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부터 발끝까지, 몸이 기억할 때까지
대만의 봄은 새어머니 같다. 다정하다가도 싸늘해지고, 다시 햇살로 웃는다. (대만 사람들은 꽃샘추위를 "새어머니의 얼굴(後母面)"이라고 한다) 하루는 춥고 하루는 덥고 하는 사이 태극권 하러 오는 사람이 늘었다. 내가 처음 이곳에 찾아와 "여기가 태극권 하는 곳인가요?"라고 물었을 때는 세 명밖에 없었는데 지금은 여덟아홉 명쯤 된다.
태극권 수련은 이렇게 진행된다. 먼저 팔단금(八段錦)으로 몸을 풀고 태극권 37식, 13식, 64식을 연달아한 뒤에 마지막으로 쌍수(雙手)를 한다. 처음 하는 팔단금은 중국의 오랜 전통 체조로 '여덟 가지 비단 같이 귀한 운동'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동작마다 이름이 있는데 양수탁천리삼초, 좌우개사사조… 하는 식이다. 이 여덟 가지 동작을 각 여덟 번씩 한다. 다음으로 태극권 37식, 13식, 64식은 태극권의 한 세트 동작이다. 세트마다 그 숫자만큼의 동작이 있다. 64식까지 끝내면 우리는 린 아저씨의 구령에 맞춰 쌍수를 한다. 쌍수는 원래 두 사람의 대련 훈련이지만 각자 한다. 이렇게 천천히 하면 한 시간에서 한 시간 반이 걸린다.
지금 내가 있는 반은 '자유반'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 같다. 수업료도 없고 오고 싶을 때 오고 가고 싶을 때 간다. 틀려도 지적하는 사람이 없고 가르쳐 주는 사람도 없다. 이분들의 태극권 훈련 역사는 내가 모르지만 어디선가 오래 배운 적이 있는 것으로 추측된다. 대회에 나갈 것이 아니기 때문에 (놀랍게도 '태극권 대회'라는 것이 있다!) 스트레스받지 않고 편하게 모여서 한 시간가량 태극권을 하고 흩어진다. 아침의 푸른 공기를 마시고 몸을 움직이고 기를 순환하고 건강을 유지한다.
어르신들은 늘 나를 가운데에 세워 주신다. 앞에서도 보고 뒤에서도 보고 사방팔방에서 보고 따라 하라는 배려다. 모든 동작이 낯설고 순서도 모르다 보니 몸보다 눈이 더 바쁘다. 사람이 많아지면서 사람마다 속도도 동작도 달라서 나는 더 허우적대게 되었다. 그게 보기가 안쓰러웠던지 어르신 한 분이 내게 말을 거셨다.
"제대로 배우는 게 어때?"
"그러고 싶어요!"
"선생님이 내 친구인데 소개해 줄게."
그러고는 나를 어디로 데리고 가셨는데 놀랍게도 바로 위였다. 내가 지금까지 한 번도 눈길 주지 않았던 곳에 선생님이 계셨다. 우리가 태극권을 하는 곳 뒤로 계단이 나 있는데 그 위에서 진짜 태극권 수업이 열리고 있었던 것이다. 겨울 동안 쉬다가 이날부터 수업이 열린 건지 내가 지금껏 알아차리지 기울이지 못한 건지는 모르겠다. (후자일 가능성도 있는 것이 나는 집안의 인테리어가 바뀐 것도 잘 알아차리지 못한다.) 나를 본 선생님이 한 마디를 하셨다.
"너를 대회에 데려다줄게."
여기는 중간이 없는 것인가! 대회는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말이다. 하지만 기본부터 배워야 함은 확실했기에 앞으로 이곳에서 수업을 듣겠다고 했다. 드디어 타이중 태극권 협회에 회원 가입을 했다. 2주가 걸린 셈이다. 정말이지 우여곡절 끝에 선생님을 만났다. 처음부터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선생님 연락처로 전화를 걸어 봤으면 되었을 텐데, 맨몸으로 찾아다닌 내 잘못도 있다. 어쨌든 덕분에 나는 두 곳에서 모두 태극권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자유반'과 '대회반(?)'.
보통 월요일, 수요일 이렇게 일주일에 두 번 나간다. 선생님이 사정이 있어 안 나오실 때는 자유반에서 하고 선생님이 오시면 선생님과 한다. 선생님은 우선 37식을 마스터하기를 바라신다. 라인으로 37식 동영상도 보내주셨는데 흑백 화면에 잡음 속에서 할아버지 혼자 추고 있는 걸 보니까 무슨 영화 <링> 보는 것처럼 무서워서 제대로 보지 않았다. 그리고 37식 동작이 설명되어 있는 강의록도 주셨다. 그걸 보니까 내 동작이 왜 세기말 로봇 같았는지 이해가 됐다. 그간 내가 정리한 것과 강의록 상의 내용이 달라도 너무 달랐다! 얼마나 다른지 첫 번째 동작인 <예비식>을 비교해서 적어 보겠다.
내가 정리한 <예비식>
1. 발을 45도로 벌린다. 손은 바지선에 놓는다.
2. 왼발에 중심을 놓고 무릎을 약간 굽힌다.
3. 중심을 오른쪽으로 이동, 몸도 같이 살짝 튼다.
4. 왼발을 벌리면서 팔도 살짝 든다.
5. 오른발은 정면을 보게 하고 몸도 정면을 본다.
6. 살짝 선다.
강의록 상의 <예비식>
정면을 볼 때 아직 허(虛)와 실(實)이 나눠져 있지 않다. 허리와 사타구니에 힘을 풀고 오른쪽 사타구니를 안쪽으로 돌린다. 나선력으로 중심을 오른발로 이동시킨다. 동시에 왼쪽 사타구니를 안으로 돌린다. 왼발은 비어 있다(虛). 발뒤꿈치를 든다. 동시에 함흉발배(含胸拔背, 가슴을 안으로 감싸고 기가 단전에 가라앉도록 함)한다. 양손의 중심을 뒤로 돌리고 왼손의 노궁혈(勞宮穴)과 오른발의 용천혈(湧泉穴)에 기를 집중한다. 왼발을 들어 평평하게 옆으로 벌린다. 왼쪽 사타구니를 안으로 돌린다. 중심을 왼발로 옮긴다. 동시에 오른발 끝을 살짝 든다. 안쪽으로 모아 정면을 바라보게 한다. 왼발과 평행하고 어깨너비만큼 넓다. 오른손의 노궁혈과 왼발의 용천혈에 기를 집중한다. 손목을 앞으로 살짝 굽히고 손바닥은 아래를 향하게 살짝 편다. 손끝은 살짝 앞을 향하고 펴지도 모으지도 않는다. 단전의 기에 집중하고 양 어깨에 힘을 뺀다.
모르는 단어 찾아가며 이해하는 데 시간이 좀 걸렸다. 그래도 한 번 읽고 나니 흘러가는 느낌을 알게 돼서 몸으로 표현하기가 더 편해졌다. 이걸 앞으로 36개 더 해야 한다니, 갈 길이 멀다. 정리해 보면, 태극권을 배운다는 건 단지 동작을 외우는 일이 아니다. 중심을 어디에 둘 것인지, 기를 어디로 흘릴 것인지 끊임없이 묻는 일이다. 당분간은 계속 허우적거릴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괜찮다. 천천히, 한 동작씩. 팔에서 발끝까지, 몸이 기억할 때까지 그 자리에 서서 할 거다.