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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하는 프리랜서 May 17. 2021

#11. 자라온 환경이 직업에 미치는 영향

나는 모험을 좋아하지 않았다.

인생에서 리스크가 큰 일을 시도해볼 일이 몇 번이나 있을까?


나는 어릴때부터 의심이 많고 모험을 즐기는 성격 또한 아니었다.

당연히 주식투자도 해본 적이 없고 즉흥적인 일 또한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글을 쓰는 현재는 주식과 코인에 손을 대고있다....네.. 저도 물렸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계획적인 삶을 살게 되었고 성격도 그렇게 정형화되어 갔다.


왜 이런 성격이 된 걸까?


과거를 돌이켜보면 IMF 시절 집이 망하고 13살쯤 되던 해부터 잠시 부모님과 떨어져 살기도 하는 등

그 당시 가정형편이 어려웠던 집안의 아이들이 그러했듯 종종 등록금을 내지 못해 교무실에 불려 가기 일쑤였던 학창 시절을 보냈다

그러다 보니 어릴 때부터 물질적인 무엇인가를 가지기 위해서는 남들보다 두 배, 세 배 더 노력이 필요했고 가진 걸 빼앗기지 않기 위해 노력하며 살아왔다.


공평하지 못한 것에 대해 쉽게 불만을 표출했고, 내 것을 빼앗기지 않으려 하면서도 내가 친하게 지내는 사람들에게는 그 반대 성향인 허세를 부리기도 했다.


예를 들면 고등학교 때부터 알바를 시작하면서 그 당시 용돈 받는 아이들보다 달마다 더 큰 돈을 벌었다.

번 돈으로 친구들에게 맛있는 걸 사주거나 가지고 싶은 물건을 산다던지 돈을 모으기보다는 허세를 부리며 순간의 즐거움에 소비를 하는 습관이 길러졌다.


항상 남들만큼은, 아니 남들 이상 하고 싶었던 것 같다.


초등학교 시절 삐삐가 유행하고, 중학교 시절 핸드폰이 대중화되었지만 집이 망한 이후로 그 무엇 하나도 가질 수 없었다.

(물론 그 당시 대중화되었다고는 해도 학생이 쉽게 가질 수 없는 물건들이기도 했다)

그러던 내가 고등학교 시절 롯데리아 아르바이트를 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스스로 번 돈으로 핸드폰이며 mp3며 가지고 싶었던 것들을 하나둘씩 사기 시작했던 것이다.

(아직도 기억난다. KTF Ever 30만 화소쯤 되는 카메라폰이었다)

그때부터 36살이 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빼지 않고 스스로 벌어 핸드폰비를 내왔다.

스스로 대견하고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집안형편이 어려워지기 시작한 순간부터 나는 이 상황을 바꾸기보다 어떻게든 살아보기 위해 악착같이 노력했다.

등록금을 내지 않아서 불려 갈 때면 항상 친구 어느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게 조심스럽게 다녔고 집에 빨간딱지가 붙어 친구들이 놀러 오겠다고 할 때도 온갖 핑계를 대가며 못 오게 막았다.


어차피 벌어진 일.

가만히 앉아서 슬퍼하면 뭐하겠는가?


갑자기 복권에 당첨되거나 반대로 이 상황을 피해 죽을 용기가 없다면 어떻게든 살아가야 했으니 기왕 살 거 아무리 힘든 상황이라도 그 상황 안에서 즐거울 수 있고 행복할 수 있는 일을 찾았던 것 같다.


그 방법 중 나에게 있어 가장 최고는 돈을 버는 것이었다.


그러다 보니 일찍부터 알바를 통해 사회생활을 시작했고 현재 나이 36살에 17살부터 돈을 벌기 시작했으니 이제는 내 삶의 절반 이상을 경제활동을 하며 살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왜 모은 돈이 없는지는 앞에서 충분히 설명했다고 생각된다. 쓰고 보니 자아성찰이 되는 기분이다)


이게 과연 일과 어떤 상관이 있을까?


