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여행하는 프리랜서 Jul 27. 2020

#9. 우연히 사업자를 내다

그렇게 나는 오늘도 열심히 살기로 했다.

2015년 01월.


연이은 스케줄로 한창 바쁘게 일하고 있을 때였다.

당시 진행하고 있던 프로젝트만 4개. 그중에서 마켓을 통해 연결된 다우오피스와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하루는 미팅을 하고 있었는데 상대측에서 이런 제안을 해왔다.


“피디님 마켓에서 수수료 얼마나 떼 가요?”

“글쎄요..... 100프로 정확하지는 않지만 들리는 얘기로는 30% 혹은 그 이상으로 알고 있어요.”

“그 정도면 사업자를 내서 직접 일을 받으시는 편이 낫지 않아요?”

“제가 아직 시작한 지도 얼마 안 됐고 거기까지는 생각해본 적이 없어서요”

“저희 앞으로도 프로젝트를 더 진행할 게 있는데 아무래도 직접 계약으로 하면 좋지 않을까 해서요. 한 번 생각해보세요”

“ 네 저도 진지하게 한 번  고민해볼게요”


그렇게 다우오피스와 일은 일단 마켓을 통해 진행했다.


당장 사업자를 낼 생각도 없었고 그때까지만 해도 회사에 취직하는 것에 대해 아예 마음을 접은 상태는 아니었기 때문에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그렇게 사업자에 대한 생각은 일단 접어두고 폭풍 같았던 여러 개의 프로젝트가 끝나가는 2월초쯤 됐을 때였다. 어느 정도 바쁜 시기가 끝나고 그 날도 카페에서 프로젝트 마무리를 하고 있을 때 같은 대학을 다녔던 대학 동기 형에게 전화가 왔다.


그 형은 나보다 훨씬 먼저 애니메이션 업계에 자리를 잡아 직접 회사를 운영하고 있었다. (아 대학중퇴긴 하지만 과는 당시에 만화과였다.) 나는 같은 동기들에 비해 취업이 상당히 늦은 편이었는데 그 이유는 따로 에피소드로 풀어보려고 한다.

어쨌든 그 형이 운영하던 회사에서 그 당시 문화체육관광부의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었는데 문화부에서 따로 모션그래픽 영상을 제작해야 한다면서 할 수 있는 사람을 소개해달라고 형한테 부탁을 했다.

마침 내가 프리랜서로 일을 하고 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나에게 연락이 왔고 그렇게 처음으로 관공서의 일을 하게 될 기회가 찾아왔다.


당시 전화와 메일로 커뮤니케이션을 진행했었는데 다음은 첫 통화 시 내가 받았던 질문이다.


“피디님 사업자는 당연히 있으시죠?”

“네? 아뇨.. 저 사업자가 아직 없는데.. 그럼 일 맡기기 어려우실까요?”

“아.. 네, 당연히 사업자 있으신 줄 알았는데 사업자 없으면 조금 곤란하거든요. 내는 건 그리 어렵지 않으니 이참에 사업자를 내시는 게 어떠세요?”

“음... 알겠습니다! 한번 알아볼게요!”


다우오피스 때도 제안이 있었지만 이번에는 직접적으로 계약에 사업자가 필요하다고 하니 결국 등 떠밀리듯 급하게 사업자를 내게 되었다.

생각보다 사업자등록은 어렵지 않았다. 일단 그냥 주거지를 사업장으로 등록해도 되기 때문에 세무서로 가서 바로 신청하고 며칠 만에 금방 사업자등록을 마쳤다.


그렇게 2015년 2월, 나에게 첫 사업자등록증이 발급되었다.


이제부터는 마켓을 통하지 않고 계약을 할 수도, 클라이언트 측에 세금계산서를 발행해 줄 수도 있었다.

이 별거 아닌 종이문서 하나에 내 이름 석자가 대표자로 이름을 올리게 되는 순간 은근한 기분 좋음도 선사했다.


물론 대표자 및 직원 전부 본인 혼자이지만....


어쨌든 사업자등록을 마치고 난 후 문화부의 일을 받아서 순조롭게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었고 그 이후 다우오피스와도 더 이상 마켓을 통하지 않고 직접 수의계약을 진행할 수 있게 되었다..


수의계약이란 경쟁계약에 의하지 않고 임의로 상대를 선정하여 계약을 체결하는 것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수의계약 [隨意] (예스폼 서식 사전, 2013.)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사업자가 있고 없고의 차이는 단순히 세금계산서를 발행할 수 있고 없고의 차이 그 이상이었다. 일단 사업자가 생기는 순간 명칭부터 프리랜서에서 한 회사의 대표로 바뀐다. 뭔가 거창할 것 같지만 전이랑 하는 일은 똑같다. 다만 회사명이라는 것이 주는 무게감이 생각보다 크게 다가왔다. 프리랜서였을 때는 단순히 돈을 받아 누군가의 밑에서 일을 한다는 느낌이 강했다면 사업자등록 이후부터는 책임감이 좀 더 강해졌다랄까.


아마 이때 사업자를 내지 않고 계속 일을 했다면 분명히 일을 받는 데에 있어서 한계에 부딪혔을 것이다. 당장 들어오는 일만 해도 70% 이상이 다이렉트 의뢰였다. 만일 나에게 사업자가 없었다면 그 일들 대부분을 놓치던지 아니면 중간에 에이전시를 껴서 전처럼 수수료를 떼어가면서 프로젝트를 진행해야 했을 것이다. 아니면 적당히 프리랜서를 하다가 회사를 들어갔을 수도 있지 않았나 싶다.


한 치 앞을 모르는 게 인생이라더니 딱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회사를 관뒀던 어느 날 우연히 마켓플레이스를 알게 되어 처음으로 프리랜서 등록을 해봤고, 그렇게 몇 번 일을 받아서 하다 보니 에이전시를 끼지 않고 다이렉트로 일을 받게 되는 일도 일어났다. 그렇게 꾸준하게 프로젝트를 진행하다 보니 또 우연치않게 사업자등록을 하게 되었다.


뭔가 계획한 것도 아니었는데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이 모든 일이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일어났다.


꼭 모든 것들이 준비되어 있지 않아도 열심히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하나 둘 정리가 되고 갖춰져 갔던 것 같다. 사람들은 항상 무언가에 도전하고 일을 벌이려고 할 때 모든 준비를 완벽하게 해서 시작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세상에 완벽한 건 없듯이 어느 정도 준비된 시점이라면, 적당한 시기와 타이밍을 잘 잡아 도전이든 시도든 해보는 게 마냥 준비만 하며 기다리기 재기보다는 훨씬 낫다고 생각한다.


이 글을 쓰면서 예전에 방송에서 유재석이 했던 말이 떠오른다.

미래에 대해 막연히 걱정하기보다 현재를 열심히 살다 보면 미래는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열심히 살기로 했다.



https://youtu.be/jJh4dkeFsTk

다우기술과 진행했던 3번째 프로젝트


작가의 이전글 #8. 1인 기업과 프리랜서의 차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