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권 첫날, 검정 고무신을 신고 간 이유
아직 쌀쌀한 2월 초다. 휴대폰 시계는 8시를 가리키고 있다. 이렇게 이른 시간에 타이중공원에 온 것은 처음이다. 실은 원래도 자주 안 온다. 마지막으로 왔던 건 1월 1일이었다. 그땐 파빌리온과 비둘기, 분수를 구경하며 몇 시간을 보냈지만 오늘은 다른 이유로 왔다.
타이중공원은 유명한 관광지지만, 노숙자가 많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런 이유로 늦은 밤 이 공원에 오지 않는 것은 타이중 시민들의 암묵적인 룰이다. 지금 200미터 전방에 호텔 목욕 가운으로 보이는 수건 재질의 긴 로프를 걸치고 있는 삐쩍 마른 남자가 걸어가고 있다. 호텔에서 자다 나온 사람 같아 보이지는 않는다. 그가 걸치고 있는 것이 그의 전부인 것 같다.
타이중공원뿐만 아니라 전 세계 도심의 대형 공원에는 많든 적든 노숙자가 있을 것이다. 폴 오스터의 <달의 궁전>에서 M.S. 포그가 돈이 다 떨어지고 간 곳도 뉴욕의 센트럴파크였다. 안성재 셰프도 돈이 없을 때 샌프란시스코 골든게이트 공원에서 잔 적이 있다고 했다. 하지만 아침이 오면 공원은 온통 운동하는 사람들, 강아지와 산책하는 사람들로 활기가 넘치고 나뭇잎은 햇빛을 받아 모자이크 타일처럼 반짝인다. 공원 입구의 달리기 트랙에서부터 조깅하는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하하하." 멀리서 기합을 넣는 목소리가 들린다. 그의 숨에 밤새 쌓인 어둠이 묻어 나오고 있다.
오늘 나는 이곳에서 태극권 하는 사람들을 찾아야 한다. 목표는 수업에 등록하는 것과 회원비에 포함되어 있다는 쿵푸 옷을 받아오는 것이다. 그런데 공원이 너무 넓다. 윌리를 찾는 심정으로 쿵푸 옷을 입고 있는 무리를 샅샅이 찾는다. 웹사이트에서 본 쿵푸 옷은 흰색 상의에 통 넓은 검은색 바지였고, 상의의 소매 부분은 주홍색이었다. 걷다 보니 비슷한 옷차림의 어르신들이 보인다.
"여기가 태극권 하는 곳인가요?"
아니라고 하신다. 이곳은 스트레칭하는 곳이라 하신다.
스트레칭을 중국어로 라진(拉筋)이라고 한다. 근육을 잡아당긴다는 의미다. 팔다리를 쭉쭉 뻗어 수축된 근육을 잡아당기고 위장 등 복부기관도 마찬가지로 늘려서 기능이 저하되지 않도록 한다. 스트레칭은 어르신뿐 아니라 내게도 필요하다.
30대 중반이 되면서 몸이 달라졌다고 느낀다. 전에는 같은 자세로 오래 앉아서 일해도 고개가 뻐근하다, 이상의 불편함은 없었다. 편집자 시절, 원고를 보다가 목이 아프면 '독서대 각도를 바꿔 보자' '잠깐 몸을 뒤로 젖히고 쉬자' 하는 것으로 대충 해결되었다. 요즘은 그렇지가 않다. 어깨도 등도 눈도 다 아프다. 특히 자전거로 출퇴근을 하기 시작하면서 등에 힘을 잘못 주는지 등이 자주 걸린다. 그렇다고 억지로 풀려고 하면 역효과가 난다. 굳은 가래떡을 힘주어 늘려 봐야 늘어지지 않는 것이다. 금만 가고 부스러기만 떨어질 뿐. 심할 때는 등에 고양이 발바닥 크기만큼의 날카로운 통증을 달고 있는 것 같다.
드디어 도서관 근처에서 태극권 하는 사람들을 발견했다. 자로 잰 듯 똑같은 키에 똑같은 체격의 어르신 세 분이 삼각형 구도로 서서 태극권을 하고 계셨다. 키는 160~165센티미터이고 체격은 마른 편이다. 나이는 60대 후반이나 70대 초반으로 보인다. 세 분은 아무 말 없이 가사 없는 중화풍 음악을 틀어 놓고 체조를 하고 있다. 방해하면 안 될 것 같다. 나는 커다란 나무 앞의 돌 의자에 앉아 끝날 때까지 기다린다.
세 분은 모두 남자지만 그리스로마 신화의 운명의 세 여신이 떠오른다. 한 명은 실을 뽑고 한 명은 실을 감고 한 명은 실을 자른다. 이 실은 인간의 명줄이다. 이들이 정한 운명은 절대적이어서 제우스신조차 거스르지 못한다고 한다.
'운명은 정해져 있다'는 말에는 부정적인 느낌이 있다. 패배주의적인 기운이 감돈다. 운명에 모든 탓을 넘기고 나 몰라라 하고 싶은 사람들이나 좋아할 말이다. 보통은 운명을 바꾸고 싶어 하고 개척하고 싶어 한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현재 자신이 삶이 마음에 들지 않고 모든 게 이대로 정해져 버렸다는 것이 싫은 것 같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운명을 사랑하라'는 니체 말에 공감하는 쪽이다. 운명을 바꾸고 싶지는 않다. 그보다는 정해진 운명만큼 제대로 살아내고 싶다. 나 자신에게 묻는다.
