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45 <무시당하고는 절대 못 사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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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시당하고는 절대 못 사는 사람들>


1

“제가 조용히 해달라고 분명히 말씀드렸잖아요. 한 번 해보자는 거예요?”


이웃끼리 층간소음 문제로 계속 티격태격하는 중이다.

윗집에서는 미안한 마음에 나름 최선을 다했다. 그런데도 아랫집 사람이 도가 지나칠 정도로 소리를 질러대니 은근히 기분 나빠지려고 한다.


2.

“보시다시피 바닥에 매트 깔고 가족 모두 실내화를 신고 다녀요. 그런데도 소리가 시끄럽게 들리세요?”

“소리가 문제가 아니에요. 제가 정당한 말을 했는데도 성의 없게 들으셨잖아요.”


이건 또 무슨 말인가. 이제 시끄럽지는 않지만 기분이 나빠서 참을 수가 없다는 말처럼 들린다.


한마디로 아랫집 사람은 지금 소음문제 자체에는 큰 관심이 없다. 대화 중 무시당했다고 느낀 감정에 발끈하고 있다.


남이 자신의 가치를 몰라주거나 함부로 대한다는 생각이 들면 절대 못 참는 경우다. 소음 문제의 해결보다 자존심이 상한 부분에 대해 따지고 싶은 마음이 먼저가 되었다.


3.

나도 비슷한 상황에 처할 때가 있다. 지금은 한약을 쓸 상황이 아니라고 판단되면 환자분께 자세히 설명드리고 대학병원 무슨 과에 가서 어떻게 진료받으시라고 알려 드린다.


진료실을 나서며 보호자와 나누시는 대화소리가 들린다.

“다른 한의원에 가보자.”


고구마 백 개 먹은 기분이다. 머리 쪽으로 열이 오르기도 한다. 답답함은 환자분을 걱정하는 마음이었겠지만 욱하는 감정은 내 말이 무시당했다고 느껴서다.


“아, 그러시면 안 됩니다. 다시 좀 앉아보세요.”

진료 초보시절에는 환자분에게 두 번 세 번 다시 알려드리고 당부까지 했다. 아쉽지만 이제는 그렇게까지 하지는 않는다. 몇 번의 안 좋은 경험을 한 이후로는 내가 해야 할 바를 다 했다 싶으면 나머지 선택은 환자의 몫으로 남긴다. 슬프다.


4.

“김대리, 가벼운 접촉사고인데 무슨 소송까지 하려고 그래요?”

“아니, 상대방이 너무 괘씸하잖아요. 잘못했으면서 사과도 안 하고요. 저런 사람은 본때를 보여줘야 해요.”

자신의 이익과 관계없더라도 온갖 법적, 행정적 방법을 총동원하여 끝을 보려는 사람이 있다. 사회정의를 구현하기 위한 정당한 행동이라고 말한다.


실은 무시당한 기분에 분개하여 상대를 응징하는 중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어떻게든 상대방을 무릎 꿇게 만들어야 직성이 풀린다.


이런 상황에서는 아무리 많은 돈을 낸다고 해도 합의가 쉽지 않다. 납작 엎드려서 잘못했다고 싹싹 빌어야만 마음이 겨우 풀린다.


5.

“무시당하고 기분 좋은 사람이 어디 있어요. 화 좀 낼 수도 있지 않나요?”


맞는 말이다. 문제는 그 분노를 정의감으로 포장하면서 자기 자신도 속이는 상황이다. ‘나는 옳아. 지금 정당하게 권리주장하는 중일뿐이야.‘ 그렇게 믿어 버린다.


혹시 남과 트러블이 생길 때마다 법조문이나 회사규칙을 거론하지는 않는가. 그 횟수가 잦으면 한 번쯤 진지하게 자신을 돌아보자. 지금 나는 옳고 그름을 따지고 있는가, 아니면 무시당한 기분에 감정적으로 반응하고 있는가.


*3줄 요약

◯불편 그 자체보다 ‘무시당한 기분’이 더 큰 분노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분노가 정의감으로 포장되어 버리면 스스로도 구분하기 어렵다.

◯규칙과 법을 자주 거론한다면 분노에 반응하고 있지 않은지 스스로를 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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