은 분야 아닌가요?”

“과학이라는 바다에 제가 이 정도 공헌이라도 할 수 있다는 점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진짜 전문가들은 어떨까. 과학자들은 함부로 거만한 웃음을 짓지 않는다. 자신이 알고 있는 그 좁은 분야에 대해서만 안다고 말한다. 심지어 그 내용마저도 새로운 사실이 발견되면 언제든 무너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자신 앞에 서 있는 코끼리의 위용을 잘 안다. 사람들은 자신 있게 명쾌한 발언을 하는 사람에게 빠져들기 쉽지만 대단한 사람일수록 말을 아끼고 여지를 남긴다.


이런 태도는 ‘겸손’과 조금 다르다. 많이 알지만 뽐내지 않겠다며 자신을 억지로 낮추는 모습이 아니다. 정말 자신이 아는 내용이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너무 잘 알고 있을 뿐이다. 메타인지가 뛰어난 덕분이다.


5.

“열심히 노력해서 많이 아는 사람이나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나 겉보기에는 똑같겠네요?”


이런 생각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오해는 하지 말자. 겸손하라는 말이 자신감까지 모두 버리라는 말은 아니다.


자신이 실력을 갈고닦은 내용에 대해서는 얼마든지 당당해도 된다. 다만 그 경계를 넘어설 때만큼은 조심스러운 태도를 가지면 좋겠다.


*3줄 요약

◯우리는 모두 맹인처럼 코끼리의 일부만 만지지만 그 한계를 잘 인정하지 않는다.

◯진짜 전문가는 자신이 아는 내용이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너무도 잘 안다.

◯잘 아는 지식에 대해서는 당당해도 되지만 그 경계에서는 조심스러운 태도를 가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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