운명의 끝까지 가볼 심산인가?
한순간이라도 좋으니 운명을 폭발시킬 자신이 있는가?
다시 태어나 이 모든 것이 똑같이 반복된대도 좋은가?
"여기가 태극권 하는 곳인가요?"
태극권이 끝나자마자 가서 물어봤다. 맞다고 하신다. 그렇게 말한 사람은 린 아저씨다. 피부에 광이 돌고 눈빛이 살아 있다. 태극권을 오래 하면 저렇게 되는 것일까? 상상한다. 회사에서 상사들을 보면서 계속 회사를 다니면 저렇게 될까? 하고 상상했던 것처럼 말이다. 내가 나중에 린 아저씨처럼 피부에서 빛이 나고 눈에 힘이 도는 것은 분명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일단은 태극권에 좋은 감정이 생긴다.
어르신들은 내 중국어에 섞인 외국인의 억양을 알아차린다.
"자네는...?"
"아, 한국사람입니다."
"안녕하세요!"
꽤 정확한 발음으로 한국어를 하는 분은 무사(武士) 아저씨다. 성함이 무사는 아니다. 이후 혼자서 곤봉을 들고 태극곤(太極棍)을 하시는 모습이 무사 같아서 내가 몰래 붙인 이름이다.
이제 세 분은 나를 어떻게 할 것인지 토론한다. 학원처럼 수강 신청서에 이름과 연락처를 쓰고 돈을 내면 되는 것이 아니었나? 상황이 상상과 다르다. 세 분은 내게 왜 태극권을 배우려고 하는지 이유를 여쭤 보신다. 또 그 질문이 나왔다! 왜! 태극권을! 도대체! 나는 뭐라도 말해야 할 것 같지만 음양이나 우주의 섭리 같은 말은 입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이상한 사람처럼 보일까 봐 무섭다. 대신 '대만의 문화 체험'이라는 말이 튀어나온다. 운명의 여신들은 토론을 계속하고 "그럼 그냥 여기에서 해"라는 결론을 내린다. 이곳은 무료이고, 오고 가는 것도 자유다, 건강을 위해서 하려는 것이라면 정식 수업에 들어가지 않고 여기에서 하는 것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그런 말이었다. 내가 몇 번 오다가 말 것이라고 생각하셨던 것 같기도 하다.
이곳에서는 매일 6시 반부터 8시까지 태극권을 한다. 나는 세 분에게 준비할 것이 있는지 여쭤 봤다. 세 분이 동시에 땅을 쳐다보셨다. 처음부터 눈에 거슬렸다는 듯 그것부터 쳐다보셨다. 나는 하얀 양말에 검은색 가죽 단화를 신고 있다. 전체가 다 검은색이고 굽은 아예 없다시피 해서 언뜻 보면 검정 고무신 같아 보이는 신이다.
이 신은 오늘 아침 고심해서 고른 것이다. 옷은 편한 옷으로 골라 입었는데 신발은 무엇을 신어야 할지 고민이었다. 갑자기 별로 본 적도 없는 쿵푸 영화가 스틸 컷처럼 정지 화면으로 몇 장 떠올랐다. 그 안에서 이소룡과 주성치와 성룡은 검은 단화에 흰 양말을 신고 있었다. 그래서 신발장에서 최대한 비슷한 것을 골라 신은 것이다. 그 밖의 다른 의미는 없었다.
어르신들은 이것 말고 운동화를 신고 오라고 했다. 발을 지탱할 수 있는 신발이어야 한다고, 이런 가죽 신발은 미끄러워서 넘어질 수 있다고 했다. 그제야 세 분 모두 운동화 차림인 것이 보였다. 이소룡과 성룡, 주성치는 없었다. 그리고 또 하나, 따뜻한 물을 싸 오라고 하셨다. 태극권을 하면서 중간중간 따뜻한 물을 마셔야 기도 더 잘 순환되고 독소도 땀으로 배출될 수 있다고 하셨다.
그 사이에 두 어르신은 떠나고 나와 린 아저씨만 남았다. 린 아저씨는 나를 부를 호칭이 마땅치 않았던지 '너(你)'가 한국어로 무엇이냐고 물어봤다. 한국어에서는 '너'라는 말을 자주 쓰지 않지만 나보다 한참이나 나이가 많은 어르신이 나를 '너'라고 부르는 것은 문제가 될 것 같지 않았다. 그래서 '너'라고 가르쳐 드렸다.
"너."
"러."
"너."
"러."
린 아저씨는 자꾸 '러'라고 발음했다. 대만어로 '너'가 '리'이기 때문에 '너'와 '리'의 중간 발음이 나온 것 같았다. 아마 듣다 보면 나아지실 것이다.
태극권 첫날은 이렇게 끝났다. 회원 등록은 하지도 못하고 신발 지적만 받았다. 어쩔 수 없다. 우리는 전에 본 적 없는 것을 마주할 때 이미 알고 있는 것 하나를 끄집어낸다. 그것은 편견이고, 오해고, 착각이다. 하지만 뇌는 그 방식을 선호한다. 내가 검은색 단화를 태극권 하기 가장 좋은 신발로 오해한 것도, 린 아저씨가 '너'를 '러'로 발음한 것도 당연한 것이다. 거기에서부터 출발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모든 이해는 오해로부터 출발한다.
누가 나를 오해한다고 해도 이해해주자.
나를 알고 싶어서 그런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