브런치에 글을 연재하면서 한 번 생각해보았다.

나 조차도 내가 영상업계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었는지 요즘 들어 한 번씩 그 이유를 생각해보고 있다.

처음에는 그냥 무조건 앞만 보고 달려왔기 때문에 이런 생각을 할 겨를도 이유도 없었지만 이제야 삶에 조금 여유가 생기고 보니 지난날을 돌아보게 되는 시간을 자연스럽게 종종 가지게 된다.


아무 경력도, 인맥도 없이 프리랜서로 7년이라는 시간을 버텨온 이유에 당연히 성격도 작용했으리라 생각한다.


돌다리도 열 번 이상 두드려보는 성격.



첫 번째, 계약서 작성은 필수로 한다.


영상 바닥이 참 더러운 경우도 많아서 돈을 떼이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하지만 나는 여태껏 단 한 번도 돈을 떼여본 적이 없다.

( 아.. 한 가지 사건이 있긴 한데 이건 다음 에피소드로 풀어보겠다)

프로젝트 시작하기 전 계약서 작성.

참 이 기본적인 것을 귀찮다거나 클라이언트의 압력(?)으로 인해 빼먹고 가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다. 나 조차도 일하다 보면 계약서는 생략하자고 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만일 이 클라이언트와의 프로젝트가 첫 번째라면 계약서는 무조건 작성한다. 두 번째, 세 번째 같이 일을 해도 가능하면 하려고 하지만 너무 꼿꼿하면 부러진다는 말처럼 상대방이 생략하기를 원할 경우 그때는 약간의 유연함을 가지고 그냥 믿고 생략하는 경우도 가끔 생긴다.


사실 상대방이 돈을 주지 않기로 마음먹었다면 계약서는 있으나 없으나 그다지 소용이 없기도 하다. 소송만 해도 몇 달이 걸리고 그동안 생기는 정신적인 피해 및 시간과 비용을 생각하면 포기하는 게 더 나은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건 내가 몇 천, 몇 억짜리 프로젝트를 하는 게 아니다 보니 기회비용을 생각했을 때 당연한 선택일 것이다.


하. 지. 만 계약서가 실질적인 도움은 못 주더라도 심리적인 효과만 따져봐도 쓸 이유가 충분하다. 물론 현실적인 도움도 언젠가는 줄 수 있지만 뭐 앞서 이야기했듯이... 소송까지 가면 안 하느니만 못하다. (작은 프로젝트 기준)

그런데 계약서를 쓰는 순간 서로가 이 프로젝트에 대한 책임감의 무게도 어느 정도 달라지고 계약서 자체가 주는 압박감이 은근히 존재하기 때문에 계약서 작성은 무조건 필수라고 말하고 싶다.


두 번째, 가능한 많은 부분을 사전에 협의하고 질문한다.


프로젝트 진행하면서 제일 황당했던 사건 중 하나.

사전에 협의했던 금액이 나는 당연히 부가세 별도라고 생각했고, 클라이언트 측은 포함으로 생각해서 결국 부가세만큼을 깎여서 잔금을 지급받은 적이 있다.

부가세는 어차피 국가에 다시 환급해야 하는 돈이다.

당연히 내 돈이 아니기 때문에 돈을 받는 입장에서는 빼고 생각하는 일이 더 자연스럽고 클라이언트 입장에서는 어쨌든 당장은 돈이 나가는 일이니 포함해서 생각하는 경우가 많아서 생기는 일이다.

그러다 보니 무조건 이 부분은 견적서든 구두상으로든 이 견적은 부가세 별도라는 걸 짚고 넘어가야 한다. 그게 아니라면 본인도 평소에 부가세를 포함해서 견적을 내는 걸 당연시하게 생각하는 수밖에 없다.


