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금요일 미사 후에 가진 소견
어젯밤 성 금요일 미사 후 느낀 것이 있다.
영성체 후 특송으로 디렉터는 아리아에 버금가는 프랑스 가곡을 나에게 주었는데 중요한 건 반주악기가 바이올린 두 개, 비올라 하나, 첼로 하나로만 구성이 되어 있어 화성을 채워주고 가장 중요한, 템포를 이끌어가는 악기가 없었다.
리허설이 시작되었고 다행히 디렉터가 지휘를 해주었지만 그는 이 곡이 익숙하지 않은 듯 악기 연주자들의 템포에 무한히 맞춰주는 듯했고 그리하여 나는 나대로 힘이 들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디렉터가 리허설을 끝까지 마치지 않고 '이 정도면 괜찮다'며 중간에 멈추는 것 아닌가?
나로서는 예전에 피아노 반주로 몇 번 연주를 했던 경험이 있어서 내가 이끌고 가면 되겠지... 생각하고 그의 의견에 수긍했고 그렇게 모든 미사 전 리허설이 마무리가 되었다.
그러나 그것이 안일한 생각이었다.
마지막 페이지, 그러니까 클라이맥스 고음 부분이 끝나고 악기가 세 박을 먼저 나와주어야 내가 들어오는 부분이 있었는데 리허설 때 그 부분을 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그만 악기와 성악이 맞지 않는 불상사가 생겼다.
나는 나대로 당연히 편성에서 빠진 악기가 나와주는 부분일 거라고 판단했고, 지휘자 또한 (그가 이 곡을 잘 모른다고 추측한 이유) 나의 고음이 끝나고 나에게 바로 나오라는 사인을 주는 것 아닌가?
그러나 그의 사인과 더불어 그제야 악기들은 먼저 나와야 하는 음들을 연주했고, 따라서 내가 노래함으로 인해 나는 몇 박자 일찍 나오게 되어 화음이 이상해지고 말았다.
찰나에 든 생각은, 내가 그들보다 먼저 나오게 된 만큼 그만큼의 박을 더 끌어야 그들과 함께 잘 마칠 수 있겠다는 생각이었다. 내 숨을 믿고 가보자.
다행히 한숨에, 단어 중간에 숨을 쉬지 않고 무사히 곡을 마칠 수 있었지만 곡이 끝나고 진이 빠져버렸다.
(내 숨은 길지 않은 편이다. 그러나 숨은 정신력 싸움이기도 하다. 할 수 있다면 할 수 있고, 숨이 짧을 것 같다 생각하면 정말 안되기도 하는 것이 숨인 것 같다.)
아무튼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나에게 디렉터에게 무조건적으로 수긍하는 경향이 있다는 걸 알아차린 경험이었다는 것이다.
리허설할 때에도 템포가 내가 원하는 만큼 당겨지지 않았는데 나는 그에게 템포를 다시 맞춰봤으면 좋겠다라던가 등 추가적은 요구를 하지 않았다.
이것이 연주홀에서의 연주가 아닌 이유가 첫째, 둘째로는 내가 이끌어가면 되겠지 라는 생각 때문이었던 것 같다.
또, 무례하지 않게, 나이스하게 요청하는 것을 영어로 해야 하니 때때로 귀차니즘인지 울렁증이 작용하여, 그냥 조용히- 넘어가는 나의 습성도 원인이었으리라.
아무튼 실전에서 나는 디렉터에게 조금 템포를 당겨달라는 식으로 해드뱅잉을 하며 온갖 애를 썼음에도 그들은 따라오지 않았고 나는 결국 내가 맞춰주는 쪽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무척 노래하기 어려웠다.
함께 음악을 만들어나가는 데에 있어서 디렉터 의견에 동의해야 하는 부분도 있지만 그것이 내가 연주하는 걸 방해하거나 부담을 주는 점이라면 그것이 작은 미사든, 큰 연주든 짚고 넘어가는 습관을 길러야겠다.
그와 내가 다른 의견일 경우, 모두 힘들지 않은 최상의 연주를 위해 조율해 나갈 수 있는 것이 프로페셔널다운 모습이리라.
이런 일이 일어난 데에는 언급하지 않은 작은 이유들도 분명 있을 터이다. 가령, 윗사람에게 무조건적으로 수긍해야 했던 한국에서의 수직관계도 아예 영향이 없었다고는 못하겠다.
그러나 앞으로는 스스로를 위해서라도 조금은 능동적으로, 내가 원하는 것은 분명히 말할 수 있는 자신감과 당당함을 키우면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