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46
<불가능과 불편이 부딪칠 때 기준은 어디에 맞춰야 할까>
1.
“너무 작아서 손이 안 들어가네요.”
주방에 설거지할 때 쓰는 고무장갑이 놓여 있다. 근무하는 사람이 여럿이다 보니 손 크기도 제각각이다.
사이즈 별로 갖추기 어렵다면 기준이 필요하다. 어디에 맞추면 좋을까.
2.
해결책은 매우 간단하다. 사이즈가 작으면 손 큰 사람이 아예 쓸 수 없지만, 사이즈가 클 경우 손 작은 사람도 사용은 가능하다.
한 마디로 ‘불가능’과 ‘불편’ 중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가의 문제로 정리된다. 불가능의 옵션을 강요받는 사람은 선택의 여지도 없이 탈락된다. 그나마 불편한 쪽은 의지에 따라 극복할 여지가 있다.
우리는 평균이 가장 공평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않을 때가 많다. 평균을 기준으로 나머지 사람들이 골고루 ‘불편’을 겪는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만일 어느 극단에 속한 사람의 ‘불가능’이 발생한다면 이 기준은 다수의 횡포가 되어 버린다.
불편은 정도에 따라 타협의 여지가 있지만 불가능은 그 자체로 희생을 강요하는 셈이다. 기준은 전부 함께 갈 수 있어야 그 존재의의가 있다.
3.
“다수결이 중요하지 않나요? 대부분 이 기준이 편한데 몇몇 사람 때문에 구태여 바꿔야 할까요?”
우리는 별 고민 없이 다수와 평균을 근거로 기준을 정하는 데 익숙해져 있다. 가장 민주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방식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만일 당신이 그 기준 속에서 ‘불가능’에 속한다고 가정해 보라. 어디 하소연할 곳도 없고 혼자 벙어리 냉가슴만 끙끙 앓는다.
디저트 메뉴를 정할 때 사람마다 취향은 제각각일 수 있지만, 누군가 견과류 알레르기가 있는데 구태여 강정을 고집할 이유가 있을까. 다른 사람에게는 기호의 문제이지만 그에게는 생사가 걸린 일이다.
4.
“찬바람만 쐬면 바로 비염이 심해져요.”
그런 환자분이 있다. 차가운 공기에 노출되면 비염이 심해지고 어느새 축농증까지 진행되는 체질이다. 환절기마다 치료받으러 다니신다.
“사무실에 더위를 많이 타는 남성분이 몇 명 계시는데요, 4월부터 에어컨을 세게 틀기 시작하시니 방법이 없어요.”
조금 더운 느낌은 누군가에게 ‘불편’이지만 건강에 치명적인 사람에게 찬바람은 그 환경에서 지내기 ‘불가능’한 요소다.
5.
“그럼 그 몇 명 배려하자고 나머지 많은 사람이 불편해야 하나요?”
맞다, 그래야 한다. 어떤 기준이든 모두를 완벽하게 만족시킬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일부에게 일방적인 피해를 강요한다면 너무 폭력적인 행동이다.
지금은 당신에게 다수와 평균의 기준이 유리할지 모르지만 어느 날 당신도 반드시 ‘불가능’한 입장에 처할 때가 온다. 방심하지 말라.
*3줄 요약
◯기준을 정할 때 ‘불편’은 극복의 여지가 있지만 ‘불가능’은 일부에게 희생을 강요한다.
◯다수와 평균이 가장 공평하다는 믿음은 때로 폭력이 되기도 한다.
◯지금 다수의 편에 있더라도 언젠가 당신 역시 소수의 자리에 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