그밖에도 추후 다른 언어 버전으로도 제작 가능성이 있는지, 피드백은 바로바로 줄 수 있는지, 영상의 톤 앤 매너, 마감 기한, 이 영상의 핵심 포인트는 무엇이며 어디에 쓰일 것인지 등 확인해야 할 부분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한글로 했다가 영어 버전을 만든다고 하면 알다시피 한영의 문장 구조는 반대로 되어있다. 장면과 장면이 세세하게 쪼개져있는 모션그래픽의 특성상 이 부분을 미리 염두에 두고 제작하지 않는다면 나중에 꽤나 골치가 아파진다)


나중에 수고스럽게 장면을 걷어내고 새로운 장면을 채우거나 늦은 피드백으로 인해 안 그래도 짧은 제작기간이 더 짧아지는 경우를 만들고 싶지 않다면 이 모든 것들을 무조건 사전에 협의하고 프로젝트에 들어가야 조금이나마 편할 것이다.


세 번째, 가끔은 포기도 필요하다.


이 프로젝트 하나를 하면 얼마, 이걸 하면 얼마, 일을 많이 한다고 해서 돈을 더 받을 수 없는 월급쟁이가 아니다 프리랜서는.

당연히 한 만큼 수익은 나에게 돌아오기 때문에 일을 하다 보면 욕심이 생기기도 하고 들어온 프로젝트를 포기하는 게 자연스레 금액으로 계산이 되기 때문에 쉽게 포기할 수가 없다. 하지만 몇 년 이상 일을 하다 보면 이제는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아.. 이 프로젝트를 하면 내가 힘들겠구나.. 그런 것들은 포기해야 정신건강에 좋을 것이다. 경험이 쌓이면 이미 초반에 어느 정도 힌트와 복선이 깔려있었다는 걸 알 수 있다.

그 당시에는 돈에 눈이 멀어 몰랐을 뿐.


물론 그 덕에 큰 프로젝트를 놓치는 경우도 있었다.


어느날 ibk기업은행의 프로젝트를 진행중에 nc소프트에서 프로젝트의뢰가 왔다.

회사의 네임밸류를 생각하면 너무나 하고 싶었지만 부득이하게 거절할 수 밖에 없었다.

나는 몸이 하나인데다 그렇다고 이 죽일놈의 성격 덕분에 남에게 쉽사리 일을 맡기지도 못한다.

만일 혼자서 두 가지를 동시에 다 하려고 했다면 아무래도 두 가지 다 결과물이 만족스럽게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아쉽지만 nc소프트는 떠나보내고 다행스럽게도 기업은행에서 작업했던 영상은 결과물도 스스로 만족스럽게 잘 나온 것 같고 회사 내부에서의 반응도 꽤 괜찮았다.

https://youtu.be/pUEMHCUCkIE

ibk 기업은행 BOX 플랫폼 소개영상



그런데 이 성격이 30대 초반이 넘어가면서 조금은 바뀌기는 했다. 당장 몇 년 전에 몇달간 터키와 인도로 배낭여행을 다녀온것만 보면..



리스크가 큰 일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말은 반대로 말하면 아주 꼼꼼하고 계획적으로 움직인다는 이야기다.


어떤 일을 벌이더라도 항상 대안을 생각해놓고 일을 벌였다. 그게 프리랜서 생활을 하는데에 있어서 생각보다 꽤 큰 장점으로 다가오게 되었다.

클라이언트에게 시안을 보내더라도 매번 한 개가 아닌 두 가지, 세 가지를 보내서 선택을 할 수 있게 하거나 혹시나 마음에 안 들까 봐 다른 레퍼런스를 미리 찾아 까일 경우를 대비해 놓는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수정이 줄어들었다.


사람과 사람이 하는 일이 서로가 100% 이해하고 서로를 만족시킬 수 없는 건 당연한 일이다.

다만 그 사람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최대한 많이 질문하고 많은 것들을 제안한다면 초반에는 비록 좀 수고스러울지라도 프로젝트 막바지로 갈수록 점점 더 수월하고 깔끔하게 일을 마무리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물론 완벽한 결과물은 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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